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립·은둔 청년 방문을 열다] 함께 달린 거리만큼 '소소하지만 확실한 성취감'

③스스로 만드는 ‘괜찮은 하루’

2025-08-19     신연경

고립·은둔청년(이하 위기청년)의 자립이행은 ‘재고립’으로 돌아가는 것을 막는 것이 중요하다. 주변에 조력자가 없는 위기청년들은 지원사업이 중단되면 기존 생활로 돌아가는 경우가 많다. 많은 공공·민간 지원사업들이 초기발굴과 상담에 집중하거나, 앞 단계를 건너뛰고 취업 연계에만 집중해 부작용을 겪었다.

위기청년들에게는 이렇듯 분절된 단기간의 지원이 아닌, 고립에서 벗어나 관계를 맺고 자신의 적성과 진로를 찾아가는 단계를 지켜보는 ‘기다림’이 필요하다. 중부일보는 긴 호흡으로 자립을 향해 나아가는 위기청년들의 곁에서 이들의 변화과정을 함께 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성남시에 위치한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와 중부일보의 협업 프로그램 ‘모멘텀’에 참여하는 위기청년들이 성남시 탄천 일대에서 러닝을 하고 있다. 사진=일하는학교

‘건강한 신체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말처럼, 규칙적인 신체활동은 체력을 키우고 정신건강을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된다.

앞서 보건복지부와 한국사회보건연구원이 2023년 실시한 ‘고립·은둔 청년 실태조사 연구’ 결과를 보면, 청년들은 건강과 관련해 체력 증진을 위한 활동 지원이나 신체 건강 지원과 상담 등을 희망하는 것으로 파악됐다.

청년들은 체육 지원 사업 필요성을 꼽으며 테니스·클라이밍·조깅·싸이클링 등 취미를 가지게 되면 자기 자신에 대한 유능감도 생기고, 다수의 사람이 함께 운동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여러 사람과 모일 수 있는 자리가 마련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나에게 맞는 소소한 습관으로 조금씩 천천히 ‘괜찮은 하루’를 만들어가는 모멘텀 청년들.

이들은 “작은 습관을 만들어 성취감을 느낄 수 있었다”, “각자의 속도가 다르기 때문에 누가 더 빠른지 다른 사람과 비교할 필요 없다는 것을 알게 됐고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다”고 입을 모은다.

매주 러닝·자전거 타기 모임 진행

폭염에 체감온도 39도까지 올라도

성남 탄천에 삼삼오오 모인 청년들

강사 체계적 지도 받으며 스트레칭

태평에서 모란까지 1㎞ 거리 달려

8분대 완주 성공하며 성취감 맛봐

이른 폭염에 체감온도가 39도까지 치솟았던 지난 8월 6일. 경기도 성남시 탄천 일대에 참가 청년들이 삼삼오오 모여 강사의 지도를 받으며 스트레칭에 열중한 모습이었다.

습한 기운까지 더해져 움직이기도 힘든 날인지라 이내 곧 청년들의 얼굴은 붉게 달아올라 땀이 비 오듯 쏟아졌다.

“운동하기 전, 후 스트레칭은 매우 중요해요. 몸을 쭉 늘리면서 자연스럽게 몸을 풀어줘야 해요. 여러분 다치면 안 되니까 힘내서 해봅시다.”

평소 움직임이 적다 보니 몸을 쓰는 것이 익숙하지 않은 탓에 여기저기서 청년들의 “악!” 소리가 들렸다. 그것도 잠시, 강사가 격려하자 하나둘 무릎을 돌리고, 다리를 쭉쭉 늘려가며 스트레칭에 집중했다. 이후 어떻게 달려야 하는지 가르치는 강사의 지도에 맞춰 달릴 준비를 시작했다.

이처럼 모멘텀 참가자들은 매주 월, 화요일이 되면 태평역 근처 탄천 공터에 모여 러닝과 자전거 타기 모임을 가진다. 생계를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청년들이 있어 날짜는 유동적이지만 대체로 시간을 지켜가며 운동을 한다.

성남시에 위치한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와 중부일보의 협업 프로그램 ‘모멘텀’에 참여하는 위기청년들이 성남시 탄천 일대에서 이정현 일하는학교 이사장(맨 왼쪽), 고정현 강사(가운데)와 함께 스트레칭을 하고 있다. 사진=일하는학교

‘모멘텀’은 재고립을 막기 위한 신체활동 기반의 프로그램으로 참가자들 모두 체력이 현저하게 떨어진 상태다. 러닝, 자전거 프로그램 등을 통해 체력을 끌어올리고, 일상생활을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 주는 것이 목적이다.

그동안 러닝모임은 자체적으로 탄천을 달리는 방식으로 운영됐다. 그러나 제대로 된 자세를 알지 못한 터라 중간에 지치는 경우가 많았고, 부상을 입은 청년도 있었다. 뛰다 걷다를 반복하다 보니 지루한 운동이라는 인식이 생기면서 결석을 하는 청년도 생겼다.

