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석칼럼] 과거와 결별하기
여당의 경우
민주당이다. 어쩌다가 아니라 국민 대다수가 예상했던바다. 단지 누구에게는 믿고 싶지 않았던 시간들도 있었겠다. 시간의 속성상 어색한 면이 없지 않아도 거침없는 여당의 모든 과정은 정권초기의 과거 국민의힘을 넘어서고 있다. 며칠 전 이재명 대통령이 전·현직 여당 지도부 만찬에서 ‘대통령 시계’와 관련해 "필요하지 않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역대 대통령들은 자신의 친필 사인과 대통령을 상징하는 봉황이 새겨진 손목시계를 제작해 왔는데 이 대통령이 실용주의를 강조해온 만큼 ‘이재명 시계’를 볼 수 없을 수도 있다는 전망이었다. 지난 7일 만찬에 참석했던 전현희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김어준 씨가 진행하는 유튜브 방송에서 관저를 나오면서 대통령께 ‘이재명 시계’가 없냐고 몇 분이 물었고 "‘아이, 그런 게 뭐가 필요하냐’고 말씀하셨다"고 전하면서다.
이후 얘기는 전 최고위원이 아마도 대통령이 예산을 함부로 쓰려고 하지 않으려는 의식이 확고한 것 같다고 나름의 친절한 해석까지 곁들이면서 절정에 이르렀다. 그러나 단 며칠 후 이 얘기는 언론에 오르내리면서 갖가지 해석이 더해지고 결국 이재명 대통령은 "여러 제안을 경청한 끝에, 의미와 실용성 모두 담을 수 있는 선물이 적합하겠다고 판단해 가성비 높은 대통령 시계 제작을 지시했다"고 밝히기에 이른다. 이유는 대통령 시계와 관련해 언론에 일부만 보도되면서 다소 오해가 생긴 듯해 바로잡는 것이란 간단한 해명이었다. 이러한 예보다 더한 오해 아닌 팩트를 곁들인 얘기는 국민의힘에서도 숱했다.
윤 전 대통령의 의중을 미리 예단해 짚어나간 결코 웃지 못할 친윤의 ‘알아서 긴 일’들로 굳이 사례를 열거하기조차 민망해 생략하기로 한다. 나는 이 간단한 정권초의 헤프닝에 대해 지나친 가치부여를 하기보다 이 대통령의 몇 마디가 대통령 시계를 제작하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 보도로 이어진 참모들의 전언처럼 앞으로 민주당이 가야 할 길을 예고한 것으로 여기고 있다. 그것은 마치 우리 모두가 느껴온 정치 현장, 곳곳이 말로 치장되고 말로인한 오해로 죽이고 살려온 현장을 목격해서 하는 말이기도 하다. 그래서 특히 여당인 민주당은 앞으로 ‘말 조심’ 하고 앞서지 말 것.
하나 더. 민주당이 정권을 잡기 전... 노무현 정부에서 도입된 종부세라 불리는 종합부동산세가 도마 위에 오른 적이 있었다. 발단은 고민정 의원이 모 매체와의 진행한 인터뷰로 이날 고 의원은 기존의 민주당이 가지고 있는 이념에서 조금은 벗어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을 했다. 구체적으로 "대표적으로 종부세 폐지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는데 아마도 이 말은 고 의원의 충심으로 중도층을 공략하기 위한 복안을 설명하는 과정으로 읽혀진다. 곧 바로 주요 일간지와 경제지가 고 의원의 발언을 고리로 종부세 폐지 공론화에 나섰고 결국 민주당 열성 지지층은 반발했고 이 일은 흐지부지 중이다. 종부세 폐지론이 비단 비명만의 어젠다는 아니다. 박찬대 원내대표도 당시 "실거주 1주택에는 종부세를 부과하지 않아야 한다"고 했고 사석에서 나오는 발언은 더욱 적극적이었다. 종부세는 민주당과 국민의힘을 가르는 정치적 단절선이 된지 오래다. 정책이 곧 정치가 된 몇 안 되는 사례라는 의미다. 이재명 대통령의 국정수행에 대한 지지도가 53%인 여론조사 결과가 어제 나왔다. 성인 1천1명을 대상으로 진행한 전국지표조사(NBS) 결과에 따르면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해 ‘잘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는 53%, ‘잘못하고 있다’는 부정적 평가는 19%로 집계됐다. 접어두고 첫 취임 일성대로 경제에 올인하기 바란다. 과거의 민주당은 제발 잊고 차분히 잘 할 수 있는 국민위주 정책에 올인해야 진정한 통합이 된다.
야당 국민의힘 경우
예상은 했으나 잠깐의 사이 야당으로 내려앉은 국민의힘은 어디가서 당명을 올리기 조차 안쓰럽다. 보수를 향해 모자르고 능력 없다는 말이나 무능함을 보여줄 뿐이란 얘기는 어제 오늘의 지적이 아니다. 급기야 대선 후 거침없는 현 정권의 사정 정국 본격화에 일부라고는 하나 졸지에 야당으로 전락한 국민의힘 의원 보좌진 등이 휴대전화 기기를 이런저런 이유로 교체했다는 믿지 못할 얘기까지 돌고 있다. 정치와 관련된 사람들이 전화번호를 바꾸는 일은 그야말로 잘 나가는 국밥집 간판을 교체하는 것과 같다. 여기에 검찰의 수사 대상에 오른 일부 국민의힘 의원실 중에 문서 파쇄를 비롯해 대거 짐 정리를 한 곳도 있다거나 윤석열 정부 시절 주요 당직을 맡았거나 윤 전 대통령 체포 국면에서 한남동 대통령 관저를 찾았던 일부 의원 등도 전화번호를 바꾸고 있다면 복수의 칼날을 의식하면서 한편으로 켕기는 부분이 있다는 증거다.
사정이 이러함에도 당장의 국힘은 마치 대선에서 이긴 정당같다는 평을 듣고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에 대한 내란죄 재판이 재개된 가운데, 윤 전 대통령이 여전히 망상 속에 살고 있다는 비판마저 감수해야 할 국힘이지만 현실에서는 너무 여유가 많아 보여서다. 특히 윤 전 대통령이 측근 법조인에게 재판 승소를 확신하는 취지의 말을 했다는 일부 언론 보도는 귀를 의심할 지경이다. 마치 비상계엄이 헌법에 보장된 비상대권, 대통령의 고도의 정치적 행위라 생각하고 있다면 정말 큰일이다. 국민 대다수는 대선결과를 통해 윤 전 대통령의 마음가짐, 자세, 인식의 변화를 요구하고 있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국힘이 다시 신뢰를 받는 길은 하루라도 당을 해체하고 다시 세우는 일 이외는 없어 보인다. 하지만 아무런 희생이 없다. 계엄으로 탄핵당하고 정권을 잃은 당인지도 모를 지경이다. 변화에 대한 의지가 분명히 없다면 정리 하는게 수순이다. 내년 6.1 지방선거마저 날리면 국힘은 도대체 어떤 기반으로 정치를 할 것인지 궁금할 따름이다.
문기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