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종관칼럼] AI 시대, 인간의 존엄을 지키는 독서의 힘

2025-07-15     차종관

인류는 오랜 역사 속에서 지식과 지혜를 축적하고 전승하는 가장 강력한 도구로 독서를 활용해 왔다. 인공지능(AI)이라는 전례 없는 변화의 물결 속에 서 있는 지금, 독서의 의미는 더욱 중요해지고 그 필요성은 더욱 절실해졌다.

국문학자 정민은 책을 읽는 이유가 삶의 이치를 깨닫고 실제 삶에서 이를 체득하는 데 있다고 말한다. 로마의 철학자 세네카는 "독서는 영혼의 양식"이라고 표현하며 독서가 내면을 풍요롭게 하고 정신을 강건하게 만든다고 강조했다. ‘지적 생활’이라는 말을 처음 사용한 해머튼은 인간이 지적 생활을 위해 태어났으며, 이는 생활 전반에서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사고하고, 창작하고, 영감을 얻는 매 순간이라고 설명했다. 몽테뉴는 그의 ‘수상록’에서 독서를 통해 다양한 사상과 경험을 간접적으로 체험하며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확장하는 기회로 삼았다고 밝혔다.

유발 하라리는 ‘사피엔스’와 ‘호모 데우스’를 통해 인류의 과거와 미래를 조망하며, 복잡한 세계를 이해하기 위한 독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면, 최근에 출간된 ‘넥서스’를 통해 능동적 행위자(active agent)가 된 AI의 지혜 없는 힘의 위험성을 경고했다. 결국, 그는 독서가 다양한 관점을 수용하고, 편향된 정보를 걸러내며, 거대한 서사를 파악하는 데 필수적인 통찰력을 제공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시대에 인간이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지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인간 고유의 능력’을 강화하고 보존하는 것이 중요하며, 그 핵심에 독서가 있다.

첫째, 독서를 통해 배우는 비판적 사고력과 질문하는 능력은 AI 시대에 인간이 갖춰야 할 가장 중요한 덕목이다. AI는 주어진 데이터를 기반으로 최적의 답을 도출하지만, 그 데이터의 오류나 편향성을 자체적으로 판단하거나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지는 못한다. 인간은 독서를 통해 다양한 사상과 관점을 접하며, 주어진 정보에 대해 의심하고, 심층적으로 분석하며, 본질적인 질문을 던지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

둘째, 공감 능력과 윤리적 판단력은 AI가 결코 대체할 수 없는 인간만의 영역이다. AI는 데이터를 통해 감정을 모방할 수는 있어도, 타인의 고통에 진정으로 공감하거나 복잡한 윤리적 갈등 관계에서 인간적인 가치 판단을 내리지는 못한다. 문학 작품을 비롯한 독서는 인간의 희로애락을 간접 체험하고, 다양한 삶의 모습을 이해하며, 타인의 입장을 헤아리는 공감 능력을 심화시킨다. 이는 AI 기술의 발전이 가져올 수 있는 사회적, 윤리적 문제에 대해 깊이 성찰하고 현명한 결정을 내리는 데 필수적인 역량이다.

셋째, 창의성과 상상력은 AI 시대에 인간의 경쟁력을 유지하는 핵심 요소이다. AI는 기존의 패턴을 학습해 새로운 것을 만들어낼 수 있지만, 완전히 새로운 개념이나 예술적 통찰력을 창조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 독서는 미지의 세계를 상상하고, 다양한 아이디어를 연결하며, 고정관념을 넘어 새로운 가능성을 모색하는 창의적 사고를 자극한다.

AI 시대의 독서는 더 이상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미래지향적인 독서는 단순히 글자를 읽는 행위를 넘어선다. 몇 가지 제안을 하자면, 첫째, 다독과 정독의 균형이 필요하다. AI가 요약하고 분석해주는 시대에, 빠르게 정보를 파악하는 다독 능력과 함께, 깊이 있는 사유와 비판적 분석을 위한 정독 능력을 모두 길러야 한다. AI는 다독을 보조할 수 있지만, 정독을 통한 내면화와 비판적 사고는 오직 인간의 몫이다.

또 다양한 분야의 독서를 통해 통합적 사고력을 길러야 한다. 문학, 역사, 철학과 같은 인문학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 사회학 등 다방면의 지식을 섭렵해 복잡한 현상을 다각도로 이해하는 능력을 키워야 한다. 이는 AI가 제시하는 특정 분야의 전문 지식을 넘어, 전체적인 그림을 보고 통찰력을 얻는 데 필수적이다.

능동적이고 상호작용적인 독서도 중요하다. 독서를 단순히 정보를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행위로만 이용하지 않고, 책의 내용에 질문을 던지고, 자기 생각과 연결하며, 다른 독자들과 토론하고 공유하는 과정을 통해 독서의 깊이를 더해야 한다. 독서 모임에 참여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AI와 상호작용해 정보를 얻을 수도 있지만,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인간적인 성찰과 관계적 확장을 이루는 것은 독자의 능동적 역할이다.

독서는 미래 시대 인간의 존엄을 지키기 위한 개인의 의무이자 인류공동체 전체의 사명이다. 독서를 통해 인간 고유의 능력을 함양하고 AI 시대의 불확실성에 대비하는 것은 개인의 성장을 넘어, 인류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설정하고, 기술이 인간을 지배하지 않도록 하는 중요한 토대가 될 것이다. AI는 인간의 도구이지, 목적이 될 수 없다. AI가 아무리 발전해도 인간의 사고력, 공감 능력, 그리고 추상적이며 창의적인 면을 대체할 수는 없다. 이러한 인간 고유의 가치는 깊이 있는 독서와 성찰을 통해 계발되고 유지된다. 독서는 급변하는 AI 시대 속에서 인간의 존엄과 그 중심성을 잃지 않고, 기술을 인간을 위한 유용한 도구 또는 파트너로, 그리고 그것을 의미 있게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강력한 지혜의 나침반이 될 것이다.

차종관 세움교회 목사, 전 성결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