[MZ 전통시장, 여기요 여기] 전통시장 예술로 채웠다… 힙한 감성 챙겨가는 '평택 안중시장'
전통시장이 예술과 결합하고 있다. 단순히 물건을 사고 파는 상업적 공간에서 벗어나 누구나 쉽게 예술을 향유할 수 있는 공간으로 탈바꿈을 시도하는 것이다.평택시에 위치한 안중시장은 독일에서 현대미술을 전공한 권혜정 상인회장 부임 이후 ‘예술 시장’을 목표로 다양한 활동을 진행 중이다.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사생대회를 개최하거나 고객센터에 전시관을 열고 외국 작가의 작품을 전시하는 등 시장 자체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만들어 다양한 볼거리를 선사하고 있다.
올해부터는 소상공인시장진흥공단의 ‘문화관광형 특성화시장 육성사업’을 통해 안중시장만의 예술 브랜딩 작업으로 소비자들을 공략한다는 계획이다.
중부일보는 안중시장을 직접 방문해 시장을 대표하는 핫플레이스와 시장의 역사, 향후 계획 등에 대해 들어봤다.
◇한식 즐기고, 카페에서 예술 관람까지=안중시장은 현재 120여 개 점포가 위치해 있는 중대형 규모의 시장이다. 규모에 걸맞게 핫플레이스로 불리는 점포도 많다. 이중에서도 ‘옛날손칼국수’, ‘남대문집’, ‘전&칼국수 가정식백반’, ‘갤러리 카페 미원’ 등이 유명 점포로 꼽힌다.
먼저, 옛날손칼국수는 20년째 운영되는 칼국수 맛집이다. 당초 시장 밖에서 장사를 시작했으나 5년전부터 안중시장 안으로 자리를 옮겨 운영 중이다.
대표 메뉴로는 들깨칼국수, 바지락칼국수, 팥칼국수 등이 있으며, 코로나19 시기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서 먹었다고 할 정도로 많은 인기를 자랑한다. 특히 모든 식재료를 국산으로 사용하고, 양도 많이 주는 것으로 유명해 지상파 방송에서도 몇 차례 소개됐다.
남대문집은 순대국밥, 소머리국밥을 주로 취급하는 국밥집이다. 1992년부터 20년 넘게 운영 중이며, 많은 단골들이 식당을 찾는다.
‘국밥 맛은 육수가 좌우한다’는 사장님의 지론 하에 하루 종일 육수를 끓이기 때문에 육수가 굉장히 진한 것이 특징이다. 소머리국밥의 경우 오랜 시간 푹 고와서 만드는 만큼 식을 경우 국물이 묵처럼 변한다고 할 정도다.
전&칼국수 가정식백반은 내걸고 있는 간판과 달리 한식 뷔페 맛집이다. 3년 전 칼국수 집으로 문을 열었으나, 도중에 한식뷔페로 업종을 바꿨다.
최근과 같은 불경기에 저렴한 가격에 맛좋은 한식을 골고루 먹을 수 있어 많은 이들이 방문한다. 특히, 김치를 포함해 뷔페에 들어가는 모든 반찬을 직접 만들기 때문에 맛은 보장한다는 것이 이 가게 사장의 말이다.
옛날손칼국수와 남대문집, 전&칼국수 가정식백반이 한식 맛집이었다면 갤러리 카페 미원은 다른 느낌으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해당 카페는 1973년부터 운영해온 ‘미원수예(뜨개질)집’을 2023년 권 회장이 카페로 리모델링해 운영 중이다. 근대 건물 특유의 오래된 흔적이 카페 곳곳에 남아있고, 벽면에는 권 회장이 직접 그린 미술작품이 전시돼 있어 소위 ‘힙’한 느낌의 카페로 MZ세대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 외에도 안중시장에는 ‘한미 누룽지’나 ‘新(신)북경양꼬치’ 등의 맛집이 즐비해 있어 꼭 한번 방문해보는 것이 좋다.
◇안중의 발상지, 예술 시장으로 바뀌다=안중시장은 1955년 개설된 역사가 긴 전통시장이다. 본래 평택 현덕면 황산리에서 장이 열렸으나 당시 체면을 중시하는 황산리 양반에 의해 내쫓기며 이 곳에 자리를 잡게 됐다고 전해진다.
