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로 떠나는 성지순례] 보물 가득한 절에 오르니 '탄성이 절로'
⑯성남 약사사와 대광사
◇불교 여래종의 첫 사찰, 성남 약사사
불교에 있어 최고의 보물은 무엇일까? 정신적인 수양을 강조하는 불교인데 보물이라니 다소 속물스럽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보물이 꼭 금이나 다이아몬드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다. 불자가 되기 위한 기본부터가 우선 삼보, 즉 세 가지 보물에 귀의하는 것인데, 삼보란 불·법·승의 세 가지로, 여기서 불은 부처님, 법은 부처님이 하신 말씀, 그리고 승이란 그 말씀을 온전히 수행하면서 보존해 사람들에게 널리 알리는 승단을 뜻한다.
나아가 이렇게 중요한 세 가지 보물을 각각 상징하는 사찰도 있다. ‘불’을 상징하는 불보사찰은 석가모니의 진신사리를 모신 양산 통도사이며, ‘법’을 상징하는 법보사찰은 그 유명한 팔만대장경판을 소장하고 있는 합천 해인사다. 그리고 ‘승’은 고려시대에 수많은 왕사와 국사를 역임한 걸출한 고승을 많이 배출한 순천 송광사로 상징된다. 이들 삼보사찰은 모두 경기도가 아닌 다른 지역에 있다.
하지만 통도사와는 또다른 의미에서 정말 중요한 불보사찰이 경기도에 전하고 있으니 바로 성남 약사사다. 이곳에는 버마에서 모셔온 석가모니의 진신사리가 봉안돼 있어 의미가 클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부처님의 10대 제자의 사리까지 봉안하고 있는 사찰은 전국에 약사사가 유일하다.
약사사는 남한산성의 서쪽에 자리잡은 사찰이며, 한국불교여래종에 속한다. 여래종은 고려시대의 고승인 대각국사 의천을 종조로 1965년에 인왕스님이 만드신 종파인데, 이 성남의 약사사는 여래종의 첫 번째 사찰이었다. 지금의 여래종 본산은 옥천의 대약사사이지만, 성남 약사사는 대약사사가 세워지기 전까지 본산의 역할을 해왔고, 또 여래종의 첫 번째 사찰이라는 점에서 그 역사적 가치가 큰 절이라 하겠다.
찾아가기 전 사진으로 본 약사사는 꽤 큰 절이었는데, 막상 운전해서 가다보니 등산로를 따라 산 속으로 한참 들어간다. 처음에는 길을 잘 못 찾아온 것인가 했는데 막상 도착하고 보니 깊은 골짜기에 갑자기 웅장한 절이 모습을 드러낸다. 아무래도 경사가 있을 수 밖에 없는 공간이지만, 적절한 배치로 여러 전각들이 즐비하게 이어지며 별천지를 이루고 있다.
우선 절 아래 차를 세우고 들어서니 오래된 석탑이 세워져 있는데, 아쉽게도 허물어진 탑을 다시 세워 놓은 것이라 완전히 갖추고 있는 것은 아니다. 아마도 고려시대에 세워진 삼층석탑 정도 규모의 탑인 것 같았다. 온전치 않지만 이 탑이 중요한 이유는 약사사가 1960년대에 세워지긴 했지만, 이곳이 오래전부터 절터였음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팻말을 보니 이 주변에서는 오래된 기왓장도 발견됐다고 한다. 지금도 아무 곳에나 절을 세우는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특히나 좋은 터를 엄선해 절을 세웠기 때문에, 오래 전부터 절이었다는 것은 그만큼 좋은 터로 인정을 받아왔다는 뜻이기도 하다.
탑이 세워진 곳에서 다시 우뚝 솟은 범종각 아래로 난 계단을 올라 절 안으로 들어선다. 마치 극락세계에 온 것처럼 많은 불상과 보살상들이 방문자를 반기고 있다. 극락세계는 아미타부처님이 서방세계에 세운 정토인데, 이곳은 약사부처님의 이름을 달고 있는 절이므로 극락세계보다 동방세계의 유리광정토라고 보는 것이 더 맞겠다. 하긴 성남시의 동쪽 남한산성 기슭에서 성남을 내려다보는 위치에 있으니 위치상 동방유리광세계가 딱 맞아떨어지는 셈이다.
