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로리다 리포트] 미국 지역지들 생존전략 '지역·주제별 맞춤 뉴스레터' 적중
16~17개 주제·지역별 세분화 해법 네이버 등에 종속 국내 현실과 달리 글로벌 플랫폼 의존도 낮추려 노력 AI는 도구로만 사용 '신뢰' 최우선
“우리는 뉴욕타임스가 아니다. 지역에 맞는 뉴스가 우리의 경쟁력이다.”
지난 14일~15일(현지시간) ‘AI시대 로컬 저널리즘 방향 모색’ 취재차 방문한 미국 플로리다 지역 언론사에서 한결같이 강조한 말이다. 디지털 전환과 플랫폼 지배, AI 등장이라는 거대한 변화 속에서도 지역언론이 살아남을 수 있는 길은 ‘로컬에 대한 집착’과 ‘독자와의 직접 연결’뿐이라는 것이 이들의 명확한 메시지였다.
◇플랫폼 의존에서 벗어나라
팜비치 포스트와 선 센티넬이 가장 공을 들이는 전략은 메타·구글 등 글로벌 플랫폼 의존도를 낮추는 것이다. 이는 우리 지역언론이 네이버·다음 등 포털에 종속된 현실과 정확히 겹치는 문제의식이다.
해법은 ‘맞춤형 뉴스레터’였다. 팜비치 포스트는 지역을 세분화해 각 커뮤니티별 뉴스레터를 발행하고, 선 센티넬은 16~17개의 주제별·지역별 뉴스레터를 운영한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AI가 아닌 ‘사람의 손’이다. 기자가 직접 해당 지역 주민에게 말하듯 개인적인 톤으로 도입부를 쓰고 가장 적합한 기사를 큐레이션한다.
선 센티넬의 데이비드 슐츠 디지털 에디터는 “데이터 분석으로 조회수 상위 기사만 자동 배치할 수 있지만, 우리는 항상 사람의 ‘퍼스널 터치’를 남겨두려 한다”고 말했다.
팜비치 포스트는 뉴스레터 이메일 확보 방식도 전략적으로 운영한다. 유료 기사에 접속한 독자가 결제를 망설일 경우 이메일을 남기면 해당 기사를 무료로 열어주고 특정 뉴스레터를 보내겠다고 제안하는 방식이다. 자사 앱과 푸시 알림, 검색 유입에 집중하는 전략도 눈여겨볼 만하다. 페이스북 페이지조차 종합형에서 지역별·주제별로 쪼개 운영하며, 플랫폼을 ‘배포 수단’으로만 활용할 뿐 의존하지 않는다.
◇데이터로 로컬을 재정의하다
선 센티넬은 단순 조회수가 아닌 ‘구독 전환에 기여하는 기사’를 추적한다. 독자의 거주 지역, 과거 열람 기사, 사이트 행동 패턴 등을 종합 분석해 어떤 주제가 유료 구독으로 이어지는지 파악하는 것이다.
결과는 명확했다. 치안·교육·지방정부·소비자 이슈가 핵심이었다. 선 센티넬은 이에 따라 레저·예술 보도는 줄이고 생활 밀착형 콘텐츠를 강화했다. 그레첸 데이브라이언트 편집국장은 “뉴스룸이 줄어들면서 아예 다루지 않는 주제도 생겼지만, 핵심 원칙은 탄탄한 저널리즘을 유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 분석 시스템이 모든 기자에게 열려 있는 것도 특징이다. 기자들은 자신의 이름을 클릭해 개별 기사 성과와 독자 반응을 실시간으로 확인할 수 있다. 이는 단순한 성과 관리가 아니라 기자 스스로 독자가 원하는 것을 이해하고 콘텐츠를 기획하도록 돕는 도구로 기능한다.
◇다변화된 수익 구조, 하지만 ‘얇고 넓게’
팜비치 포스트의 비즈니스 모델도 눈여겨볼 만하다. 지면·디지털 유료 구독, 지면·온라인 광고, 유튜브 등 플랫폼 영상 수익, ‘최고의 레스토랑·기업’을 뽑는 시상 이벤트와 유료 포럼, 트럼프·스포츠·허리케인 등을 주제로 한 단행본 판매, 비영리단체와의 모금 행사와 기부 유치까지 수익원이 다변화돼 있다.
지면 구독료는 연 1천 달러 이상으로 한국 지역지에 비해 훨씬 높지만 각종 할인으로 부담을 낮췄다. 그럼에도 1만7천~1만8천여 명이 연 구독을 하고, 일요일판만 구독하는 독자는 약 3만명에 이른다.
하지만 종이신문의 미래에 대해서는 냉정했다. 팜비치 포스트 톰밀리어 매니징에디터는 “지면 구독자의 평균 연령은 70~80대, 온라인 독자는 50대 수준”이라며 “언젠가 지면이 없어지는 날이 올 것이기 때문에 디지털 강화에 힘을 쏟고 있다”고 말했다. 종이 가격 인상, 넓은 배달 구역, 이른 마감 시간 등으로 지면 운영 부담이 커지는 가운데, 구독자도 서서히 줄고 있기 때문이다.
◇디지털 퍼스트, 말만이 아니다
“지면은 걱정하지 말고 디지털을 먼저 생각하라.” 선 센티넬이 기자들에게 주문하는 원칙이다. 현장 기자가 속보를 온라인에 올리고 계속 업데이트하다가, 지면 마감 시간에 맞춰 지면용 버전을 따로 정리하는 방식이다. 이후 추가 정보가 나오면 다시 온라인 기사를 통해 이어간다. 한 기자가 시작한 기사를 다른 기자가 이어받아 팔로업을 쓰는 방식으로 협업하기도 한다.
주목할 것은 별도의 디지털 뉴스부서를 두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레첸 데이브라이언트 편집국장은 “우리에게는 디지털부가 따로 없다. 모든 기자가 곧 디지털 기자다”고 잘라 말했다.
이 같은 기조는 선 센티넬이 15년 전 디지털을 시작해 10년 전부터 본격적으로 ‘디지털 퍼스트’로 방향을 전환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최근 디지털 유료 구독자가 지면 구독자를 추월했다. 초기에는 조회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지금은 ‘돈을 내고 읽어줄 독자’를 겨냥한 전략으로 변화했다. 대부분의 기사는 유료 구독을 해야 볼 수 있도록 전환했고, 무료 기사 비중은 줄였다.
◇AI는 도구, 신뢰가 우선이다
이들 언론사는 모두 AI 활용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하고 있다. 선 센티넬의 데이비드 슐츠 디지털 에디터는 “AI는 강력한 도구지만 너무 빠르게 도입했다가 팩트 오류와 신뢰 훼손이 발생하면 되돌릴 수 없는 타격을 입을 수 있다”며 “조금 늦더라도 신뢰를 지키는 쪽을 택하고 있다”고 말했다.
팜비치 포스트도 “콘텐츠를 창작하는 도구로 AI를 쓰지 않는다”고 명확히 선을 그었다. 대신 리서치, 제목, 스토리 구조의 아이디어를 얻는 것 등에 활용한다. 또 기사와 사진·영상을 조합해 자동으로 30초 영상을 만드는 기능을 시험하고 있다.
플로리다 마이애미=민병수기자/
※이 기사는 한국언론진흥재단 ‘2025년 KPF 디플로마-로컬 저널리즘’ 과정의 지원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