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칼럼] 낮은 곳에서 함께하는 기초의회를 바라며
‘낮은 곳으로 임하소서’는 기독교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인간의 몸으로 이 땅에 오시어 가장 소외된 이들과 같이하는 사랑과 겸손의 메시지를 함축하는 말이다. 불교에서는 깨달음을 얻고도 중생의 고통을 외면치 않고 기꺼이 낮은 곳, 고통스러운 윤회의 세계로 돌아와 자비를 베푸는 ‘보살의 서원’이 있다. 이 두 종교적 가르침은, 본질적으로 약자의 아픔을 헤아리고 같이하며, 개인의 안위보다 공동체의 행복을 우선하는 숭고한 이상을 담고 있다.
선출직 정치인들이 선거에 나서기 전, 우리는 이들의 입에서 바로 저 ‘낮은 곳’을 향한 열정과 서민과의 동고동락을 약속하는 감동적인 수많은 멘트들을 듣는다. 유세 현장에서 맨손으로 주민의 손을 잡고, 아픈 역사를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때로는 무릎까지 꿇는 모습에서 “정치도 저렇게 사람 사는 냄새가 나야지!”라며 작은 희망을 품기도 한다. 당선증을 손에 쥔 이들은 이내 ‘시민의 종’을 자처하며 약속을 지키겠다고 다짐한다.
‘화장실 들어갈 때와 나올 때가 틀리다’고 했던가? ‘금배지’를 다는 순간, ‘변심’은 마치 하나의 정치적 의례라도 되는 듯 당연시되는 경향을 보인다. 낮은 곳에서 함께 하겠다며 외치던 모습이, 높은 곳의 권력과 이해관계를 쫒는 데 급급한 모습으로 바뀌는 것은 비단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특히 지역 밀착형 정치를 펼쳐야 할 도내 기초의회 의원들의 일부 행보는 시민들의 기대와는 너무나도 동떨어져 있어 씁쓸할 때가 있다.
가장 흔하게 접할 수 있는 변심의 유형은 바로 ‘자리 다툼’이다. 당선 전에는 지역 발전과 주민 복지를 최우선 가치로 내세웠던 의원들이, 막상 의회 문턱을 넘어서면 원구성을 놓고 이전투구(泥土鬪狗)를 벌이는 광경이 펼쳐진다. 최근까지도 도의회는 물론 도내 기초의회에서도 후반기 원구성을 두고 갈등이 지속되어 왔다.
의장단 자리와 상임위원장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신경전은 때로 의회 파행으로 이어지고, 그 과정에서 정작 시급히 처리돼야 할 주민 생활 밀착형 조례나 현안들은 뒷전으로 밀리기 일쑤다. ‘오직 주민만을 위해 일하겠다’던 초심은 어디로 갔는지, ‘정당의 이익’ 혹은 ‘개인의 권력욕’을 채우는 데 매몰되는 모습은 당선 전 약속과는 완벽하게 변심한 행태라고 볼 수밖에 없다. 시민들은 본인들의 문제를 해결해 달라고 표를 줬지, 의원들끼리 싸우라고 뽑아준 게 아니라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또 다른 ‘변심’은 ‘혈세 낭비’ 논란이다. 선거 전에는 후보들마다 불필요한 예산 낭비를 막고, 오직 주민들을 위한 곳에 세금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하지만 당선 후에는 그 약속이 무색하게도 ‘지방의회 해외연수’를 둘러싼 문제가 항상 불거진다. 항공료 등 출장비를 부풀리거나, 선진지 견학이라는 명목으로 사실상 외유성 관광을 떠나는 사례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다.
최근 국민권익위원회가 3년간 전국 지방의회 의원들의 국외출장 915건을 점검한 결과, 항공권 위·변조 등 부풀리기가 적발돼 경찰 수사까지 의뢰된 실정인데다 수사 중임에도 해외연수를 강행하는 의원들을 보면 혀를 찰 정도다. 연간 160억 원에 달하는 혈세가 지방의회 해외연수에 쓰인다는 비판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는 표현이 절로 떠오르게 한다.
물론, 정치인도 사람인지라 현실적인 제약에 부딪히거나 환경 변화에 따라 생각이 바뀔 수도 있다. 그러나 많은 유권자들이 분노하고 ‘변심했다’고 느끼는 지점은, 선거 표를 얻기 위해 달콤한 약속을 늘어놓고선, 당선 후에는 그 약속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자신의 기득권이나 당리당략, 혹은 사적인 이익을 챙기는 데 급급해하는 모습 때문이다.
‘금배지 달면 변한다’는 인식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지는 않을까? 초심을 잃지 않는 우직한 소신이야말로 선출직 공직자가 보여줄 수 있는 가장 큰 감동이다.
내년 6월이면 또다시 전국동시지방선거가 치뤄진다. ‘시민의 종’이라 말할 때의 겸손함이, 당선 후에도 계속되기를 간절히 바라본다.
김호 지역사회부 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