범종각을 지나 계단을 다 오른 다음, 뒤를 돌아보니 성남 시내가 멀리 내려다 보인다. 어느 산이든 오르고 나면 우리가 아등바등 살던 세계가 한없이 작아 보인다. 그래서 저 작은 세계 안에서 좋으면 얼마나 좋고, 나쁘면 또 얼마나 나쁘다고 그렇게 걱정하고 욕심부리며 살았나 반성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그래서 그렇게 산을 찾는가 보다.
하지만 그래도 필자는 일단 보물을 찾으러 온 것이니 발길을 재촉한다. 보물은 어디에? 절의 안내문을 보니 목탑에 모셨다고 한다. 그래서 법주사 팔상전 같은 목탑을 연상했는데, 언뜻 그런 목탑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약사사 중심 법당인 대웅보전에서 오른쪽으로 난 길 끝에 적멸보궁 현판이 보인다. 적멸보궁은 보통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신 전각을 말한다. 일단 저곳에 가면 부처님 진신사리를 친견할 수 있겠구나 싶어 걸음을 옮긴다.
그 공간은 말하자면 현대적인 공간이랄까, 새로운 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언뜻 보면 시스템 창호로 사방 벽을 두른 것이 마치 분위기 좋은 숲속 카페처럼 보인다. 그런데 낯선 건축이지만, 사실 전통건축이 한지를 바른 문으로 사방을 두르는 것이야말로 시스템창호의 원조격이다. 종이가 발달하지 않은 서양에서는 유리가 나오기 전까지 두꺼운 벽체만 사용했지만, 우리는 종이를 바른 문으로 사방을 둘러 은은한 빛이 실내를 비춰주는 방식을 오래전부터 사용해 왔던 것이다. 그러니 현대에 와서 한지 대신 유리를 사용한 것이 생소하지 않다. 더군다나 약사부처님이 머무시는 곳이 유리광세계이니 이렇게 유리로 둘러쌓인 전각은 너무도 자연스럽지 않은가!
여하간 그래도 목탑은 어디에 있다는 것일까 궁금해하면서 이 유리 법당 안을 들여다보니 그제야 알겠다. 목탑이 그 안에 있었던 것이다. 그 목탑은 ‘스투파’라는 인도의 탑 형태를 하고 있었다. 인도의 탑은 반구형의 둥근 형태를 하고 있는데, 이것을 나무로 재현했다. 그래서 목탑이라 부르고 있는 것이다. 불보사찰 통도사에서 진신사리를 모신 탑을 금강계단이라고 하는데, 이 역시 인도의 탑 형태를 따랐다. 부처님이 인도에서 태어나셨으므로, 진짜 부처님 사리는 인도의 예법에 따라 모셔드리고자 했던 신라인의 염원이었을까? 성남 약사사에서도 아마 그런 차원에서 인도의 스투파를 재현해 부처님을 모시고 싶으셨던 것 같다.
목탑 안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모시고, 그 주변으로 10대제자의 사리를 빙 둘러 모셨다. 마치 아직도 부처님 주변에 앉아 설법을 듣고 있는 것 같다. 원래 버마의 파라미(Parami, 즉 바라밀) 사원에 모셔져 있던 사리들의 일부가 말레이시아의 와키 사리 박물관(Waki Relic Museum)으로 옮겨졌는데, 이 와키 사리 박물관은 버마 및 그 외 전 세계에서 수집한 사리들을 전시하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버마는 인도 바로 옆에 있는 나라이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부처님의 진신사리를 인도에서 구해 자국의 파고다(탑)에 봉안했기 때문에 이처럼 진신사리를 모셨다고 하는 절이 꽤 많은 편이다.
마치 2천500년전 부처님의 설법하시는 모습을 뵌 것 같은 경건한 마음으로 목탑이 세워진 적멸보궁에서 나와 대웅보전을 둘러보고 앞 뜰로 내려오니 한 불자님이 그곳에 세워진 사리탑에 열심히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근래에 만들어진 사리탑이지만, 국보로 지정된 연곡사의 사리탑을 그대로 따라 정성스레 만든 탑이다. 이 사리탑이 어떤 분의 사리탑인지 여쭤보니 고(故) 숙현당 윤봉순 보살의 사리탑이라 한다.
