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상환칼럼] 김동연의 시간은 다시 흐를 수 있을까?
김동연 경기도지사의 여름은 그 어느 때보다 뜨거울 것 같다. 지방선거가 10여 개월 남은 지금, 여권에서는 벌써 여러 이름이 도지사 후보로 거론된다. 만만하다는 건가? 대선 후보였으며 현직 도지사가 있는데도 말이다.
돌아보면, 그의 경기도 3년은 성실했다. ‘변화의 중심, 기회의 경기’라는 슬로건 아래, 도정은 안정적이었고 내용도 충실했다. 그러나 책상 위 성과는 분명한데, 도민과 국민에겐 선뜻 떠오르는 게 없다.
경기도는 수도권 광역단체 특성상 도민의 정치 관여도가 낮다. "도지사 이름도 모른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다리 하나 놓아도 그건 국회의원, 시장, 도의원, 심지어 시의원의 업적이 된다. 너도나도 숟가락 얹는 사이, 도지사의 이름은 사라진다. 그래서 그는 답답해할 거다. 결국 다그치는 건 홍보 담당자다.
그 점에서 김동연의 정치는 ‘정책 실력’과 ‘정치 현실’ 사이를 외줄 타듯 건너왔다. 정치인으로서 그는 정중동(靜中動) 스타일이다. 그는 분명 일은 했지만, 정치적 인상은 남기지 못했다.
정치란 ‘무엇을 하느냐’ 못지않게 ‘무엇을 했다고 믿게 하느냐’에 달려 있다. 세(勢)를 모아야 하고, 말을 던져야 하며, 이익을 주어야 한다. 그는 그중 어느 것도 확실하지 않다.
조용한 유능함은 때로 존재감을 가린다.
그는 올해 예순여덟이다. 아무리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지만, 현실정치는 숫자에 민감하다. 차기 경쟁자들과 비교해도 적지 않은 나이다. 재선에 나선다 해도, 차기 대선 도전의 교두보라 보기보다는 명예로운 퇴장의 수순처럼 읽힐 수 있다. 다음 대선은 5년 뒤, 그의 나이 일흔셋에나 있으니 더욱 그렇다.
이쯤 되면 그의 머릿속에도 질문이 맴돌 수밖에 없다. GO? STOP? 도전인가? 여기까지인가?
그렇지만 나는 그가 여기서 멈출 거라고 보지 않는다.
수제비와 됫박 쌀, 연탄 몇 장으로 버틴 유년기. 낮엔 은행원, 밤엔 대학생, 새벽엔 고시생이던 시절. 그리고 마침내 경제부총리를 거쳐 대선후보, 경기도지사에 오른 궤적. 그에게는 늘 ‘도전과 의지’ ‘돌파력’이 내재해 있기 때문이다.
현실적으로도 도정에서 특별한 실책이 없고, 야권에서도 눈에 띄는 도전자는 아직 없다. 문제는 여당 내부의 역학관계다.
그의 머릿속 질문은 간단하다. ‘민주당은 나를 다시 선발할까?’, ‘기회를 다시 만들 수 있을까?’ 질문은 간단하지만, 해법은 쉽지 않다. 그렇다고 풀지 못할 문제도 아니다.
그는 대통령과 살갑지 않다. 민주당 내에서도 반기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렇기에 역설적으로, 그에게 가장 큰 정치적 자산은 비명(非明), ‘핵심’에서 비켜 있다는 점일 수 있다.
반명(反明)은 이미 고사한 상태다. 친명(親明)이 당을 장악할수록, 여권 내에서는 균형을 바라는 또 다른 에너지가 분출될 것이다.
친명이라 할 수 없는 그가 중도 확장성과 건전한 대안 그리고 비판의 핵(核)으로 선다면 정치적 자산을 움켜쥔 것이다.
그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하나는 ‘정치적 언어력’이다. 그는 말을 아끼는 스타일이지만, 정치에서 침묵은 곧 공백이다. 조용하지만 들리는 언어가 필요하다. 주요 쟁점에 대해 뜨겁거나, 차갑거나 분명한 입장과 메시지가 필요하다. 김동연은 ‘정책의 언어’에 강한 사람이다. 그 언어를 ‘정치의 언어’로 번역해야 한다. 일관된 광장의 언어로 국민에게 다가설 때, ‘김동연의 브랜드’는 만들어진다.
다른 하나는 ‘정치적 감화(感化力)’, 곧 사람을 모으는 능력이다. 당내에는 비명이라 불리는 정치인들이 꽤 있다. 드러내지는 않지만 내년 지방선거, 3년 뒤 총선에서 자신의 정치적 운명을 불안해하며 숨죽이고 기회를 엿볼 뿐이다. 그들에게 김동연은 유일하게 손잡을 수 있는 정치적 핵(核)이 될 수 있다. 진영의 소모 없이 대화를 만들 수 있는 정치인, 반목의 에너지를 조율할 수 있는 정치인. 지금 민주당 안에 그런 사람은 흔치 않다. 그가 중심이 되어 새로운 흐름을 만들 수 있다면, 단순한 광역단체장이 아니라 민주당 내 건강한 긴장의 상징이 될 수 있다. 그는 다시 만만치 않은 정치의 한 축을 담당할 수 있다.
물론, 김동연이 실제 그리 나설지는 미지수다. 이제 모든 건, 그 자신에게 달렸다.
기회는 다시 온다. 하지만 그 기회는 조용히 오지 않는다. 소란스럽고, 때로는 폭풍처럼 온다.
김동연의 여름, 뜨거울 것 같다.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The brain & action communicato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