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여행] 둥지
구부정한 허리로 하늘이 아닌 땅을 보며 한쪽 다리를 절뚝거리며 걸어가는 여인, 영락없는 노인이었다. 그런데도 엄마는 처음부터 엄마인 줄 알았다. 엄마도 여자라는 사실을 잊고 있었다. 아니 어쩌면 인정하기 싫었는지도 모른다.
무남독녀 외동딸로 태어나 일이라고는 해보지도 않았던 분이 맏이에게 시집와서 육 남매의 부모 노릇을 하며 궂은일 마다하지 않으시고 밤늦게까지 일하시던 분. 시어머니가 치매에 걸리셨을 때도 당신도 장애가 있으신 분이 대소변 다 받아 내시며 하루에 많을 때는 여섯 끼가 넘는 식사를 챙겨드리며 힘든 농사일까지 묵묵히 해내셨다. 시누 시동생을 다 결혼시키며 자식 넷까지 키우시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땐 엄마도 젊은 여자였는데, 왜 그게 당연한 거였을까. 당신은 너무 가난해서 공부 못하신 것이 한이 되어 자식들은 공부해야 한다면서 타지로 보내시고 얼마나 눈물을 훔치셨을까?
장애 등급을 받으신 뒤에는 하루도 몇 가지 약을 드시는지 약 없이 못 사시는 분이 어쩌다 전화하면 "너 온종일 일하느라고 힘들겠다" 하신다. 보조 기구가 없으면 제대로 앉지도 못하는 엄마지만 마음에 굳은살이 겹겹이 배도록 평생 그렇게 삶을 강하게 누르고 누르며 살아오셨다. 넘어졌을 때 일어나야 함을 알지만 넘어짐을 반복하다 보면 포기가 되고 면역이 생겨 일어나고 싶지도 않게 되는 경우가 있다. 그때마다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도저히 일어날 수 없는 상황에서도 묵묵히 일어나고, 참을 수 없는 순간에도 인내하시는 그 모습이 있기에 포기할 수가 없었다.
보고 싶어도 자식들 힘들까 봐 보고 싶다고 말씀도 못 하는 엄마 마음을 알기에 시간을 내서 오늘은 시골에 내려왔다. 바쁘다는 핑계로 언 한 달 만에 내려오는 것 같은데 대문 앞 강아지는 꼬리를 흔들며 반갑게 맞아주고 있었다. 윗마을에 휴양림이 생겨서 주말이면 수시로 차들이 올라가고, 여름이면 휴가를 즐기러 오는 사람들도 꽤 많아져서 오늘도 앞서 달리는 차들이 여럿 보인다. 엄마는 속도를 내면서 달리는 자동차를 보며 한마디 하셨다.
"방지 턱이 더 높아야 뎌, 너무 위험 햐" 힘겨워하시는 모습에 너무나도 죄송스럽고 눈물이 날 때가 많다. 하지만 오늘도 엄마 앞에서는 큰소리로 웃고 떠든다. 자식이 웃고 즐거워하는 모습에 힘이 나시는 엄마이기 때문이다. 돌아갈 때는 농사지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주시고 구부러진 허리를 하고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시는 엄마. 이해한다고 말로는 하지만 평생 이해할 수 없는 큰 나무, 그 이름 엄마, 나는 행복한 사람이다.지금은 그 어린 시절의 동무도 산도 개울도 길도 아니지만, 삶이 힘들고 지칠 때 이유 없는 향수에 젖을 때 찾아갈 수 있는 곳, 엄마라는 둥지가 있기 때문이다.
최미란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