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표의 세상만사] 꿈과 희망을 주는 ‘어르신’
"거스름돈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칠천육백 원 맞는데요?"
"전에는 거스름돈이 얼마 안됐는데…."
"아이참! 이제 예순 다섯 넘으셨잖아요."
지난 봄, 산행하다가 낭패를 당한 일이 있습니다. 미끄러운 길에서 넘어지지 않으려고 나무를 붙잡다가 몸이 뒤틀려 허리가 질끈, 충격이 왔지요. 한의원에서 치료를 받았는데 진료비가 전보다 적게 나온 겁니다. 의아해서 물었더니 ‘경로우대’를 적용했다는 것이었지요. 기분이 묘했습니다. 돈이 덜 드니 좋기는 한데, 한편으로는 ‘나도 별수 없이 이제 노인이 되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지요. 예비군복을 벗을 때도 비슷했습니다. 이젠 훈련을 안 받아도 된다는 홀가분함보다는 ‘내 청춘도 이렇게 끝나가는구나!’ 하는 아쉬움이 컸었지요. 그런데 이제는 ‘국가공인 노인’이 됐으니…
며칠 전, 시장엘 가는 길에 아내가 사진 한 컷을 카카오 톡(Kakao Talk)으로 보냈습니다. 앞서가던 저의 뒷모습인데, 보기 민망할 정도로 머리털이 허룩해 보였습니다. 허허함에 가슴이 시렸지요.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이면 사랑이 시작된다"는 말이 있습니다만, 새삼스럽게 아내가 저에게 다시 사랑의 감정을 싹틔웠을 리는 없을 테고, 아마도 "내 남편도 세월엔 별수 없구나!"하는 안쓰러움이 더 컸을 겁니다. 기분이 묘했지요. 아내가 보내준 사진을 보며 가늠하기 어려운 많은 생각과 헛헛함을 허공에 헛기침을 날리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살아오는 동안 저는 제 뒷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지요. 현역 은퇴 후에야 비로소 지난 삶을 돌아보기 시작했습니다만, 생각은 많아졌으나 이를 냉정하게 객관적으로 이성이라는 채로 걸러내는 일에는 소홀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인생은 60살부터라는 말이 있지요. 아니, "있었습니다"라고 해야겠습니다. 100세 시대로 접어든 세상이니 이제는 인생 70살부터라고 해야 맞는 말로 여길 테니까요. 예순부터든 일흔부터든 그게 뭐 그리 중요하겠습니까. 노인이나 ‘늙은이’가 아니라 존경받고 사랑받는 ‘어른’이나 ‘어르신’이 되어야지요.
돌이켜보니 어지간히 바쁘게 살았습니다. 이제 좀 여유가 생겨 곰곰이 돌아보니 참 부족하고 아쉬운 일이 많았지요. 열심히 살았고, 나름대로 인정받은 것도 사실입니다만 일에만 매달려 가정이나 남들에게는 등한시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러다가 어찌어찌 세월이 흐르고 전철을 공짜로 타는 나이가 되었으니 아쉽고 민망한 일입니다. 그러나 어쩌겠습니까? 별수 없이 그냥 인생살이가 그러려니 받아들일 수밖에요.
예전엔 마을에 일이 생기면 찾아가는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마을 입구에 서있는 오래된 느티나무처럼 마을 사람들의 정신적 지주 같은 어르신이 있었지요. 그 어르신을 찾아가 해결해야할 일에 관한 가르침을 듣고 그대로 일을 추진하면 틀림이 없었습니다. "젊은 말이 빨리 달리지만 나이 먹은 말은 지름길을 알고 있다"는 말이 있지요. 그게 젊은 치기(稚氣)만으론 범접할 수 없는 경륜입니다. 인생이 다를 바 없지요. 이순(耳順)에 이르러서야 삶의 참 맛을 알게 된다는 말은 다 이유가 있는 겁니다.
세상사는 게 날이 갈수록 버거워져서 술잔을 기울이는 사람이 많아지고 있지요. 술 몇 잔으론 그 허전함이 쉽게 가실 리 없을 겁니다. 그래도 희망의 끈을 놓지 않으면 좋겠습니다. 죽을힘을 다해 그 힘든 시간을 견디고 이겨내면 그 성취가 더욱 값지지 않겠는지요. 지난 인생을 바탕으로 희망을 주는 어르신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나이 들었다고 다 어른이 아니지요. 내 생각만 옳다고 고집을 부리면 그게 바로 ‘꼰대’입니다. 살아온 경험과 경륜으로 가르침을 주고 꿈과 희망, 용기를 북돋워주는 어른이 참 어르신이지요. 그런 분이 많아지면 좋겠습니다.
홍승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