이에 청년들의 울타리인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는 운동에 흥미를 붙일 수 있도록 체계적인 러닝교육이 필요하다고 판단, 프리랜서인 고정현 강사를 초청해 러닝 모임을 진행하고 있다.

이날 목적지는 모란이었다. 태평에서 모란까지 1㎞ 남짓한 거리, 목표는 8분 안에 완주하기였다. 날씨 탓에 거리는 줄이되 강도를 높이기로 했다. 몸을 푼 청년들은 멀리 보이는 다리를 보며 힘차게 출발했다.

시작한 지 5분도 되지 않았을 때 뒤처지는 무리가 발생했지만 강사가 후미로 달려와 청년들을 이끌었다. 다시 호흡을 가다듬었고, 전보다는 조금 속도를 줄이면서 뛰었다.

기초체력이 부족한 청년들이기에 충분히 몸을 풀었어도 무리가 올 가능성이 높다. 뛰다가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멈춰 선 청년도 있었고, 숨이 가빠져 중도 포기 선언을 한 청년도 있었다.

성남시에 위치한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와 중부일보의 협업 프로그램 ‘모멘텀’에 참여하는 위기청년들이 성남시 탄천 일대에서 러닝을 하고 있다. 사진=일하는학교

박주원(가명) 씨는 “언제 운동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너무 오랜만에 뛰어서 그런지 온몸이 비명을 지르고 있다”고 말했다. 이럴 때마다 이정현 일하는학교 이사장이 맨 뒤에서 청년들을 독려했다. 몸 상태를 점검하고 대화를 하면서 다시 동력을 불어넣었다.

‘모멘텀’ 참가 청년들은 이날의 목표였던 8분대 진입 달성에 성공하며 성취 경험을 맛봤다. 목적지에 도착한 이들은 서로 하이파이브를 하며 응원을 보냈고, 운동 후 쿨다운 스트레칭으로 놀란 근육들을 풀어주는 시간을 가지고 휴식을 취했다.

이런 가운데 러닝을 배우고 싶어 참여했다는 박시연(가명)씨는 고 강사에게 전력 질주하는 방법을 물어 별도로 스프린트를 배우기도 했다. 박 씨는 “평소 운동을 별도로 하지는 않았다. 신체활동이 별로 없어서 오늘 힘들지 않을까 싶었다. 그런데 강사님이 할 수 있다며 격려와 칭찬을 아끼지 않고 응원해줘 더 적극적으로 배우고 싶다는 욕구가 생겼다”고 이야기했다.

‘모멘텀’ 청년들은 러닝 모임을 통해 운동에 흥미가 생겼다고 했다. 김윤재(가명) 씨는 “오랜만에 뛰어서 흔들림도 있었으나 꾸준히 참여하고 개인적으로도 운동을 해서 나만의 템포를 찾아야겠다”고 했다. 김선우(가명) 씨도 “계속하다 보니 지난번보다 체력이 좋아진 느낌이 든다. 달리는 방법을 배운 덕분에 오늘은 더 잘 뛰어서 목표를 달성했다고 생각한다”며 미소를 지었다.

모멘텀 참가자들 운동에 흥미 느껴

"지난번보다 체력 좋아져 목표 달성"

"나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 얻었다"

러닝 프로그램을 지도한 고정현 강사는 “친구들이 체력적으로 많이 떨어져 있는데도 잘 따라와 줬다. 시작부터 강도 높은 트레이닝을 진행하면 무리일 수 있어 가벼운 스트레칭을 통해 몸을 전체적으로 풀어줬다”며 “거리는 길지 않지만 중도 포기 없이 완주해줘서 잘했다고 말해주고 싶다. 기록을 줄여가면서 혼자 운동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싶다”고 전했다.

이정현 사회적협동조합 일하는학교 이사장은 “대다수의 고립청년들은 건강 문제도 가지고 있다. 경제적 문제나 무기력함 때문에 운동량이 극히 적고 건강을 살피지 못하는 상태”라면서 “이런 취약한 건강상태는 스트레스 상황을 견딜 수 없다. 진로 탐색이나 취업 준비 활동은 자신의 역량을 발휘해 과제를 해결하고 평가를 받는 과정의 연속인데 버티지를 못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고립을 벗어나 진로를 찾고 취업을 준비하는 상태로 전환하기 위해선 준비의 시간이 필요하다”며 “안정적인 식생활과 일상운동을 통한 체력 향상과 건강 개선이 가장 중요한 밑거름이다. 앞으로도 매주 운동 모임을 통해서 청년들의 체력을 끌어올리고 일상에 활력을 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신연경기자


*이 기사는 지역신문발전위원회의 기금을 지원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