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민택칼럼] 갈등과 혐오를 넘어

2025-06-10     한민택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다. 비상계엄이라는 충격적인 사건으로 몸도 마음도 만신창이가 된 나라 전체를 정상으로 되돌리기 위한 중요한 걸음을 시작하게 되었다. 12.3 비상계엄은 대한민국인 전체의 마음 속 깊이 상처를 남긴 사건이었다. 그렇기에 새 정부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비정상적인 국가 운영으로 인해 빚어진 상처와 트라우마를 치유하는 것이다. 이에 또 하나의 과제를 들라면, ‘사회통합’이 아닐까. 새 대통령이 선출되었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는 갈등과 분열의 양상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혐오를 조장하여 갈라치기를 하는 다양한 집단과 조직이 곳곳에 존재하며, 몇몇 극우 종교 단체까지 가세하여 국민 분열을 부추기고 있다.

갈등과 분열, 혐오를 넘어 진정한 화해와 일치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이상적으로 들릴지 모르겠지만,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문화 창출이 급선무가 아닐까 한다. 다양성은 자연이 이치이며 순리다. 세상 만물이 단 하나의 모습으로 존재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할 수조차 없는 가정이다. 세상 만물은 다양한 모습으로 존재하며 우리는 그러한 다양성 속에 어우러져 살고 있다. 우리의 얼굴이 사람 숫자만큼이나 다양하고, 우리 각자가 살아온 인생사가 모두 다르다는 것은 자연의 이치이며, 그 자체로 선한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자기와 생각이나 정치 성향이 다른 사람을 적으로 간주하고, 자기만이 옳다고 종종 주장한다. 사실 누구나 자신만의 고유한 생각을 가질 수 있으며, 그것은 마땅히 존중받아야 한다. 상대방의 다름이 불편하지만, 우리는 그 불편함을 안고 살아야 하는 세상 속에 있다. 그리고 그 다름을 존중하고 살 때 오히려 그 다름이 나에게 풍요로움으로 다가오게 된다.

필자가 근무하는 곳은 가톨릭 사제를 양성하는 신학교다. 대부분 기숙사 생활을 하는데, 이는 공동체 생활을 통해 올바른 인성과 영성을 갖춘 사제로 양성하기 위함이다.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학생들은 각자의 모난 모습을 고치고 다듬으며 변화되는 과정을 거친다. 그러나 이 작업에 못지않게 중요한 작업은 각자의 고유한 능력과 개성을 찾고 이를 발전시키는 것이다. 모자이크를 이루고 있는 돌들이 각자 고유한 색을 잘 발해야 전체 그림이 아름답게 보이듯, 각자가 가진 고유한 색깔을 찾고 그 고유함을 전체와 어울릴 수 있도록 양성하는 것이 중요하다.

여기서 상대방의 다름을 인정하는 법을 배우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상대방의 독특한 성격, 서로가 갖고 있는 결점과 한계 등 모든 것이 처음에는 걸림돌로 다가오지만, 살아가며 서로를 조금씩 더 이해하게 되고 서로의 다름과 고유함을 인정하며 함께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또한 상대방의 고유한 색깔이 나와 우리에게 얼마나 큰 기쁨이며 풍요로움인지 깨닫게 된다. 이곳 신학교에는 중국인 신학생 한 명과 방글라데시 신학생 두 명이 함께 살고 있는데, 그들의 고유함과 다름은 우리 공동체에 큰 기쁨과 풍요를 가져오고 있다. 이를 통해 신학생들은 다른 언어와 문화를 지닌 다른 사람과 어우러져 사는 법을 배우게 된다. 아마도 이들이 사제가 되어 세상에 파견될 때 함께 사는 법을 신자들과 나누며 더욱 행복하게 살 수 있지 않을까.

우리나라는 남과 북으로 갈라져 있지만, 이번 선거를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동과 서로, 그리고 세대 간에 서로 갈라져 있다. 물론 서로의 생각과 선택이 다를 수 있지만, 그것이 갈라치기나 상대방에 대한 혐오로 인한 것이라면 큰 문제다. 또한 정치와 종교가 그러한 갈등과 혐오를 자극한다면 더욱 큰 문제일 것이다. 지금 다양한 갈등의 양상으로 큰 혼란과 위기를 겪고 있는 우리나라 상황에서 누구보다 종교가 먼저 나서서 사회통합을 위해 투신해야 할 것이다. 종교(religion)는 서로를 이어주고 묶어준다는 뜻인 'religere'에서 나왔다고 한다. 종교는 신과 인간을, 인간과 인간을 이어준다. 이 연결은 혼합이 아닌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다. 그리고 그 연결은 상대의 고유함이 인정될 때 더욱 큰 빛을 발한다. 부디 종교와 정치가 힘을 합쳐 이 나라가 갈등과 혐오를 넘어 다양성 안에 일치를 이룰 수 있도록 투신하기를 바란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