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석칼럼] 거래, 혹은 싸움의 기술

2025-09-04     문기석

이재명 대통령이 미국에서 보여준 ‘거래의 기술’과 달리 당원들의 압도적 지지로 여당 당권을 한손에 쥔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사실상 거래가 아닌 ‘싸움의 기술’로 연일 정치판을 흔들고 있다. 정치에 입문하기 전 부터 지금까지 과정이 그렇고 앞으로의 여정도 강성지지층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란 예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이 대통령은 내려가고 있다지만 윤 전 대통령의 그것과 비교되면서 초반부터 좋은 지지율로 국정을 장악하고 있다. 이번 미국에서의 일정도 여러 우려를 간단없이 불식시켰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한미 정상회담을 마친 후 “참모들 사이에선 젤렌스키 때와 같은 상황이 벌어지지 않을까 하는 우려가 나왔지만 나는 그러지 않을 것이란 점을 알고 있었다"는 대목이 그것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쓴 ‘거래의 기술’을 읽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트럼프가 성경 다음으로 좋아하는 책이라 스스로 밝힌 ‘거래의 기술’ 1987년 12월 미국 랜덤하우스에서 펴낸 회고록이다. 저널리스트 토니 슈워츠가 대필했다고 전해진다. 눈에 띄는 대목은 뉴욕 군사학교에 다니던 10대 시절을 회고하며 강자(强者)를 대하는 처세술이다. ‘강자에겐 먼저 고개를 숙여라’라는 메시지로 이 대통령이 트럼프에게 칭찬을 퍼부으며 추켜세운 실마리로 작용한 듯 보인다. 책에서 보듯 트럼프 역시 상대방이 강하지만 공격할 의사가 없음을 눈치 채면 상대방을 남자로서 대접했고 사고(思考)에 의해서라기보다 본능적으로 이러한 사실을 간파하며 아주 친해진 일이 현실로 이어지면서다.

트럼프가 정상회담 3시간 전 소셜미디어에 “한국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가? 숙청(purge)이나 혁명처럼 보인다”라며 전 세계 언론의 관심을 집중시킨 이유도 해석할 수 있는 대목이다. 여기에 트럼프는 언론을 이용해 ‘남의 관심을 불러 동요를 일으키는 것’의 중요성 마저 강조한다. “당신이 조금 색다르거나 용기가 뛰어나거나 무언가 대담하고 논쟁거리가 되는 일을 하면 신문은 당신의 기사를 쓰게 된다. 따라서 나는 일을 조금 색다르게 처리했으며, 논쟁이 빚어지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 때문에 내가 관여한 거래는 다소 허황돼 보이기도 했다” 는 다소 언론을 이용하는 내용이다. 이 만한 거래의 기술이 없다.

그래서인지 트럼프는 일을 성공시키는 마지막 열쇠는 약간의 허세라고 말하며 약간의 과장은 아무런 손해도 가져오지 않는 법이고 사람들은 가장 크고 위대하며 특별한 대상을 신뢰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런 속성은 건전한 과장이고 과대망상의 순수한 형태로서 아주 효과적인 선전 수단이 될 수 있다는 말도 하고 있다. 원문이 어렵고 꼬여서 그렇지 쉽게 풀어 보자면 자신의 과장이 일의 성사를 위해서는 합리화 될 수 있다는 얘기로 들린다. 실제 여러 나라를 상대로 이 얘기는 성공적으로 먹혀들었고 적지 않은 세계 정상들이 트럼프의 이런 이론에 맞춰가며 나름의 국익을 챙기려 하고 있다. 역시 거래의 기술이다.

알다시피 이번 미국과의 관세 협상이 최악의 결과를 피할 수 있었던 것은 이런 거래의 기술 이외 ‘K-조선’의 기여 때문이란 평가도 많다. 다시말해 미국이 중국에 세계 패권을 뺏기지 않으려면 해군력 강화가 중요하고 조선업의 부활이 절실했을 생각이다. 그래서 우리 정부가 미국의 필요를 정확히 봤고 마스가 ‘MASGA(Make America Shipbuilding Great Again, 미국 조선업을 다시 위대하게)’라는 글자를 새긴 모자를 만들어 트럼프의 싸인을 받았는지 모른다. 미국은 제2차 세계대전 직후엔 세계 최대 선단을 보유한 조선 최강국이었지만 이제는 한국의 조선 기술을 이전받아야 할 정도로 쇠락했다. 이런 환경에 이미 우리는 싸움의 기술을 터득한 셈이다. 지금의 세계 경제 환경에서 제조업 강국의 지위를 유지하는 게 정말 중요하고 우리 제조업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이미 메모리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시장 점유율과 제조업의 부가가치 창출력도 세계 2위 수준이다. 싸움에서 맞을 수 밖에 없는 맷집이 그 만큼 커진 일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2일 국무회의를 열고 “기업이 있어야 노동자가 존재하고 노동자 협력이 전제돼야 기업도 안정된 경영 환경을 누릴 수 있다”고 말했다. 재계 반대 속에 국회를 통과한 노란봉투법을 의결하며 이같이 말했는데 모두 발언에서 “새는 양 날개로 난다. 기업과 노동이 둘 다 중요하다”며 기업·노동 양 날개의 모두가 중요하다는 일종의 거래의 기술을 강조한 것으로 여겨진다. 하지만 정청래 민주당 대표는 이른바 ‘검찰 개혁’을 두고도 대통령실과 정부, 여당이 갈등을 빚고 있다는 관측에 대해 “이견은 없다”며 일축했지만 지켜보는 사람들의 시선은 당장 피하기만 할 뿐, 동의는 할 수 없는 상황이다. 밀리면 끝이라는 절박함이 아니다. 치고 나가서 ‘추석 전에’ 뭔가를 동조세력에게 기쁨을 가져다 줘야 하는 의무감이 더 맞는 표현일 수 있다.

거래의 기술과 싸움의 기술중 어떤 것이 일을 해결하는데 성공적인지는 장담하기 어렵다. 다만 나그네의 외투를 벗기는 것이 싸움의 기술같은 무력으로 행사되는 강풍인지 따가운 햇볕으로 스스로 외투를 벗기는 거래의 기술인지의 선택이다. 물론 이 대통령이나 정 대표가 적지않게 살아온 경험상 그 답을 모를 리 없다. 그렇지 않아도 이 대통령은 그간 이러한 햇볕정책으로 좋은 신호를 받고 있다. 반응이야 국민임명식에서 보여진 현실처럼 반으로 쪼개져 있지만 대체로 긍정적이란 평가다. 단지 급하게 나가는 민주당의 그것을 말려야 한다는 당내 고문들의 조언이 먹혀들면 내년의 지방선거나 이어지는 모든 선거는 쉬워질 수 있다. 그럼에도 정 대표의 보여지는 당장 여러 장면들은 어렵기만 하다. 나머지 선택은 철저히 이 대통령에 달려있다. 거래나 싸움의 기술, 어떤 것을 적용해 국익이나 당내 산적한 상황들을 정리해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한 물음이다.

문기석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