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기자가 간다] 한국 야구에 숙려기간은 없다
2025년 야구는 전례에 보기 드문 초유의 상위권 경쟁이다. 하루가 멀다 하고 한게임 차이로 순위가 뒤바뀌고 있다. 시즌 막바지까지 누구도 포스트시즌 진출팀을 예상할 수 없다.
시즌 초, 전문가들은 상위권을 기아, LG, 삼성, KT, 한화로, 하위권을 두산, 롯데, SSG, NC, 키움으로 예상했다.
2025년 9월 말 기준, 현재 1위 LG, 2위 한화, 3위 SSG, 4위 삼성, 5위 KT, 6위 NC, 7위 롯데, 8위 기아, 9위 두산, 10위 키움 이다. 전문가들 예상과는 약간 다른 판세다.
주목할 만한 점은 독주가 사라지고 평준화 됐다는 것이다. 이미 LG와 한화가 1위, 2위의 승기를 잡았지만, 3위부터 8위까지의 중위권 6개 팀은 초박빙으로 시즌을 이끌고 있다.
현재 하위권 두 팀은 감독 대행 체제로 올 시즌을 마감할 것으로 보인다. 前 두산 감독은 사임했고, 前 키움 감독은 경질됐다. 순위 경쟁에서 밀린 두 팀의 감독은 성적 부진의 모든 책임을 떠안고 팀을 떠났다.
부진한 선수들도 냉정한 분위기속에 2군으로 밀렸다. 베테랑 선수라도 예외는 없었다. 8월, 한화는 안치홍을, 삼성은 박병호를 1군에서 말소했다. 탑 커리어 용병들도 마찬가지다. 대표적으로 키움의 야시엘 푸이그, 롯데의 터커 데이비슨, KT의 윌리엄 쿠에바스와 멜 로하스가 방출됐다.
전반기 치열한 경쟁 속에 각 구단 프런트는 실익을 따져가며 깜짝 트레이드를 단행 했다. 전반기 끝자락에 한화와 NC의 트레이드가 신선했다. 한화는 베테랑 손아섭을 안았고, NC는 내년 신인 지명권을 택했다. 곧 한화는 시즌 우승의 속내를 내비췄고, NC는 미래 전력 자원을 택했다. 감독과 프런트의 승부수가 중위권 경쟁을 더욱 극대화 시켰다.
시즌 초반부터 예상을 뒤엎고 불붙기 시작한 뜨거운 야구 열기를 야구팬들은 한없이 행복해 했다. 야구 열기만큼 강력한 폭염 속에 야구장 응원석에는 워터쇼가 펼쳐졌다. 만원 관중은 기본이다. 이제 티켓 매진은 놀랍지도 않다.
그에 반해 각 구단 감독과 프런트, 선수들은 매일매일 살얼음이다. 칭찬에 인색한 한국 야구이긴 하지만, 야구팬이 늘어난 만큼 질타의 화살도 늘었다.
한 게임 또는 반 게임 차이로 6개 팀이 나란히 어깨동무를 하고 있으니 매 경기가 총력전이고 분위기는 한국시리즈를 방불케 한다. 그러니 응원석은 용광로지만 덕아웃은 살얼음이다.
야구는 데이터로 선수의 실력을 평가한다. 커리어가 좋은 선수들은 감독이 믿는 필승 라인업이다. 그 선수가 부진해도 맨탈을 끌어올릴 때까지 매번의 게임에 믿고 기용한다. 감독은 선수를 믿고 선수는 감독을 따르고, 그렇게 숙려기간을 거친다.
그러나 올해는 분위기가 달랐다. 1군에서 내려가고 2군에서 올리고 반복의 연속이었다. 기다림이 사라진 용서 없는 시즌이었다. 한 게임 차이로 가을 야구 문턱을 넘느냐 그럻지 못하느냐 하는 분위기, 그럴 만도 하다.
이제 144경기 페넌트레이스의 끝이 보인다. 기량을 회복할 때까지 선수를 믿고 기다렸던 숙려기간이 사라진 2025년 KBO 정규리그. 덕분에 팬들은 뜨거웠고 선수들은 추웠다.
임태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