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시대] 30년 지방자치, 아직 남은 과제들

2025-10-21     이진수

지방의회 독립성 강화,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

1991년 부활한 지방의회가 올해로 34년째를 맞는다. 그동안 상당한 발전이 있었지만, 지방의회가 집행기관과 진정으로 대등한 관계를 형성했는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논란이 있다. 이 논의의 중심에 ‘지방의회법’ 제정이라는 과제가 놓여 있다.

국회가 ‘국회법’으로 독립적 운영 기반을 마련한 것처럼, 지방의회도 자체 법률을 통해 보다 안정적인 제도적 기반을 확립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이 제안은 지난 수년간 국회에서 번번이 진전을 보지 못했다. 제21대 국회에서 제출된 4건의 법안이 자동 폐기되었고, 제22대 국회에서도 4건의 법안이 행정안전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역사가 남긴 구조적 과제

지방의회의 현재 위치를 이해하려면 역사적 맥락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1952년 한국전쟁 중에도 지방의회의원 선거가 실시되어 최초의 지방의회가 구성되었으나, 1961년 5.16 군사정변으로 강제 해산되었다. 이후 30년간 지방자치는 중단되었고, 이 긴 공백은 ‘제도적 기억의 단절’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1991년 민주화의 흐름 속에서 지방의회가 부활했지만, 이는 아래로부터의 권력 이양이라기보다 중앙정부 주도의 점진적 복원에 가까웠다. 독립적인 지방 입법 관행의 전통 없이, 중앙 관료제가 설계한 틀 안에서 활동을 시작해야 했던 것이다. 이러한 출발점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집행부 우위 구조의 배경이 되었다.

이후 지방의회는 점진적으로 발전했다. 2006년 지방의회의원이 무보수 명예직에서 유급 상임직으로 전환되면서 의정 활동이 본격화되었다. 2014년부터는 시도의회에서 의원 발의 조례안이 단체장 발의를 넘어서기 시작했다. 2022년 지방자치법 전면 개정으로 부분적 인사권 독립과 정책지원 전문인력 제도가 도입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개선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제도적 제약은 여전히 남아있다.

현행 제도의 구조적 한계

현재 지방의회는 ‘지방자치법’이라는 단일 법률 안에 집행기관과 함께 규정된다. 이 구조가 여러 제도적 제약을 만들어낸다는 지적이 지속적으로 제기되어 왔다.

먼저 인사권의 경우, 2022년 개정으로 광역의회 의장에게 사무직원 임명권이 부여되었지만 이는 부분적 개선에 그쳤다. 기초의회는 여전히 의장의 추천을 받아 단체장이 임명하는 구조로, 실질적 인사권이 집행부에 남아있다. 더욱이 의회 사무기구의 전체 규모와 직제는 대통령령과 총액인건비 제도의 통제를 받아, 의회가 필요에 따라 독자적으로 조직을 확대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예산 측면의 제약도 상당하다. 지방의회는 독자적 예산 편성권을 갖지 못한다. 의회 예산은 집행기관이 편성한 전체 예산안의 일부로 제출되며, 의회는 이를 심의하고 확정할 뿐이다. 특히 집행기관의 동의 없이는 지출 예산 각 항의 금액을 증액하거나 새로운 비용 항목을 설치할 수 없어, 의회의 재정적 자율성이 충분히 확보되지 못한다.

조례 제정권 역시 제약을 받는다. 지방자치법은 조례 제정 범위를 ‘법령의 범위에서’로 규정하고 있다. 이는 종종 상위법에 명시적 근거가 없는 사안에 대해 지방의회가 선제적으로 입법하는 것을 어렵게 만든다. 개혁을 주장하는 측에서는 이를 ‘법령에 위반되지 않는 범위에서’로 변경해야 한다고 제안한다. 표현은 미묘하게 다르지만, 지역 특성을 반영한 창의적 입법 활동의 범위를 상당히 확대할 수 있는 변화다.

전문성 지원 체계도 개선이 필요한 영역이다. 정책지원 전문인력 제도가 도입되었지만 의원 정원의 2분의 1 범위 내에서만 채용이 가능해 실질적 지원에는 한계가 있다. 이는 의원 개인 보좌관이 배치되고 상임위별 전문 인력이 풍부한 미국, 정당 차원의 지원이 활발한 일본 등과 비교할 때 열악한 수준이다.

지방의회법이 제시하는 방향

제안된 지방의회법안은 이러한 제도적 제약을 해소하고 의회의 기반을 강화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2024년 6월 이해식 의원이 대표 발의한 법안을 중심으로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의장의 당적 보유를 금지해 정치적 중립성을 제고하고, 상임위원회 청문회와 감사원에 대한 감사 청구권을 신설해 견제 기능을 실질적으로 강화하는 내용이 담겨있다.

조직과 인사 측면에서는 의회가 독립적인 조직권과 예산 편성권을 확보하도록 하며, 정책지원 인력 규모를 의회가 조례로 자율적으로 결정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포함된다. 이는 의회가 필요에 따라 전문 인력을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하는 것이다.

