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북부 산단 미분양의 늪] 분양률보다 중요한 건 ‘산업 생태계'

⑥ 기업이 꼽은 5가지 조건

2025-11-24     이석중
지난 7일 동두천 국가산업단지 공사 구간. 굴착 작업과 기반 조성이 진행 중이지만 분양률이 3%대에 머물며 공사용 장비들만 부분적으로 남아 있다. 이석중 기자

경기북부 산업단지가 지역별로 뚜렷한 차이를 보이는 가운데, 동두천·연천 산업단지의 분양 부진 원인을 확인하기 위해 진행된 현장 취재에서 기업·전문가·경제기관이 공통적으로 지적한 핵심 조건들이 드러났다. 분양가 인하나 업종 확대 등 현재 추진 중인 대책만으로는 기업 유치가 어려우며, 산단 전반의 구조 개편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잇따랐다.

24일 중부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기업들이 가장 먼저 꼽은 조건은 입지 접근성이었다.

연천 BIX 입주기업 관계자는 “물류비와 인력 이동비까지 고려하면 분양가가 낮다는 장점이 거의 상쇄된다”며 “서울·의정부·양주와 연계되는 광역교통망이 충분하지 않으면 기업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연천 지역에서는 직원 채용 과정에서 “출퇴근이 어렵다”는 이유로 지원자 이탈 사례가 반복되고 있다는 것이 기업들의 설명이다.

지역 경제계도 비슷한 진단을 내놓았다.

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산업단지 입지는 기업이 가장 민감하게 판단하는 요소로, 연천·동두천은 교통 인프라만으로도 초기 경쟁에서 불리하다”며 “현재 추진 중인 인센티브만으로 이 불리함을 완전히 상쇄하기는 어렵다”고 평가했다.

두 번째로 가장 빈번하게 언급된 요소는 인력 수급 기반의 부족이다.

노란우산공제 경기북부본부 임영주 부장은 “지역 내 청년·전문 인력의 유입이 적고 외국인 근로자조차 연천 배치를 기피하는 사례가 있다”며 “숙련 인력 확보가 어려우면 기업은 입주 후에도 운영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경기연구원 조성택 연구위원은 인력 문제를 구조적 관점에서 진단했다.

“특정 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전문 인력을 길러낼 교육·연구 기관과 기술센터 등 ‘산업 인력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그러나 연천·동두천에는 이러한 기반이 부족해 전략산업 육성이 쉽지 않습니다.”

입지·생활권 연결 부족이 유치 걸림돌
전략산업 밸류체인·네트워크 미완성
“단기 분양대책 넘어 통합전략 필요”

세 번째로 지적된 문제는 산단의 역할 분명성 부족이다.

연천은 그린바이오 산업 특화, 동두천은 제조·소부장 산업 중심의 전략을 추진 중이지만, 기업 관계자들은 “산업단지가 어떤 산업을 중심으로 육성하는지 명확한 운영 전략을 확인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조성택 연구위원은 “전략산업은 정책 선언만으로 형성되지 않는다”며 “기업 간 협력·공동장비·R&D·혁신기관 등이 함께 구축되어야 실질적인 산업 클러스터가 만들어진다”고 설명했다.

네 번째로는 경원축 단위의 산업벨트 전략 부재가 지적됐다.

전문가들은 동두천·연천이 개별적으로 분양률을 끌어올리는 방식보다는, 경기북부 전체를 하나의 산업축으로 보고 역할을 분리하는 방식이 더 효율적이라고 제시했다.

서원석 중앙대 교수는 “연천·동두천은 단독으로 경쟁하기 어려운 인구 규모와 산업 기반을 갖고 있다”며 “양주(R&D), 동두천(제조), 포천(테스트베드·물류), 연천(원료 생산·바이오 기반) 등 권역 단위 기능 분담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제시된 것은 정책 틀의 전환 필요성이다.

현재 경기도·LH·GH가 추진 중인 업종 확대, 분양가 할인, 할부이자 면제 등은 기업 유치에 도움이 되지만, 전문가들은 “기초적 조치 수준에 그치고 있다”고 평가했다.

경제계는 기업 맞춤형 유치 전략과 광역교통망 연계, 산단-기업 매칭 프로그램, 근로자 정주 지원 등 보다 실질적인 정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한 입주기업 대표는 “산업단지는 단순한 토지 분양 사업이 아니라 장기적으로 산업 생태계를 설계하는 사업”이라며 “기업이 선택하는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동두천·연천 산업단지가 정체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분양률 중심의 단기 대책을 넘어 산업·교통·인력·정주를 통합한 광역 전략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이석중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