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삶]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 산업 육성의 최적지 평택, 지금이 적기다

2025-10-23     최원용

대한민국 경제를 이끄는 심장은 단연 반도체 산업이다. 수출의 절대 효자품목으로 국가 경제를 떠받치고 있지만,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과 달리 그 내부 구조는 여전히 불안하다. 반도체 완제품의 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지만, 소재·부품·장비 산업은 여전히 취약해 ‘앞에서 남고 뒤에서 밑지는 산업 구조’가 이어지고 있다.

필자가 반도체 산업에 깊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2007~2008년 경기도 평택개발지원단장으로 근무하며 고덕국제신도시 개발계획에 참여하고, 삼성전자 평택캠퍼스 유치 실무를 맡으면서부터다. 당시 수도권의 공장 신·증설이 제한된 상황에서 대기업 공장을 평택에 유치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웠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추진한 것이 바로 ‘주한미군기지 이전에 따른 평택시 등의 지원에 관한 특별법(평택지원특별법)’의 제·개정이었다. 이 법을 통해 삼성전자가 평택에 반도체 공장을 세울 수 있는 법적 기반을 마련할 수 있었고, 이후 수많은 협의를 거쳐 현재의 서정천 아래 부지에 공장건설을 확정했다. 당시 고덕국제신도시에 삼성반도체 공장을 유치한 것은 고향 평택의 발전을 넘어 대한민국 경제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이었다.

현재 삼성전자 평택캠퍼스는 총 120만 평의 규모로 P1부터 P6까지 6개 공장을 순차적으로 조성 중이며, P4까지 완성된 상태이며 올해 말에 중단됐던 P5 사업이 재개될 전망이다. 반도체 산업은 평택 경제의 핵심 동력이다. 평택시 재정은 물론 시민들의 생활경제까지 반도체 경기의 영향을 받는다. 반도체 호황에는 지역경제가 활기를 띠지만, 불황기에는 소비와 고용이 동시에 위축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지난 20여 년간 괄목할 성장을 이뤘다. 글로벌 시장점유율 13.2%(2023년 기준, OMDIA)로 미국에 이어 세계 2위를 유지하고 있으며, 메모리 반도체 분야는 2002년 이후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2023년 반도체 수출액은 986억 달러로 단일 품목 수출 비중 15.6%를 차지하며 11년 연속 1위를 기록했다. 반도체 설비투자 규모는 51.8조 원으로 국내 제조업 전체 설비투자의 43%를 차지한다.

그러나 이러한 성과의 이면에는 구조적 약점이 존재한다. 한국 반도체 산업은 메모리 중심의 편중 구조 속에서 시스템 반도체 설계 분야가 취약하며, 소재·부품·장비에 대한 해외 의존도가 여전히 높다. 현대경제연구원의 분석에 따르면 2021년 기준 반도체 전체 수출은 1천295억 달러, 수입은 616억 달러로 흑자를 기록했지만, 반도체 장비와 소재 부문에서는 각각 172억 달러, 19억 달러의 적자를 냈다. 이로 인해 반도체 수출이익의 상당 부분이 소재·부품·장비 수입으로 해외로 유출되고 있는 셈이다.

2019년 일본의 수출규제 사태는 이러한 구조적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냈다. 일본은 기초과학과 소재산업에 집중 투자한 반면, 한국은 완제품 생산과 공정 효율화에 치중하며 기초기술을 등한시했다. 그 결과 핵심 소재 공급이 막히자 반도체 산업 전체가 흔들리는 위기를 맞았다. 이 경험은 반도체 산업의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해 소재·부품·장비 산업의 자립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보여준 사건이었다.

이제는 산업의 체질을 바꿔야 한다. 경기도는 반도체 관련 소재·부품·장비 기업이 밀집한 지역이다. 원익IPS, SK실트론, ASML, Tokyo Electron 등 주요 기업들이 평택·화성·용인 일대에 포진해 있다. 이들 기업은 삼성전자 평택캠퍼스와 SK하이닉스 등 대기업과 긴밀히 연결돼 있다. 따라서 평택은 반도체 기초산업 육성의 최적지이며, ‘소재·부품·장비 산업 생태계’의 거점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첫째, 중앙정부·경기도·평택시가 산·학·연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기초과학 연구에 장기적 관점으로 투자해야 한다. 둘째, 중소기업이 저비용으로 대기업 수준의 장비를 활용할 수 있는 공용 테스트베드를 조성해야 한다. 셋째, 대·중소기업 간 공동개발 및 특허공유 시스템을 만들고, 국산 소재를 우선 구매할 수 있도록 인센티브를 부여해야 한다. 넷째, 반도체 전문인력 양성체계를 구축해 연구결과가 현장으로 이어지고, 산업현장의 수요에 즉시 대응할 수 있는 인력을 길러야 한다.

반도체는 이제 단순한 산업이 아니라 국가안보의 문제다. 기술 패권 경쟁이 치열해질수록 반도체 공급망을 확보한 나라가 미래 경제의 주도권을 쥔다. 한국 반도체 산업이 진정한 기술 자립과 지속 가능한 경쟁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지금이 체질 개선의 마지막 기회다. 정부의 과감한 투자와 기업·학계의 긴밀한 협력이 함께할 때, 평택을 중심으로 한 ‘대한민국 반도체 기초산업 생태계’는 새로운 도약의 길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