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여행] 봄날은 온다
요즘 나는 현직에 있을 때 못지않게 아주 바쁘게 살고 있다. 수요일 오후부터 토요일까지, 수도권 지역과 강원, 인천 등에 있는 기관을 찾아다니며 아픈 사람들을 섬기고, 그들에게 아주 작은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다. 지치고, 상처투성이로 세상 사람들과 떨어져 사는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이해하며 그냥 곁에서 종일 꼭 필요한 사람이 되려고 애쓰고 있다.
평생 교직에 몸을 담고 있다가 퇴직하면서 봉사라는 이름으로 삶의 길을 선택한 것을 후회하지 않는다. 그것은 바로 35년 전 몹쓸 질병 때문에 생사기로에 놓여 대학병원에서조차 손 놓고, 퇴원 당한 뒤에 삶을 정리하려 찾았던 곳에서 뜻밖에도 이웃 사람들이 내 일처럼 보살펴 주고, 같이 기도해 주어 기적의 삶을 되찾은 일을 잊지 못해서일까?
건강을 되찾아 정년을 마친 뒤부터 나 자신을 모두 내려놓고 누군가에게 위로가 되고 싶어 용기를 내어 이 길을 가고 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내 삶의 내리막길, 노년의 삶을 다시 청춘처럼 보내며, 주변 사람들을 찾아 섬기는 일에 큰 기쁨과 감사로 살아가는 이 모습이 대견스럽기도 하다. 또 다른 삶 속에서 ‘애국의 길’을 실천하는 것만 같아 자신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기도 한다. 그런 까닭에 때때로 힘겨운 일이 닥치면, ‘괜찮아. 잘하고 있어.’ 스스로 토닥거리며 다시 마음을 추스르곤 한다.
세상 밖으로 한 발만 나서도 해야 할 일도 많고, 힘을 보태야 할 일도 쌓여 있는 것 같다. 지금처럼 나라가 어수선할 때는 칼바람 속에서도, 전국 광장을 찾아다니면서 시민들과 뜻을 합하고, 위태로운 국가를 구하는 일에 한목소리를 내어 외치는 이들에게 힘껏 응원하고 싶다. 그들만의 나라 사랑의 방법을 존중하고 싶은 것이다.
그러나 오늘도 나는 묵묵히 자신이 선택한 후반기 노년의 삶을 ‘섬기는 일’에 보내려고 다짐한다. 바로 지금 내가 기쁨으로 할 수 있는 일이기에 누가 뭐라 해도 신념을 가지고 오래오래 이 일을 하려고 한다.
넘어지고, 아프고, 혼자 일어서기 어려운 어르신들 곁에서 웃고, 손잡아 일으켜 드리고, 이야기를 들어주는 일은 아주 작은 일이지만 용기와 희망을 그들에게 안겨드릴 수 있는, 나 자신의 진솔한 삶이라고 생각한다.
이젠 너무 각박하게 살아가기 싫다. 그동안 앞만 보고 달려 온 삶에서 남은 인생은 앞뒤 좌우 살피며 따뜻한 마음을 조금씩이라도 베풀고 나누고 싶을 뿐이다.
나라가 뒤숭숭해도 주저앉는 게 아니라 각자의 위치에서 땀 흘려 일하고, 저마다 가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말로 얼어붙은 가슴을 녹여내며, 돌덩이처럼 짓누르는 무엇인가를 걷어내는 일이고, 국가의 위기를 헤쳐나가는 지름길이 아닐까?
머지않아 대한민국이 바로 서리라 믿는다. 서로 돕고 존중하며 위로하고, 위로받으며 함께 손잡고 나아가는 봄날이 반드시 올 것이다.
그래서 겨우내 꽁꽁 얼었던 땅이 녹고, 파릇파릇 새싹이 움터서 새롭고, 활기차게, 희망찬 세상을 환히 밝혀 줄 날이 성큼 우리에게 오리라 기대한다.
임옥순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