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동네 셀럽] 코미디언 박경호, "웃음을 주는 순간이 가장 행복하다"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순간이 가장 행복합니다." 인천 출신 코미디언 박경호 씨의 인생 모토다. 이름만 들어서는 언뜻 잘 떠오르지 않지만, 그는 예능프로그램 ‘코미디빅리그’에서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개그맨이다. "무적해병 박경호!"라는 유행어에서 짐작할 수 있듯 그는 해병대와 인연이 깊다. 개그맨을 하기 전 해병대에서 장교로 근무하며 군인으로서의 미래를 설계했다.
그러던 그가 안정적인 길을 뒤로하고 사회로 발길을 돌린 건 어릴적부터 꿈꾸던 개그맨이 되기 위해서였다. 모두가 뜯어말리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생계를 위해 자동차 딜러를 하는 등 많은 어려움도 겪었다. 그렇게 4년여의 도전 끝에 ‘코미디빅리그’ 무대에 섰고, 해병대 경험을 살린 캐릭터로 사람들의 주목을 받는 개그맨이 됐다. 그는 "이제 시작이다. 여기에 안주하지 않고 ‘코미디언 박경호’라는 브랜드로 더 넓은 무대에서 더 새로운 웃음을 선사하겠다"고 힘주어 말했다. 3월이 끝나가는 지난 월요일, 기자와 만난 그는 그간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풀어놨다.
- 해병대 장교에서 코미디언으로 전향한 계기가 궁금하다.
"장교라는 직업도 매력 있지만 사람들에게 웃음을 주는 게 더 행복하다고 느꼈다. 어릴 때부터 사람들이 웃을 때가 좋았다. 그러다 보니 코미디언이 되겠다고 결심했고, 후회 없이 도전했다."
- 전역 후 자동차 딜러로 성공했다고 들었다.
"운이 좋았다. 처음에는 신입이라 고객들이 많이 도와줬고 진심을 다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좋은 성과가 났다. 하지만 늘 코미디에 대한 갈망이 컸다."
- 주변의 반응은 어땠나.
"자동차 딜러로 일할 때 지점장님이 ‘개그맨 하면 돈 못 번다’고 많이 말렸다. 하지만 돈보다 꿈꾸던 일을 하고 싶었다. 돌이켜보면 그 선택이 옳았다고 생각한다."
- 준비 과정이 쉽지 않았을 것 같다.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안정적인 군 생활을 뒤로하고 사회에 나와 4년간 코미디언 지망생 생활을 했다. 벌이가 시원찮으니 모아둔 돈은 금세 바닥이 났다. 하지만 목표를 이루기 위해 새벽까지 극장에서 연습하며 버텼다."
- 코미디언이 되고 나서는 어땠나.
"데뷔만 하면 좋겠다고 생각했지만, 새로운 세계가 기다리고 있었다. ‘코미디빅리그’의 대단한 선배들과 경쟁해야 했다. 축구로 치면 프리미어리그에 올라간 거라고나 할까(웃음). 무대에 설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지만, 살아남기 위해 더 열심히 해야 했다."
- 방송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이 있다면.
"가장 기억에 남는 순간은 아무래도 첫 방송 때 해병대 캐릭터로 관객들에게 호응을 받을 때였다. 도파민을 맞은 것처럼 짜릿했다."
- ‘나의 장사일지’ 해병대 캐릭터는 어떻게 탄생했나.
"처음 시작은 선배님들이 신인들에게 ‘새로운 캐릭터를 찾아오라’고 하면서다. 여러 코미디 프로그램을 보며 연구하던 중 해병대 경험을 살린 캐릭터를 만들게 됐다. 해병대 특유의 말투와 분위기를 개그에 녹여냈고, ‘너 몇 기야!’ 같은 유행어가 자연스럽게 만들어졌다."
- 개그 소재는 어디에서 얻나.
"일상 속에서 영감을 많이 받는다. 대화를 하든, 주변을 관찰하든,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메모해둔다. 개그는 결국 현실에서 나온다."
- 개그 트렌드가 변화하고 있다. 유튜브 개그와 TV 개그의 차이점은.
"유튜브 개그와 공개 코미디 개그는 결이 다르다. TV에서는 좀 더 대중적인 개그를 해야 하지만 유튜브에서는 특정 팬층을 타켓으로 한 개그를 할 수 있다. 그래서 두 개의 균형을 맞추려고 노력하고 있다."
-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장르가 있나.
"몸으로 부딪치는 예능 프로그램에 도전하고 싶다. 그냥 개그뿐만 아니라 다양한 도전이 가능한 콘텐츠를 하고 싶다."
- 힘든 시절을 겪은 사람으로서 사람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 뜨기 전이 가장 어둡다’는 말을 좋아한다. 힘든 순간이 길게 느껴질 수 있지만 결국엔 좋은 날이 온다. 버티고 노력하면 반드시 해는 떠오른다."
- 마지막으로 ‘코미디언 박경호’의 어떤 모습을 보여주고 싶나.
"코빅에서 해병대 캐릭터를 연기하며 가장 기뻤던 점은 많은 어머니들로부터 ‘우리 아이가 너무 좋아해요’라는 얘기를 들을 때였다. 아이들이 저를 따라 하며 즐거워하는 모습을 떠올리면 절로 힘이 솟는다. 모든 사람이 저를 보면 까르르 웃음이 터지는 그날까지 웃음 전도사로서 최선을 다하겠다."
최준희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