윤리와 이해충돌 방지 측면에서도 기존보다 구체적인 규정을 두고 있다. 사적 이해관계 등록, 이해충돌 신고 및 회피 등의 절차를 명시하여, 의회의 권한 확대와 함께 책임성도 강화하려는 의도를 담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지방의회의 운영 패러다임을 점진적으로 개선하려는 노력으로 이해할 수 있다. 국회와 행정부가 각자의 영역에서 독립적으로 운영되듯, 지방의회와 단체장 간에도 보다 균형잡힌 관계를 모색하는 것이다.

신중론의 배경과 과제

그러나 법안 통과에는 여러 고려사항이 존재한다. 무엇보다 지방의원에 대한 사회적 신뢰 수준이 충분히 높지 않다는 점이 부담 요인으로 작용한다. 일부 의원들의 비효율적 활동이나 도덕성 문제가 보도될 때마다 권한 확대에 대한 우려가 제기되는 것이 현실이다.

재정 부담에 대한 우려도 있다. 의회에 독립적 예산 편성권을 부여하면 조직과 인력, 예산이 과도하게 증가하여 주민들의 세금 부담을 가중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또한 강화된 권한을 바탕으로 의회가 과도한 견제로 행정의 효율성을 저해하거나, 감사 요구권 등을 정치적 도구로 활용할 가능성에 대한 우려도 제기된다.

이는 일종의 악순환 구조를 형성하기도 한다. 제한된 권한과 자원은 의정 성과의 가시성을 낮추고, 이는 다시 부정적 평가로 이어져 제도 개선을 어렵게 만든다. 이 구조를 개선하려면 제도 정비와 함께 의회 스스로의 쇄신 노력이 병행될 필요가 있다. 의회가 윤리 기준을 강화하고 투명성을 제고하며 구체적 성과를 통해 신뢰를 회복하는 것과, 제도적 기반을 확충하는 것이 함께 진행되어야 한다는 의미다.

복합적인 이해관계

법안 진전이 더딘 데는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복합적인 입장이 작용한다. 전국 지방의회와 관련 협의체들은 결의안 채택과 정책 토론회 개최 등을 통해 법안 통과를 적극적으로 촉구하고 있다. 이들에게 지방의회법 제정은 기관의 정체성과 직결된 과제다.

반면 행정안전부는 신중한 입장을 견지한다. 공식적으로 법 제정을 반대하지는 않지만,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표명하며 전국적 행정 체계의 일관성 유지를 강조한다. 중앙정부의 관리·감독 권한을 일정 수준 유지하려는 관료 조직의 속성이 반영된 것으로 볼 수 있다.

단체장들의 입장은 더욱 복합적이다. 지방분권이라는 대의에는 공감하면서도, 현재의 권한 배분 구조 변화에 대해서는 유보적일 수 있다. 중앙정부로부터 더 많은 권한을 이양받는 데는 적극적이되, 그 권한을 의회와 나누는 것에는 신중한 태도를 보이는 경향이 있다. 실제로 과거 지방의회의 독립적 감사기구 설치 논의 과정에서 단체장 협의체가 반대 입장을 표명한 사례가 있다.

국회 내에서도 입장이 엇갈린다. 지방의원 출신 국회의원들은 비교적 적극적인 지지 그룹을 형성하지만, 당 지도부에게 이 법안은 다른 국가적 현안에 비해 우선순위가 높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결국 법안의 운명은 행정안전위원회 소속 의원들의 의지와 정치적 판단에 상당 부분 달려있다.

균형잡힌 접근을 위하여

지방의회법 제정은 지방자치 발전 과정에서 진지하게 검토할 가치가 있는 과제다. 의회의 현재 역량에 대한 우려는 경청할 필요가 있지만, 동시에 제도적 여건이 역량 발전에 영향을 미친다는 점도 고려해야 한다. 권한과 책임은 함께 주어질 때 의미가 있으며, 실질적인 권한을 부여하고 그 사용 결과를 엄정하게 평가하는 것이 성숙한 민주주의의 방식이다.

국회에서는 이 법안에 대한 충분하고 심도있는 논의가 이루어지길 기대한다. 찬반 양측의 논거를 균형있게 검토하고, 단계적 시행이나 보완 장치 마련 등 현실적인 대안도 함께 모색할 필요가 있다.

지방의회는 법 제정 요구와 함께 윤리 기준 강화, 투명성 제고, 전문성 향상을 통해 스스로 신뢰를 높여나가야 한다. 권한 확대만을 주장하기보다, 현재 주어진 권한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고 있는지를 먼저 시민들에게 보여주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시민과 언론도 제도적 맥락을 이해하며 균형잡힌 시각으로 이 논의에 참여할 필요가 있다. 일부 의원의 문제를 전체 의회의 문제로 일반화하거나, 반대로 구조적 문제를 간과하는 것 모두 바람직하지 않다. 지방의회가 처한 제도적 제약을 인식하면서도, 의회의 책임있는 역할 수행을 요구하는 성숙한 감시가 필요하다.

지방자치의 완성은 중앙정부가 권한을 이양하는 것만으로 달성되지 않는다. 지역 내에서도 집행기관과 의회, 주민이 건강한 견제와 균형의 관계를 형성할 때 비로소 실현된다. 지방의회법 제정 논의는 이러한 지역 민주주의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는 과정이 되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