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기석칼럼] 보수 재건이냐 현상 유지, 기로에 선 국민의힘

2025-11-06     문기석

심심하면 자신이 몸담았던 국민의힘에 한 마디씩 거드는 홍준표 전 대구시장이 한번 더 걷어찼다. 이름하여 ‘국민의힘 자발적 해산’론이다. 이전의 그의 주장과 별반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지금의 그 밥에 그 나물타령만 되풀이 하고 있는 국민의힘 동력으로 봐서는 결단의 시간만이 남았다는 의견도 만만치 않다. 보수 진영 내부에 늘 적지 않은 파장을 일으키는 말들이 하도 많아 이 정도로는 성도 차지 않지만 민주당에 강제 해산당할 바엔 차라리 스스로 해산하고 새로 시작하는 것이 낫다는 홍 전 시장의 말은 곱씹어 볼 만하다. 단순한 자극적 언급이 아니라 현 여권의 위기 인식이 얼마나 깊어졌는지를 보여주는 신호탄일 수 있어서다. 실제로 국민의힘은 윤석열 정권 이후 당의 정체성과 리더십, 그리고 보수의 방향성 전반에서 심각한 수렁에 빠져 있다. 그래서 내년 지방선거를 앞둔 지금 ‘보수 재건’이라는 숙제가 더는 미룰 수 없는 시급한 과제가 되고 있다.

홍 전 시장의 주장은 극단적이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냉정한 현실 진단이 깔려 있다. 윤석열 전 대통령과 그 주변 세력의 정치적 부담은 여전히 여당의 발목을 잡고 있다. 가방문제로 몇 번의 거짓말이 드러난 김건희 여사 관련 의혹에 이제 국민들은 피로감만 남아있다. 더구나 잊을 만 하면 법정에 나오는 윤 전 대통령의 모습은 보수 지지층조차 등을 돌리게 만들고 있다. 여기에 추경호. 권성동 의원 등 핵심 인사들이 각종 사건에 연루되면서 그 존엄해 보였던 보수의 도덕성은 이미 한계점에 다다랐다. 이런 상황에서 홍 전 시장이 “암 덩어리를 안고 갈 수는 없다”고 한 말은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부패와 오만, 폐쇄적 정치문화로 인한 조직의 자가붕괴를 예고한 경고로 들릴 정도다. 문제는 국민의힘이 여전히 변화의 실마리를 찾지 못하고 있다는 점이다.

얼마 전 윤 전 대통령을 잠깐이나마 면회를 갔던 장동혁 대표는 윤석열 그림자를 걷어내기는커녕 미련이란 두 단어에 갇혀 있다. 방어적 리더십에 머물러 있다는 평가가 무색한 지경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호남 진심이나 통합 메시지를 내놓고 있지만 국민의 체감은 미약하고 너무 스트레오타입이란 자조적 평가마저 듣고 있다. 당연하게도 이제는 윤 전 대통령과의 관계 정리가 늦어질수록 개혁 이미지와 거리두기 전략은 설득력을 잃는다. 당의 존재 이유가 윤석열 정권의 후견 세력으로 비춰지는 순간 국민의힘은 다시 2022년 이전의 패배 궤도로 돌아갈 가능성마저 높기 때문이다.

어제까지의 이준석 개혁신당 대표의 행보도 이런 국민의힘 상황을 더욱 뚜렷하게 대비시키고 있다. 그는 “연대는 고려하지 않는다”며 국민의힘과의 선 긋기에 나섰다. 이 대표 역시 강조하는 것은 단순한 세대교체가 아니라 ‘보수 정치의 방식’ 자체를 바꾸자는 것이다. 그는 “보수 진영의 패배 원인은 변화 거부와 정치공학적 뭉치기”라고 지적하며 ‘작은 세력이라도 원칙으로 승부하겠다’는 노선을 내세운다. 국민의힘이 권력 중심의 정당이라면 개혁신당은 시민 중심의 정당을 자처하면서다. 두 보수 정당의 이념적 거리보다 더 큰 것은 어쩌면 ‘정치문화의 세대 차이’로 볼 수 있다. 이렇듯 보수의 위기는 인물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의 문제라는데 차이점이 많다. 국민의힘은 이미 ‘반이재명’ 연대 이상의 정체성을 잃은 지 오래다. 윤석열 정부의 몰락 이후에도 대안적 비전이나 사회개혁 의제를 제시하지 못한 것을 기억한다. 경제는 표류하고, 민생은 뒷전인데 국민의힘은 여전히 내부 권력 다툼에 매달리고 있다.

분명한 것은 이런 구도에서 지방선거는 단순한 지역 권력 경쟁이 아니라 ‘보수 정치의 생존 시험대’가 된다는 점이다. 서울·부산·대구 같은 보수 기반 지역에서도 중도층 이탈이 심화되고 청년층은 이미 등을 돌린 지 오래다. 그래서 홍준표 전 시장의 ‘자발적 해산론’은 단순한 극단이 아니라 ‘보수 재건의 출발점’을 상징하는지 모른다. 그의 말이 실없고 건들건들해 보여도 이론은 반듯한 탓도 크다. 물론 해산이 실제로 이뤄질 가능성은 낮다. 기존 체제의 완전한 청산 없이는 새 출발이 불가능하다는 자성의 목소리도 들린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세력과의 관계를 정리하고, 기득권과 결별하지 않는다면 당명만 남은 껍데기 정당으로 전락할 공산이 커서다. 반대로 진정 홍 전 시장이 말한 “새롭게 다시 시작하는” 용기를 낸다면, 한국 보수는 다시 설 수 있다.

내년 지방선거는 단순한 권력 재편의 무대가 아니다. 그것은 보수가 무엇을 지킬 것인가에 대한 존재적 질문의 장이다. 공정과 정의를 내세우던 보수는 지금 자신이 만든 불공정의 틀 안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국민의힘이 윤석열 시대의 잔재를 청산하지 못한 채 지방선거에 나선다면 패배는 불 보듯 뻔하다. 보수 재건의 첫 걸음은 외형이 아니라 내면의 혁신이다. 국민의 신뢰를 되찾기 위해선 윤 전 대통령 세력의 그림자를 지워야 한다. 그 길만이 정당 해산이 아니라 정당 재생으로 가는 유일한 길이다. 정치는 끊임없이 새로워져야 한다. 지금의 국민의힘은 과거의 승리에 매달리며 변화를 두려워하고 있다. 그러나 국민은 더 이상 보수라는 이름만으로 표를 주지 않는다. 이준석 대표가 말했듯 “익숙한 방식으로 또 가서 또 지는 것은 진짜 멍청한 일”이다.

보수의 재건은 새로운 깃발에서 시작되어야 한다. 그것은 권력의 연장이 아닌 국민과의 약속의 회복이다. 윤석열의 시대가 저물고 이준석의 도전이 시작된 지금 국민의힘이 선택해야 할 것은 단 하나다. 과거의 틀을 지킬 것인가 아니면 미래의 보수를 다시 세울 것인가. 그 갈림길에서 국민의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문기석 주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