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재도전 발목잡는 보증제도

2025-09-07     강소하

20년 넘게 제조업 현장에서 고군분투했다는 도내 한 중소기업 대표가 그야말로 ‘피를 토하는 심정’인 듯한 얼굴로 말문을 열었다. 13년여 전 신용보증기금을 통해 운영자금을 융통했는데, 점차 사업이 힘들어지면서 연체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것이다. 이후 채무는 모두 상환했고, 우여곡절 끝에 재기를 꿈꿀 수 있는 시점에 도달하게 됐다. 게다가, 수년간 성실히 경영을 이어왔던 터라 별다른 걱정 없이 다시금 희망에 찬 발걸음을 재촉했다. 하지만, 보증서 발급 신청은 거절당했다.

기업의 현재 재무 건전성이나 객관적인 발전 가능성 등에 대해 아무리 설명해도 소용 없었다. 심지어 자신이 살고 있는 아파트를 담보로 할 수 있으니 고려해 달라며 사정했지만 결과는 마찬가지였다. 문제는 그 이유로 듣게 된 답변이었다. 금융권에서 통용되는 신용정보 기록의 유무와 별개로, 사고 처리된 기록이 내부적으로는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었다. 10년도 더 지난 연체기록 탓이라니, 너무나 황당한 일이었지만 그에게 선택지는 없었다.

기업을 운영하기 위해 그는 어쩔 수 없이 금융권을 찾았고, 거주지를 담보로 대출은 실행됐다. 물론, 금리는 상대적으로 꽤나 높을 수밖에 없었다. 금융권에선 아파트 담보를 인정받아 대출이 가능했는데, 정작 중소기업의 재기를 돕겠다는 정책 제도에서는 과거 기록만을 이유로 문턱조차 넘지 못한 셈이다. 제도와 현실의 괴리가 얼마나 큰지 절실히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중소기업 신용보증 제도는 담보력이 부족하거나 일시적인 어려움으로 자금 조달에 한계를 겪는 기업들에게 재기의 기회를 주기 위해 마련된 통로 중 하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제 현장에서 마주하는 이같은 사례는 그 취지가 상실됐다고 보기에 충분하지 않을까 싶다. 위험을 분산하고 사회적 가치를 창출하기 위한 공공의 장치인 신용보증 제도가 ‘위험 회피’만을 앞세운 운영 방식을 고수한다는 것은 결국 취지에 역행할 뿐이다.

기업이 성장 과정에서 시행착오를 겪는 건 당연한 일이다. 중요한 것은 그 이후의 태도와 회복 과정일 것이다. 무엇보다, 채무를 상환하고 재무 건전성을 회복하며 성실히 경영을 이어가는 기업을 과거의 그림자만을 잣대로 평가하는 것은 ‘재기의 기회를 원천 봉쇄한다’는 점에서 매우 심각한 제도적 불합리성이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많은 중소기업이 매출 급감, 인력 감축, 원자재 가격 상승, 공급망 차질 등 복합적 위기를 겪고 있으며, 이들에게 자금 조달은 그야말로 생존을 위한 절박한 조건이 되기도 한다. 만약, 이러한 상황에서 보증서 발급이 거절된다면, 이는 기업의 정상화를 넘어 기업을 죽이는 결과로까지 이어지는 행위와 다를 바 없어진다는 얘기다. 자금 마련을 위해 고금리 대출이나 과도한 담보 제공에 의존, 가계와 기업 모두의 재무 구조를 악화시킬 것은 불보듯 뻔한 일이다. 특정 기업만의 문제가 아니라 수많은 중소기업이 겪고 있는 보증서 발급의 높은 장벽은 기업인의 재도전 의지를 꺾고, 기업의 정상화를 가로 막으며, 지역 경제에도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요인이 된다.

과거 기록보다 현재의 성실 상환, 재무 건전성, 미래 성장 가능성에 더 큰 비중을 두는 평가 체계로의 전환이 아쉽기만 하다. 기존의 재무 데이터 중심 평가에서 벗어나 기업이 보유한 기술력, 특허, 사업 모델의 혁신성, 그리고 고용 창출 효과와 같은 비금융 데이터 등을 신용평가에 적극 활용하면 어떨까 하는 마음이다. 최선의 노력을 다해 기업을 경영하는 사람들에게 재도전 기회를 제공하는 것은 단순한 금융 지원이 아니기에 더욱 그렇다.

기관 내부 기록의 경우 재기 가능성을 고려해 일정 기간이 지나면 효력을 잃게 하거나, 최소한 그 영향력을 대폭 축소하는 방향으로 제도를 개선했으면 한다. 과거 연체 기록에 대한 가중치를 낮추고, 경영자의 재기 의지, 사업 계획의 타당성 등을 평가하는 정성적 심사 항목을 확대하는 것도 하나의 대안이 될 것이다. 중소기업의 재도전을 가로막는 보증제도의 자기모순을 바로잡는 일, 그것이야말로 지금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시급한 과제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