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발언대] 윤재실 인천 동구의원 “유령도로 방치, 행정의 무책임 더이상 안돼”
지도에는 도로로 선명히 표시돼 있지만, 행정의 관심에선 지워진 길들이 있다. 주민들은 매일 이 길을 밟고 다니지만 법적으로는 사유지여서 행정이 손을 쓸 수 없는 이른바 ‘유령 도로’다.
인천 동구 만석동 보세로 인근을 비롯해 금곡동·송림동 곳곳에도 이런 도로가 상처처럼 남아 있다.
금곡동 6-○○, 만석동 2-○○○, 송림동 11-○○○ 등은 개인 소유이면서도 주민 통행로로 사용되는 대표적인 사유지 도로다. 그러나 관리 주체가 민간으로 돼 있어 포장, 배수, 조명 설치 등 기본적인 정비조차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다.
얼마 전 한 어르신은 낡은 유모차를 끌고 제 손을 꼭 잡으며 물으셨다. “의원님, 저 길은 누구 땅입니까? 비만 오면 물이 고여 신발이 다 젖고, 밤에는 가로등도 없어 무섭습니다. 우리 주민이 매일 다니는데 왜 아무도 고쳐주지 않나요?”
이 말에는 단순한 불만이 아니라 행정으로부터 소외당하고 있다는 깊은 절망감이 담겨 있었다.
그러나 행정의 답변은 “사유지라서 안 된다”로 늘 같다. ‘사유지’ 이 세 글자는 책임 회피의 방패가 되고, 주민의 불편과 안전은 외면당한다. 이는 곧 “당신들의 안전에 책임지지 않겠다”는 냉정한 선언이나 다름없다. 문제는 이 상황이 결코 예외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동구청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동구 전역에는 이런 사유지 도로가 무려 86곳이나 있다. 이 가운데 77%인 66곳은 사실상 방치 상태이며, 송림동(48곳)과 만석동(14곳)에 집중돼 있다.
이 문제의 뿌리는 오래됐다. 산업화와 도시 팽창 과정에서 도로로 사용되는 토지를 제때 공공 자산으로 편입하지 못한 결과가 오늘의 민원으로 되돌아온 것이다. 과거의 행정적 무관심이 지금 주민의 안전을 위협하는 부메랑이 돼 돌아온 셈이다.
다른 지자체는 이미 해법을 찾고 있다. 경기 양평군은 사유지를 적극 매입해 공공도로로 편입했다. 부천시는 ‘공공이용도로 지원에 관한 조례’를 제정해 제도적 틀을 마련했다. 부산 연제구는 법제처에 질의했고, 법제처는 “토지 소유자의 동의를 전제로 조례를 제정해 지자체가 비법정도로를 관리할 수 있다”는 명확한 답변을 내놓았다. 법적 근거도, 선례도 이미 충분하다.
따라서 지금 필요한 것은 ‘검토’가 아니라 ‘실행’이다. 주민 불편이 극심한 지역부터 우선순위를 정해 매입하거나 보상해 법정도로로 편입하고, 부천시처럼 동구의 실정에 맞는 조례를 제정해 반복되는 민원을 사전에 차단해야 한다.
동구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국 곳곳에서 비슷한 민원이 쌓이고 있으며, 국회에서도 제도 개선 논의가 시작됐다.
천준호(더불어민주당·서울 강북구갑) 국회의원이 발의한 ‘사유지도로의 관리 및 정비에 관한 특별법안’은 사실상 공공도로 기능을 하는 사유지를 지자체가 매입·정비할 수 있도록 법적 근거를 마련하려는 것이다. 지방정부가 먼저 실행하고, 중앙정부가 제도와 재정으로 뒷받침한다면 해결의 길은 충분히 열려 있다.
곧 열릴 동구의회 정례회에서 ‘동구 공공이용도로 지원 조례’ 제정을 추진 중에 있다. 행정이 미루던 문제를 제도와 책임으로 풀어내는 첫걸음이 될 것이다.
우리 의회가 주민의 안전과 권리를 지키는 버팀목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
윤재실 인천 동구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