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화웅 칼럼] 부통령 한 달 하고 대통령 그리고 탄핵

2025-04-30     유화웅

대한민국 헌정사에 부통령제도가 있었습니다.

미국의 부통령은 대통령과 러닝메이트가 되어 같은 당 후보로 한 팀이 되어 선거운동도 하고 당선된 뒤 정부 조직에 들어가 국정운영에 참여를 하는데 우리나라의 부통령은 미국과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대통령과 소속 정당이 다르기도 하고 대통령과 부통령 투표를 각각 다르게 하는데 우리나라 초대 이시영 부통령과 2대 김성수 부통령은 국회에서 선출하였습니다.

제3대 함태영 부통령과 제4대 장면 부통령은 국민의 직접 투표로 당선되었습니다. 제5대 부통령은 이기붕 씨가 당선되었으나 4.19 혁명으로 무위로 돌아갔습니다.

이 부통령제는 1960년 6월 15일 제2공화국이 탄생하며 내각책임제로 헌법이 개정 시행되면서 폐지되었습니다.

반면 미국의 부통령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대통령의 임기와 함께 가고 대통령 유고 시 즉시 대통령으로 계승하며 직무를 수행합니다.

1865년 4월 14일 에이브러햄 링컨(1809~1865) 제16대 미국 대통령이 미국 남부연합의 지지자인 존 부스(John W. Booth 1838~1865)에 의해 저격당해 사망하자 부통령으로 한 달 밖에 일하지 않았던 앤드류 존슨(Andrew Johnson 1808~1869)이 1865년 4월 15일 제17대 대통령으로 취임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통나무 오두막집에 태어났듯이 앤드류 존슨도 노스캐롤라이나의 작은 통나무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가난으로 인해 공식적인 교육을 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앤드류 존슨은 여러 난관을 극복하며 테네시 하원의원, 상원의원으로 정치가로 입지를 다지며 연방하원의원을 거쳐 테네시 주지사에 당선되어 주정부를 이끌었습니다. 그 후 1857년 연방 상원의원으로 중앙정치 무대에서 그의 능력을 인정받았습니다.

그러나 졸지에 대통령의 자리에 오른 존슨에게는 링컨 대통령의 큰 그늘이 존슨을 더욱 왜소하게 평가되었고 언론도 우호적이지 않았습니다.

"무례하고 촌사람같이 버릇없는 사람이 연약한 모습으로 대통령 옆에 서 있는 것을 상상해 보라. 하나님! 링컨을 축복하고 용서하소서"라고 뉴욕월드(New York World)지는 평했고 매사추세츠 상원의원 찰스 섬너(Charles Sumner)는 "존슨은 칼리굴라(로마의 황제로 자신의 말(馬)에 원로원이라고 직위를 부여한 사람)의 말(馬)에 필적할 만한 무례한 술주정뱅이 짐승이다"라고 비판할 정도였습니다.

그리고 세간의 평은 적대주의, 능력부족, 정치술 부족, 협상과 타협에 무능력하고 투쟁적인 성격만 가졌고 양보의 미덕이 없다고 그의 리더십에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도 존슨 대통령은 노예들을 이용해서 대규모 농장을 소유한 부자들과 귀족계급들과 싸우기도 했습니다. 그는 "곧 나는 이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거만한 귀족들이 사실은 얼마나 형편없는가를 여러분 앞에 보여 줄 것이다. 노력하지 않고 돈을 버는 그들은 열심히 노동해서 자신의 빵을 버는 사람들에 비하면 정말로 형편없는 사람들"이라고 비판한 데서 존슨의 정신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의회는 대통령의 권한을 축소시키고자 육군통솔법(Command of the Army Act)을 통과시켰는데 이 법은 육군 참모총장을 통해서만 모든 군사명령을 내릴 수 있도록 한다는 것으로 대통령의 군 통솔권을 박탈하기 위한 것이었고, 공직보장법(Tenure of Office Act)은 대통령이 상원의 동의 없이 연방내각과 관료를 해임시킬 수 없다는 법이었습니다.

그러나 존슨은 이에 굴하지 않고 법안을 거부했고 에드윈 스탠턴(Edwin M. Stanton) 국방장관을 해임했습니다.

이로 인해 1868년 존슨은 탄핵소추가 되었고 결국 상원에서 투표결과 1표 차로 탄핵을 면했습니다.

탄핵의 부담이 있음에도 존슨 대통령은 미래 국익을 위해 러시아로부터 7천200만 달러를 들여 앨라스카를 사들였습니다. 당시 의회와 여론은 가장 어리석은 행동을 저질렀다고 혹평했습니다.

지금의 앨라스카가 가지는 지정학적, 전략적, 지형학적, 측량할 수 없는 부존자원 매장가치는 링컨의 노예해방과 쌍벽을 이루는 국익을 창출한 미래를 예측한 대통령이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유화웅 시인, 수필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