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돋보기] 학교폭력 심의, 성(性) 사안 전문화 절실하다
최근 학교폭력대책심의위원회(학폭위)의 역할과 기능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흔들리고 있습니다. 특히 가장 민감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성폭력 사안의 처리가 ‘피해자 보호’의 원칙을 지키지 못하고 구조적인 2차 피해를 낳는다는 비판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교육청에서 제출된 자료에 따르면, 학교 내 성폭력 사안처럼 고도의 전문성과 민감성이 요구되는 사안이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에 학폭위 시스템이 적절히 대응할 수 있는 심의 전문성을 확보하지 못하면서 심의 결정의 질적 하락을 초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결정의 공정성 및 법적 안정성에 대한 불신이 커져 심각한 불복 사태를 야기했습니다. 이는 학폭위가 피해자 보호라는 최소한의 책무를 다하지 못하면서 교육적 해결은 물론, 법적 안정성마저 확보하지 못하고 있다는 명확한 증거입니다.
결정의 불안정성보다 더 심각한 것은 사안 조사 과정에서 발생하는 피해 학생의 인권 침해입니다. 최근 토론회에서 공개된 피해 학생 부모의 증언은 현행 시스템의 성인지 감수성 부재를 여실히 보여줬습니다.
피해 여학생이 모르는 남성 조사관 앞에서 성적 피해를 입은 신체 부위를 설명해야 하는 고통을 겪고, 조사 과정의 녹취가 의무화되어 있지 않아 조사관의 부적절한 뉘앙스나 질문을 확인할 수 없었습니다. 심지어 한 학생은 조사를 무려 4번이나 반복하는 과정에서 트라우마가 악화되는 2차 피해를 겪었습니다. 이는 성폭력 사건의 특수성을 전혀 고려하지 않은, 행정 편의적인 조사 시스템이 낳은 참사입니다.
학교폭력 사안은 추후 형사 문제로 이어질 수 있으며,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 등은 수사 시 피해자 보호를 위한 영상녹화를 명시하고 있습니다. 교육청의 학폭위 조사는 형사 수사는 아니지만, 조사 과정의 투명성을 담보하고 피해 학생의 진술 번복 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녹취 의무화는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최소한의 조치입니다.
심의 결정의 신뢰를 회복하고 피해 학생을 실질적으로 보호하기 위해, 본청은 다음과 같은 성 사안 전문화 및 인력 강화 방안을 즉시 도입해야 합니다.
먼저 성 사안 전담 조사 및 심의 전문화가 필요합니다. 성폭력 사안 조사 시 성폭력 전문 여성 조사관 배정을 의무화하고, 피해 학생의 심리적 안정과 조력을 위해 전문 상담사를 의무적으로 동석하도록 지침 개정이 필요합니다. 학폭 전담 인력의 잦은 인사 이동과 저연차 비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난이도가 높은 성 사안을 담당하는 전담조사관에게 전문성을 담보할 수 있는 인센티브와 장기 재직 유도 방안을 구체적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심의위원 역시 성인지 감수성을 갖추는 것이 필수입니다. 법원 판례에서도 심의위원의 부적절한 발언이 심의 결과를 취소시키는 사례가 확인된 만큼, 심의위원 선정 및 연수에 대한 별도 교육과 평가를 도입하여 전문성을 갖춘 인력을 충원해야 합니다.
또 결정의 객관성 확보와 진정한 관계 회복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심의위원들이 피해 학생의 심리적 피해 정도 및 2차 피해 발생 가능성 등을 의무적으로 평가하도록 하는 ‘피해자 보호 중심 평가지표(체크리스트)’를 신설하여 심의 매뉴얼에 반영해야 합니다.
학교 단계에서의 갈등 조정은 가해 학생의 진정한 반성과 책임 인식이 선행될 때만 가능합니다. 반성이 결여된 형식적 ‘화해’가 2차 피해로 이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갈등 조정 절차 개시 전에 피해 학생의 ‘진정한 동의 여부’와 ‘2차 피해 가능성’을 전문 상담사가 의무적으로 심층 진단하도록 매뉴얼을 개정해야 합니다.
학교폭력 대응 시스템이 ‘교육적 해결’이라는 본래의 가치를 실현하려면, 피해자 보호를 위한 전문성과 투명성이 최우선으로 확보되어야 합니다. 교육청은 피해자가 안전하고 신뢰할 수 있는 환경에서 회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교육적 책임임을 명확히 인식하고, 위의 방안들을 즉시, 실질적으로 이행해야 합니다. 이것이야말로 무너진 학교 안전망을 재건하고, 학교폭력 대응의 새로운 기준을 세우는 길입니다.
임지훈 인천시의회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