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와 삶] 화폐금융의 탈중앙화 현상에 대한 소고

2025-11-20     이범호

현행 화폐 발행 및 금융거래시스템은 중앙은행에서 발행하는 법정통화를 매개로 한 중앙집중식이다. 중앙은행이 법정통화를 발행하고 금융중개기관은 법정통화를 사용하여 민간과 예금, 대출, 금융자산 매매 등을 하며, 민간은 금융중개기관을 통해 상거래 시 대금 지급, 송금, 금융자산 매매 등의 행위를 한다. 이러한 금융거래는 금융중개기관이 중앙은행에 가지고 있는 예금계좌를 통해 차액 결제를 청산함으로써 최종적으로 지급결제가 종료된다. 즉, 법정통화를 매개로 화폐와 금융거래가 중앙화(centralized)되어 있다. 이는 물가안정, 금융안정, 소비자보호 등 정책 수행의 근간이 된다.

탈중앙화(decentralized)란 현행 시스템 밖에서 화폐의 발행과 금융거래가 일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비트코인의 태생을 계기로 탈중앙화가 시작되었다. 2008년 10월 사토시 나카모토라는 사람이 “Bitcoin: A Peer to Peer Electronic Cash System”를 공개하며 비트코인이 탄생하였다. 문서의 제목이 말하듯이 비트코인은 금융중개기관 없이 개인 대 개인으로 전자 현금 거래에 사용된다. 분산원장을 기반으로 한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을 두고 있어 가능하다. 비트코인 거래가 모두 암호화되어 해킹이나 위변조를 막을 수 있고 거래의 투명성이 확보되어 금융당국의 감시가 없어도 거래의 안전성이 보장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법정통화가 아닌 탈중앙화되어 발행된 비트코인을 매개로 하여 민간에서 구축한 블록체인 기술 기반의 시스템에서 금융거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비트코인은 상거래에 지급수단으로도 사용되고 있다. 비단 이뿐만이 아니다. 탈중앙화된 예치, 대출, 자산 거래도 일어나고 있다. 가상자산시장에서 중개기관 없이 블록체인 기반의 스마트 계약(smart contract)에 의해 가상자산의 예치, 대출 및 매매가 이루어지고 있다. 이를 탈중앙화 금융(DeFi: decentralized finance)이라 칭한다. 2024년 말 현재 탈중앙화 금융 생태계의 총예치금이 약 1천200억달러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진다.

앞으로 화폐 및 금융의 탈중앙화 현상은 확대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올해 미국의 스테이블코인 관련 법이 입법화되면서 스테이블코인의 발행이 늘어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스테이블코인은 가치 변동성이 크지 않아 사실상 화폐 대용으로 사용될 수 있는 만큼 민간의 상거래, 송금 등에서 법정통화를 대체할 수 있다. 또한 스테이블코인은 탈중앙화 금융의 생태계에서도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를 들어 차입자들은 비트코인, 이더리움 등 투자성 가상자산을 담보로 예치하고 스테이블코인을 차입하는 방식을 선호한다. 스테이블코인이 탈중앙화 금융의 생태계를 확장하는 데 기여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탈중앙화를 이끄는 힘은 혁신 기술의 이용에 따른 편익(benefits)에서 찾을 수 있다. 무엇보다 비용의 절감과 편리성이다. 금융중개 기관 없이 거래가 이루어지므로 수수료가 절감되고 거래가 신속하며, 인터넷만 있으면 전 세계 어디서나 금융서비스 이용이 가능하다. 금융서비스 소비자에게 매우 매력적이다. 아울러 탈중앙화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수익을 창출할 수 있다. 새로운 수익 창출의 기회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편익 이면에는 현 시스템에서 제공하는 많은 편익을 잃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다. 무엇보다 화폐 금융의 핵심인 신뢰성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스테이블코인이 법정통화에 연계되어 있다고 하지만 가치가 공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만큼 발행자의 신뢰성에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코인런 등 금융 불안 발생 시 중앙은행이 최종대부자로서의 대응이 어렵다. 중앙은행이 탈중앙화된 정보를 확보하기 어렵고 유동성 공급의 법적 근거도 부족하기 때문이다. 신속한 대응이 어려워지면 그만큼 피해 규모도 크고 혼란이 가중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탈중앙화는 소비자 보호, 불법 자금거래 차단 등의 측면에서도 취약하다.

탈중앙화에 따른 편익보다 비용이 많아 보인다. 탈중앙화 확대에 대해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울러 현 화폐금융시스템에 혁신 기술을 활용하여 그 편익을 이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것이 바람직한 것으로 생각된다.

이범호 한국은행 경기본부 기획조사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