안중읍 자체가 조선시대 안중시장을 중심으로 주거·상업시설이 모여 만들어졌다고 할 정도로, 안중시장은 안중읍의 원도심이자 시작점으로 불린다. 다만 안중시장은 1990년대를 전후로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5일장(1, 6일)이 상설시장 안에서 열리던 1980년대 후반까지는 많은 이들이 안중시장을 방문했으나 이후 5일장이 시장 밖으로 빠져나가며 시장을 향한 관심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변화는 2016년 권 회장이 상인회장을 맡으며 시작됐다. 권 회장은 먼저 대중의 관심을 높이기 위해 2017년부터 지역 아동들을 대상으로 사생대회를 개최했다. 첫 대회에는 20~30명이 참여하는데 그쳤으나 지난해 열린 8회째에는 300여 명이 참가할 정도로 시장의 메인 행사로 자리잡았다.
권 회장은 "과거 안중시장에 위치한 누까회관에서 해마다 사생대회가 열렸고 그때 저도 참여했었다. 사생대회를 통해 제가 지금의 꿈을 꾸게된 것처럼,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주고자 사생대회를 시작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안중시장의 변화는 이뿐만 아니다. 권 회장은 시장 곳곳에 예술 작품을 전시해 시장 자체를 하나의 미술관으로 만들었다. 실제 안중시장 입구에는 ‘길마미술관’이라는 간판과 함께 전병철 작가의 ‘황소와 연잎’이라는 작품이 전시돼 있다.
길마미술관은 특정 건물이 아닌, 안중시장 자체를 이르는 말이다. 길마란 소의 등에 얹어 물건을 나르는 기구로 과거 안중시장이 ‘길마골’이라고 불린 것에서 유래해 길마미술관이라 이름을 붙였다.
또한 입구 바로 맞은 편에 위치한 고객센터에는 전시관이 마련돼 있어 지난해 10월 전시회를 개최하기도 했으며, 고객센터 한쪽 벽면은 박정용 작가의 ‘하늘을 나는 우산과 장화’ 벽화로 꽉 채워져 있다.
권 회장은 "요즘에는 많은 이들이 문화예술에 대해 관심이 높다. 결국 우리 전통시장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온라인, 대형마트에서 하지 않는 것을 해야한다"며 "안중의 정체성과 문화의 발상지인 안중시장이 예술 시장으로 발전하는 것에 중점을 두고 있다"고 설명했다.
◇예술의 생활화, 안중시장에서 시작=안중시장은 올해부터 소진공의 문광형 육성사업을 통해 예술 시장으로의 변화를 앞당길 예정이다.
문광형 육성사업은 전통시장의 고유한 특성을 바탕으로 문화관광 콘텐츠를 개발하고 브랜드화하는 사업이다. 안중시장은 소진공의 전문적인 컨설팅을 받아 시장의 예술활동이 상인들의 수익으로 직결될 수 있기를 기대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예술 시장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지역 오케스트라와도 연계해 음악 활동도 진행할 예정이다.
권 회장은 "지역 아이들로 구성된 오케스트라는 공연 장소를 원하고, 우리는 다양한 예술 활동을 원하는 만큼 상호간 긍정적인 논의가 이뤄지고 있다"며 "문광형을 통해 예술인들이 공연할 수 있는 공간, 전시할 수 있는 공간이 마련된다면 많은 이들이 이 곳을 방문하고, 이는 곧 상인들의 수익으로 이어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안중시장은 시설적인 부분에서도 변화를 꾀하고 있다. 기존 아케이드가 노후화된 만큼 이를 대체하는 과정에서 예술성이 가미된 새로운 아케이드를 설치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이 부분은 금액적인 문제로 인해 많은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권 회장은 "안중시장은 궁극적으로 ‘예술의 생활화’를 희망하고 있다. 꼭 미술관을 가야만 예술을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란 것을 알게 된다면 소비자들도 부담없이 이 곳에 방문할 수 있게 될 것"이라며 "변화된 안중시장에 손님들의 많은 방문을 기대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이성관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