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철환칼럼] 현수막 철거행위는 어떠한 처벌을 받을까?
“현수막을 임의로 철거한 재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을 처벌해 주세요”
민원인은 재개발에 반대하는 지주협의회 회장으로서 2019년 9월 5일 새벽 재개발추진위원회가 주최한 주민총회가 열린 회의장 인근에 “총회에 동참하지 말라”는 취지의 현수막 3개를 설치했다. 그러자 이를 발견한 재개발추진위원회 위원장인 A 씨는 과도를 이용하여 현수막의 끈을 잘라내어 떼어 냈다. 이에 민원인은 A 씨를 상대로 형사 고소하기에 이르렀고 수사 결과 A 씨는 업무방해죄 및 재물손괴죄로 기소되었다.
법원의 재판절차를 거친 결과 A 씨에 대한 판결은 심급에 따라 견해를 달리하였다. 제1심은 A 씨의 행위에 대하여 모두 무죄를 선고하였는데, 그 이유는 민원인의 지주협의회 활동은 법이 금지하는 임의 단체의 활동으로서 보호 가치가 없는 것이며, A 씨의 행위는 부당한 침해에 맞선 정당방위 또는 정당행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그러자 검찰이 제1심 판결에 대하여 항소하였고, 항소심 법원은 현수막 게시행위는 표현의 자유 영역에 해당되어 보호받아야 할 것이므로 그 현수막을 임의로 철거하는 행위는 정당행위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한 후 제1심의 무죄판결을 뒤집고 A 씨에게 벌금 200만 원을 선고했다.
급기야 위 사건은 제3심인 대법원까지 가게 되었다. 대법원은 2025년 9월 11일 2선고한 2022도1665 판결에서 원심을 파기하고 사건을 원심법원으로 돌려보냈다. 다만 재물손괴죄 부분에 대하여는 원심의 유죄 판단을 유지하였고 업무방해죄 부분에 관하여 무죄 취지로 파기하였으나 원심은 이 부분이 재물손괴죄 부분과 형법 제37조 전단의 경합관계에 있다고 보고 하나의 형을 선고하였으므로 원심판결을 전부 파기하였다.
대법원은 형법상 업무방해죄의 ‘업무’란 직업 또는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하여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나 사업을 말하는데, 이 사건의 피해자인 민원인이 현수막을 설치하는 시기, 경위와 목적, 이 사건 현수막의 구체적 내용, 지주협의회를 대표하고 그 사무를 총괄하는 회장이 수행하는 본래의 업무의 성격과 내용 등을 감안할 때, 피해자가 이 사건 추진위원회 측이 추진하는 주민총회의 원활한 개최, 진행을 저지하거나 방해하려는 의도로 일회적으로 이 사건 현수막을 통해 지주들에게 주민총회에 불참할 것을 권유하는 입장을 알리는 것을 두고 피해자의 직업 또는 사회생활상의 지위에 기하여 계속적으로 종사하는 사무에 해당한다거나 지주협의회회장으로서의 본래의 업무수행과 밀접불가분의 관계에서 이루어진 사무라고 평가할 수 없다고 판시했다.
이에 따라 민원인이 내건 현수막을 A 씨가 임의로 철거했다고 하더라도 A 씨에게는 업무방해죄로 처벌할 수 없고, 다만 현수막 끈을 자른 행위 자체는 재물손괴죄에 해당한다고 보아 처벌할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살피건대, 현수막이 불법으로 게시된 경우라고 해도 타인의 소유물을 임의로 훼손하거나 철거하는 행위는 형법상 재물손괴죄에 해당할 수 있고, 재물손괴죄가 인정될 경우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7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으므로, 개인이 직접 현수막을 철거하기보다는 관할지방자치단체에 신고하여 행정기관이 조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한 방법이라고 할 수 있다. 이와 관련하여 선거 기간 중에 현수막을 훼손하는 행위는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가중처벌된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옥외광고물법은 현수막의 표시, 기간, 장소, 규격, 내용 등에 관한 허가 및 신고 기준을 정하고 있으며, 이 기준을 위반하여 설치된 현수막은 불법 광고물이 된다. 옥외광고물법은 원칙적으로 불법 광고물의 제거나 그밖에 필요한 조치를 명령하거나 실행할 수 있는 권한을 지방자치단체의 장에게 부여하고 있으므로 일반 시민이 임의로 철거하는 것은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기서 주목되는 것은 최근 개정된 옥외광고물법에 따라 정당의 정책이나 정치적 현안에 대한 현수막은 일정부분 신고없이 설치가 가능하도록 규정이 완화되면서 ‘현수막 공해’ 논란이 일어나고 있다. 특히 정당 현수막은 옥외광고물법 외에도 정당법이 보장하는 통상적인 정당 활동의 자유와도 충돌하여, 불법 여부와 철거 권한에 대한 해석에 있어서 어려운 경우가 발생하곤 하므로 이에 대한 새로운 대책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할 것이다.
전 대한변호사협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