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치시대] 청소년 정책, 이제는 지방정부 중심으로 변환해야

2025-11-25     원혜욱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에 대해 이야기할 때 범죄를 가장 먼저 논의 주제로 제시하는 경향이 있다. 소년범죄의 심각성을 강조하면서 엄벌화를 주장하는 견해가 점차적으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부산 여중생 집단 폭행사건, 인천 초등학생 유괴살인사건을 비롯하여 과거에 발생하였던 강력사건이 재조명되는 등 소년강력범죄가 언론에 보도될 때마다 소년범에 대한 관대한 처벌이 범죄를 유발하고 있다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에 지난 정권에서는 촉법소년의 범죄가 연일 언론에 보도되면서 형사처벌의 연령을 하향하거나 법정형을 상향하는 방향으로 ‘소년법’의 개정 또는 폐지 논의가 활발하게 이루어졌다. 이러한 논의가 반영된 정부안으로 ‘소년법’ 개정안이 발의되기도 하였다.

이러한 소년범죄의 심각성은 드라마로 제작되기도 하였는데, 넷플릭스 드라마 ‘더 글로리’, ‘소년심판’의 방영을 계기로 소년범죄에 대한 국민적 관심이 더욱 높아지면서 소년범죄에 대한 사회적 경각심과 강력한 처벌을 요구하는 언론이 확산되기도 하였다.

이와 같이 우리 사회에서는 청소년의 문제가 범죄와 연결되어 부각되면서 법적인 해결, 즉 엄벌화에 대한 논의가 주요 쟁점으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과연 소년범죄를 소년만의 문제라고 할 수 있는지, 소년들에게 그러한 환경을 제공한 어른들의 문제는 아닌지 돌아봐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 청소년 정책이 청소년의 소위 ‘건전한 육성’을 위해서 제대로 수립되어 작동하고 있는지 검토해야 할 것이다. 적정한 청소년 정책이 시행될 때 소년범죄라는 극단적 청소년 문제도 그 해결점을 찾아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필자가 독일에서 유학할 당시 가장 놀라웠던 것은 독일의 교육정책을 비롯한 다양한 청소년 정책을 지방정부가 담당하고 있다는 점이었다. 독일은 사회법전(Sozialgesetzbuch VIII)의 규정을 통해 청소년 정책의 1차 책임을 지자체에 부여한다. 각 지자체에 독립 관청인 청소년청(Jugendamt)을 설치하여, 청소년 정책의 기획·수립·시행, 예산 편성 및 집행, 민간단체와의 협력, 형사절차와 민사절차를 포함한 모든 사법절차에서의 지원 등 청소년과 관련된 정책을 수립·시행하도록 하고 있다. 중앙정부는 기본 원칙만 수립하고 제시할 뿐, 실제 청소년 정책의 내용과 실행은 지자체가 책임지고 있다. 이는 청소년이 지역사회에 기반을 두고 지역을 중심으로 생활하고 있다는 점을 충실히 반영한 구조라고 할 것이다.

이에 반해 한국의 청소년 정책은 ‘보호’와 ‘규제’라고 하는 대주제를 중심으로 중앙정부 주도로 이루어지고 있다. 사회가 점차 복잡화되고 청소년의 요구가 다양해진 현실을 적절히 반영하기 위해서는 우리나라와 같은 중앙집중적 방식은 청소년의 소위 ‘건전한 육성’을 위해서 효율적이지 않다.

물론 우리나라 지자체도 청소년센터, 상담복지센터 등을 설치·운영하고 있지만, 예산의 상당 부분이 중앙정부의 보조금으로 운영되고 있기 때문에 프로그램이 표준화되어 시행될 수밖에 없다. 각 지역에서 발생하고 있는 청소년 문제 혹은 지역의 특성을 반영한 프로그램을 수립·운영하기 어려운 한계가 존재한다.

성장기의 청소년은 범죄·비행 환경에 쉽게 노출되기도 하지만 교화·개선의 속도도 빠르다는 특성을 지닌다. 이에 청소년 삶의 기반이 되고 있는 지자체를 중심으로 청소년을 ‘권리’의 주체로 인정하고, 현실에서 발생하고 있는 청소년의 다양한 요구를 지자체의 정책에 실시간으로 반영하여 시행할 수 있는 제도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우리나라의 청소년 정책의 패러다임도 이제는 각 지역의 현실과 특성을 반영한 맞춤형 정책을 수립·시행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청소년을 규제와 보호의 ‘대상’으로만 볼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지역의 복지·문화·교육 정책의 수립과정에 참여하여 자신들에게 가장 적합한 정책을 수립·시행할 수 있도록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한 청소년이 참여하는, 청소년의 요구가 반영된 정책의 시행이 소년범죄를 예방하는 하나의 방안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원혜욱 인하대학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