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용수칼럼] 미래 세대의 직업 세계

2025-11-02     주용수

미래 세대의 직업 선호도와 사회적 비전에 변화가 뚜렷하다. 2024년 한국복지패널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응답자의 43.22%가 장래 희망 직업으로 문화·예술·스포츠 전문가를 선택했다. 이는 전통적 권위의 직업보다 높은 비율이다. 이 변화는 직업군의 이동을 넘어, 사회가 삶의 질과 가치를 우선시하는 방향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한국 문화 콘텐츠 산업의 급성장은 이러한 변화를 뒷받침한다. K-팝, K-컬처, 스포츠 스타들의 세계적 성공은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본보기를 제시했다. 예술과 스포츠는 사회적 영향력과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는 핵심 산업으로 부상했다. 만화, 지식정보, 출판, 음악 분야에서 두드러진 성장세를 보이며, 2024년 한국 콘텐츠 수출액이 136억 달러를 넘어섰다. 제4차 산업혁명의 AI, 빅데이터, VR/AR 기술이 창작 방식과 소통 구조를 변화시키며, 창의성과 기술이 융합된 새로운 직업 영역을 열고 있다.

그러나, 한국 사회는 잔혹한 이면도 가지고 있다. 개발·발전의 이름으로 속도와 이윤, 효율을 앞세운 구조는 인간의 존엄을 무너뜨렸다. 제주항공 폭발 사고, 선박 사용 연한을 연장한 세월호의 참사, 부실 공사를 묵인한 광주 건물 붕괴, SPC 빵 공장 노동자 사망사건 등은 안전보다 돈을 앞세웠을 때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를 증명했다.

결론은 늘 ‘돈’으로 귀결한다. 비용 절감, 이윤 극대화, 단기 성과의 집착이 사람의 생명을 지웠다. 돈과 속도, 효율의 논리로는 나은 미래를 설계할 수 없다. 단기 성과를 앞세운 사회는 스스로 붕괴한다. 우리 사회는 ‘속도’를 선택했고, 그 대가가 비극적 참사로 돌아왔다.

미래 직업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의 변화를 요구한다. 인공지능 기술의 발전은 산업 구조와 세대별 역할 분담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MZ세대가 유리하리라는 예상과 달리, AI의 활용 성과는 젊은 세대의 전유물이 아닐 수도 있다. 삶의 깊은 통찰, 분야별 숙련된 경험, 맥락을 이해하는 기성세대의 지혜가 AI라는 도구와 결합할 때, 오히려 기대하지 않았던 폭발적인 시너지를 낼 수도 있다. 세대 차이가 무색한 여러 변수가 불확실하게 상존한다.

AI가 기술적 작업을 수행한다면, ‘무엇을 창조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통찰력이 중요해진다. 축적된 경험적 지식은, AI에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결과를 인간적 가치와 사회적 비전에 따라 해석하여 결과물을 도출하는 데 결정적이다. 이에 따라 경험이 풍부한 기성세대가 AI를 활용한 새로운 주역으로 부상하는 역전 현상이 나타날 가능성도 있다. 아무튼, 시대는 따라잡지 못할 만큼 빠르게 진화하는 중이다.

본 조사에서, 53.22%의 응답자가, 자신이 장래 희망을 ‘이룰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명했다. 스타들의 성공과 최근 ‘케데헌’ 등의 흥행은, 미래 세대들에게 희망과 실현 가능성의 기대치를 높여 주었다. 미래 세대가 필요로 하는 것은 창의성과 자율성이다.

예술과 스포츠는 자기표현과 혁신적 사고가 핵심이다. 단순한 스펙 경쟁이 아니라, 삶을 깊이 탐구하는 교육 시스템이 그래서 필요하다. 모든 직종에서, 몰두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젊은 인재들이 특정 학문 분야에만 지나치게 쏠리는 현상을, 노동 구조 개혁을 통해 더 본질적으로 개선해야 한다. 이는 심한 소득 격차와 노동 가치의 왜곡에서 비롯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이 격변의 시대에 미래 세대가 놓치지 말아야 할 중요한 가치는, ‘인간 본연의 능력’과 ‘진정성’이다. AI가 모방할 수 없는 철학적 사유, 문학적 상상력,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는 윤리적 감수성이야말로 창의적 결과물의 깊이를 결정한다. 기술은 도구일 뿐, 그것을 통해 무엇을 이룰 것인가는 인간의 내적 성찰과 예술적 통찰에 달려 있다. 미래 세대가, 돈에 붙들린 진로 결정보다, 원하는 삶의 의미를 찾도록 사회적 상황을 만들어 줘야 한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는 개발도상국 시절 사고의 관성에서 이탈하지 못한 면이 있다.

안전을 비용으로 환산하지 않고, 인간의 존엄을 숫자로 치환하지 않으며, 삶의 질을 이윤보다 앞세우는 사회가 되어야 한다. 산업 재해 현장에서, “다시는 이런 비극이 없어야 한다”라고 말하는 상투적 수사를 더는 듣고 싶지 않다. 사회규범과 문화 예술이 질적으로 선진화되어야 한다. 소모적이고 자극적인 요소보다, 고민과 성장의 깊이가 K-문화의 영속성을 좌우할 것이다. 미래 세대 직업 선호의 다양성에서, 그래도 다시 희망을 본다. 속도를 늦추고, 의미를 새기며, 생명의 존엄을 중심에 두는 사회만이 미래의 주역이 될 수 있다.

주용수 한경국립대학교 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