약사사의 신도였던 이 보살님은 열심히 법화경을 읽고 수행해 절의 승속으로부터 존경을 한몸에 받는 분이었는데, 81세 되시던 해에는 보현보살을 친견하는 신비한 일도 있었다고 한다. 의상대사가 관음보살을 친견하고, 자장율사가 문수보살을 뵌 것 같은 기적이 현재도 일어나고 있다는 말에 감동이 몰려왔다. 특히 숙현당 보살이 2001년 입적하고 화장하자 수많은 사리가 나왔는데, 그 안에서 황금빛 사리가 나와 주변을 놀라게 했다. 기도하시던 보살님은 그 옆의 성모전 안에서 이 황금사리를 볼 수 있다 알려주신다.
성모전에는 여래종의 창종주인 인왕 큰스님의 사리와 함께 이 숙현당 보살님의 황금사리도 함께 전시돼 있었다. 이 사리탑과 사리에 기도하는 사람에게는 아직도 영험한 일이 일어난다고 하니 약사사 승속의 이 보살님에 대한 존경이 얼마나 컸던가 알 수 있다.
이러한 기적을 믿지 않는 분들도 많을 것이다. 그러나 기적은 바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안에 있다. 사실은 우리가 태어난 것도,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도, 우리의 인체가 신비롭게 작동하는 것도, 알고 보면 기적같은 일이다. 살아있다는 것 자체가 기적이다. 약사사에 전해지는 기적은 어쩌면 우리의 삶 순간순간이 사실은 기적이라는 것을 일깨워주는 하나의 방편인 것이다.
약사사의 성보전에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된 지장시왕도와 함께 사찰이 수집해 온 불교문화유산이 전시돼 있어 관심있는 분들은 종무소에 문의해보시길 권한다.
◇기적 염원 담아 미륵불 모신 대광사
필자가 직접 기적을 경험한 것은 아니지만, 간접적이나마 기적을 경험한 마음으로 이번에는 성남에 온 김에 대광사로 향했다. 대광사는 분당 서울대병원 바로 뒤편에 자리잡고 있다. 종종 이 병원에 왔으면서도 대광사의 존재는 모르고 있었다. 그런데 알고보니 서울대병원 뒷산 이름이 불곡산, 즉 부처님 계곡이란 뜻이었다. 그러니 절이 있는 것은 당연한 일.
도착해보니 유명 테마파크처럼 사람이 많다. 절에 오신 분도 있고, 절에서 운영하는 카페에 오신 분도 많은 것 같다.
대광사는 천태종에 속한 사찰인데, 2대 종정이신 대충 큰스님께서 1992년에 터를 잡고 짓기 시작한 절이라고 한다. 이후 주변 토지를 매입하고 준비과정을 거쳐 2001년에 본격적으로 지어지기 시작했는데, 특히 중심 법당인 미륵전은 그 안에 모실 거대한 청동불상을 조성하는데만 3년 6개월이 걸렸다. 불상이 거대하므로 일단 불상을 먼저 조성한 후에야 지금의 미륵전을 지을 수 있었다. 미륵전이 완공된 것이 2017년이었으니, 결국 17년의 시간이 걸린 셈이다. 보통은 이렇게 큰 불상을 조성하면 전각을 따로 세우지 않고 야외에 노출되도록 모신다. 그만큼 큰 전각을 짓기가 너무 어렵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대광사는 특이하게 높이 17m에 이르는 큰 불상을 거대한 미륵전을 지어 그 안에 모신 것이다. 미륵전은 김제 금산사 미륵전을 참고하여 세웠는데, 현존 최고의 목수인 신응수 대목장이 지었다. 이 시대의 미래유산으로 자리매김될 건축인 셈이다.
미륵전 안에 들어가보니 그러지 않아도 큰 불상이 거대한 법당 안에 모셔져 있으니 그 당당한 위용에 압도된다. 일반적으로는 이런 큰 불상은 약사불로 조성한 예가 많은데, 미륵불로는 현존 최대 규모라고 한다. 거대한 크기임에도 흐트러짐이 없는 미륵부처님의 자태에 더욱 큰 감동을 받는다.
이 대광사 부처님은 어떤 기적을 일으켰을까? 궁금해하실 수도 있다. 하지만, 미륵전 안에 들어와 보시면 알 수 있다. 중생들의 뜻을 하나하나 모아, 이렇게 거대한 법당과 무게 200톤에 이르는 청동불상을 조성한다는 것 자체가 시작하기 전에는 모두에게 그저 기적같은 일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원만히 이뤄져 그 기적이 눈앞에 펼쳐져 있다. 마침 당시 성남시장이 바로 지금의 대통령이신데, 그 기운으로 대한민국 전체에도 기적이 일어나길 기원해본다.
주수완 우석대학교 경영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