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승표의 세상만사] 애경사도 상도(常道)가 있다

2025-10-26     홍승표

“그간 잘 보내셨는지요? 느닷없이 소식을 받아 놀라셨죠? 옛 인연이 생각납니다. 다른 게 아니라 제 큰 아이가 어느덧 장가를 가게 되어 알려드립니다.”

한동안 전혀 연락이 없던 사람이 문자메시지를 보내왔지요. 메시지엔 ‘마음 전하는 곳’이라는 문구와 함께 은행 이름과 계좌번호가 적혀 있었습니다. 10년도 훨씬 전에 어느 시청에서 일하던 시절, 알게 된 사람이었지요. 일한 기간이 1년으로 짧았고, 그 후로 서로 연락이 끊어졌었는데 전혀 소식이 없던 사람이 어찌 전화번호를 알았는지 뜬금없이 아들의 결혼 소식을 알려온 것입니다. 초대 메시지를 받았으니 축의금을 송금했지만, 그리 유쾌하진 않았지요. 몰랐다가 나중에 알고 섭섭하다며 부조금을 전하는 것과는 다른 겁니다. 진심으로 축하하는 마음이 우러나온 게 아니었다는 말이지요.

함께 일했던 공직선배가 퇴직을 앞두고 봄, 가을에 아들, 딸을 결혼시켰습니다. 현직에 있을 때 자식 혼사를 매듭지어야겠다고 생각했겠지요. 그런데 퇴직 후 소식이 끊어지고 애경사에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공직자들이 모이면 그의 얄팍한 처신이 입에 오르내렸지요. 고향에서 매년 열리는 초, 중학교 동창회에는 참석자가 거의 일정합니다. 어느 해, 오랫동안 안보이던 동창이 나타나 반가웠지요. 그런데 얼마 뒤, 그 동창으로부터 청첩장이 날아왔습니다. 동창회에 나타나지도 않았고 경조사에는 나 몰라라 했던 그가 느닷없이 동창회에 나타난 목적이 거기에 있었던 게 아닌가싶어 씁쓸했지요.

경기도청 정기인사를 앞두고 아들이 결혼을 했습니다. 파주시에서 일하다 도청국장으로 내정통보를 받았을 때지요. 6개월 전, 양가가족이 상견례를 하면서 날을 정한 건데 시기가 묘했습니다. 자칫 축의금 챙기고 떠난 ‘먹튀(먹고 튄 사람)’가 될 판이라 시장과 몇몇 간부에게만 알렸지요. 결혼식을 마친 후에 알려주지 않아 섭섭하다는 사람도 있기는 했으나 잘한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5년 전에는 장모님이 뇌출혈로 쓰러져 돌아가셨는데 코로나 19가 창궐하던 때라 가족들만 장례를 치렀지요. 부음(訃音)을 알리지 않아 썰렁했지만, 애틋한 마음으로 정성을 다해 모셨던 터라 마음은 편했습니다.

며칠 전, 부음을 접했는데 다른 부음과는 달랐지요. 조화와 조의금은 사양한다고 명시한 것입니다. 조문을 갔는데 조화는 없고 리본만 걸려 있었지요. 꽃은 돌려보낸 것입니다. 방명록에 이름을 적고 조의금을 냈더니 결단코 받지 않았지요. 살짝 당황했습니다. 조문을 하는데 영정을 모신 곳에 2개의 조화만 있더군요. 결코 돌려보낼 수 없는 조화였습니다. 오랜 세월 남다른 기부와 봉사로 국민훈장 동백장을 수상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새삼 노블리스 오블리제(Noblesse oblige)를 실천하는 격이 다르고 존경스럽다는 생각을 했지요. 언론사 사장이니 조문객 중에는 내로라하는 정, 관계 인물도 많았습니다. 조의금을 받지 않으니 놀랍다는 사람이 많았지요.

어느 나라든 혼사는 경사입니다. 우리나라도 축하하는 미풍양속이 여전하지요. 장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직계가족이 사망하면 빈소를 찾아 조문하는 것이 관례이고 전통미덕이지요. 그런데 때로는 애경사 소식이 날아들면 기분이 썩 개운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평소 전혀 교류가 없던 사람이 보낸 청첩이나 부음일 때가 그러하지요. 대행업체에 일을 맡기면 결례를 초래하기도 합니다. 전화기에 입력된 사람들 모두에게 일괄 통보되기 때문이지요. 애경사에도 상도(常道)가 있습니다. 상대방이 부담을 느끼면 본래의 의미가 퇴색되니 신중하고 품격 있게 치르는 게 좋지요. 그게 마음 편하고, 상대방에게도 부담을 주지 않고 애경사를 치루는 상도입니다.

홍승표 전 경기관광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