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종칼럼] 사라져 가는 한가위 차례상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 보름달처럼 풍성한 날이 바로 한가위 추석이다. 옛날 어렸을 적의 추석은 설 명절과 더불어 일 년 중 손꼽아 기다리던 최고의 명절이었다. 모르긴 해도,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누구나 좋아하고 기뻐했던 명절이 바로 한가위였을 것이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아라.” 이 격언은 단순히 먹을 것이 풍족함을 넘어, 모든 것이 조화롭고 만족스러운 상태를 말한다. 산과 들에는 오곡백과가 알알이 무르익어 추수의 기쁨이 있고, 하늘에는 달이 가장 둥글게 차올라 있다. 보름달은 높고 낮음 없이 세상의 모든 곳을 고루 비추며 살펴보고 있다. 사람들은 그 둥근 달을 향해 한 해의 풍년에 대한 감사와 더불어 가족의 건강과 행복을 기원하는 간절한 기도를 하였다. 땅이 주는 풍요로움에 감사하고, 달빛이 주는 평온함에 세상을 향한 자비심이 충만 하는 날, 이것이 바로 추석의 진정한 의미이다.
지난 추석에는 아쉽게도 비구름이 하늘을 가려 보름달을 제대로 보지 못했다. 구름에 가려 둥근 달은 없었지만, 모두가 알고 있다. 그 구름 위에는 분명 휘영청 밝고 둥근 보름달이 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지혜로운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 너머를 본다. 구름에 가린 달이라도 마음의 눈으로 보면 밝고 둥근 아름다운 달을 분명히 보았을 것이다. 이기심과 편리함에 가려진 가족의 사랑이나 전통의 가치와도 같다. 당장의 번거로움에 가려져 희미해 보일지라도, 그 근본적인 소중함은 변하지 않고 항상 그 자리에 둥글게 떠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얼마 전, 추석 차례에 대한 설문 조사를 뉴스에서 봤었다. 그 설문 결과는 내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명절에 집에서 차례를 지내는 가구의 비율이 40% 이내라는 수치 때문이었다. 앞으로 해가 가면 갈수록 그 비율이 더욱 줄어들 것이라는 현실을 생각하니, 마음 한구석이 허전하고 마치 우리 민족의 근본 가치의 하나인 효를 잃어버린듯 하여 마음이 아팠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뉴스를 진행하던 앵커와 기자는 자신은 차례를 지냈다고 하여 그나마 위안을 받았다. 주위를 둘러보아도, 가정이 화목하고 잘 사는 사람들은 대체적으로 조상에 대한 제사나 차례를 소홀히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는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 행위 자체가 가족의 화목을 위한 중요한 매개체가 되어주기 때문이다.
차례와 제사의 가치는 돈이나 번거로움으로 따질 일이 아니다. 절대적인 우리들의 정서이자, 정체성이고 소중한 문화이다.
차례와 제사는 단순히 형식적인 의식이 아니다. 이는 흩어져 살던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가족간의 정을 나누는 귀한 계기가 될 것이다. 음식을 함께 준비하고, 조상님께 예를 올리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서로의 안부를 묻고, 그래서 우리는 한가족이라는 것을 알고 돈독한 정을 쌓을 수 있다.
특히 돌아가신 조상님들과의 아름다운 추억을 이야기하며, 그분들의 삶을 기리고 감사하는 시간을 갖는 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의미가 있다. 추억을 공유하며 가족의 역사를 되짚어보는 일은, 아이들에게 자신의 뿌리를 알려주는 소중한 현장 교육의 자리가 될 것이다.
이 세상에 뿌리 없는 나무가 존재할 수 없듯이, 조상 없는 내가 존재할 수 없다. 지금 내가 이 땅에 서서 숨 쉬고, 웃고, 살아가고 있는 것은 모두 우리 선조들의 헌신과 노고 덕분이다. 조상들의 굳건한 삶이 있었기에 지금의 내가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
나를 있게 한 나의 뿌리, 나의 조상들을 위해 명절 때 만이라도 차례를 지내는게 최소한의 자손된 도리이다. 차례를 지내는 일은 쉬운 일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어려운 일도 아니다. 마음만 내면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물질적인 풍요가 전통을 압도하는 시대이지만, 마음의 풍요를 잃지 않기 위해 우리의 소중한 전통을 지켜나가야 할 것이다. 한가위의 풍요로운 둥근 보름달처럼, 우리 모두가 자신의 근본과 뿌리를 잊지 않고 감사하며 살아갈 때 비로소 옳은 사람됨이 완성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