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팩트인사이드] 광역교통망 확대, 지역소멸 앞당기나
[검증대상] 광역교통망 확대가 지역소멸 앞당기나
교통망 확충은 지역에선 희소식으로 받아들여진다. 특히 도시간 일상적 이동을 가능케하고 주택가격 상승 등을 이끄는 광역교통망은 대표적인 ‘호재’로 언론에 오르내린다. 하지만 광역교통망의 확장, 특히 서울을 중심으로 뻗어나가는 광역교통망은 ‘빨대효과’ 우려가 매번 따라붙는다. 더욱이 이 같은 빨대효과는 전국적인 저출산·고령화, 서울 일극화 현상 등과 맞물려 ‘지역 소멸’의 원인으로 지목되기도 한다. 그럼에도 서울로 이어지는 교통망을 늘려달라는 요구는 계속되고 관련한 정부 계획과 정책은 이를 적극적으로 수용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광역교통망의 확대, 지역 발전을 돕는 것일까, 아니면 지역 소멸을 부추기는 것일까. 중부일보가 이를 검증했다.
[관련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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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 오를 일만 남았다"…GTX 동탄역 5억 뜀박질, 매물 증발 (중앙일보 4월 6일 보도)
질주하는 GTX-A… 흔들리는 지역상권 (기호일보 4월 5일 보도)
‘동해선’ 개통 1년… 광역 대중교통 수단으로 ‘우뚝’ (한국일보 2022년 13월 30일 보도)
[검증 방법]
▶ 광역교통망과 관련해 상권·인구 변화 등 이슈가 있는 지역을 찾아 현장을 돌아보고 시민이 체감하는 영향을 물었다. ▶ 대표적 광역교통망인 수도권광역전철이 경기지역에 미치는 영향을 알아봤다. 통계청에서 제공하는 지역 읍면동별 사업체 수 데이터와 위치·개통년월을 포함한 전철역 정보를 교차 분석해 역 개통 전후 해당 지역의 사업체 변화를 살펴봤다. 또 경기도에서 공개한 통신사 생활인구이동 데이터를 분석해 경기도와 서울간 이동에서 광역교통의 역할을 알아봤다. ▶ 교통의 빨대효과를 논증한 연구보고서와 논문을 참고했다. ▶ 도시·교통공학 전문가에게 국내 빨대효과 사례를 들었다. 또 더 나은 광역교통 정책, 인프라는 어떤 것이 되어야 하는지를 물었다.
[검증내용]
◇ 국내 빨대효과 미미
광역전철망 확충 사례를 분석한 결과, 광역교통망 확대에 자주 제기되는 빨대효과 우려는 과도한 면이 있다는 점이 확인됐다.
사례 취재를 위해 찾아간 춘천의 경우, 경춘선 복선화로 수도권광역전철권에 편입 된 이후 전반적으로는 인구와 사업체가 늘고 있었다. 다만 남춘천역 등 전철역 역세권으로 경제력이 집중하는 반면 명동상점가 인근 지역 등 전통적인 상권은 정체되는 양상이 확인됐다.
2017년부터 2022년까지 조사된 자료를 보면, 이 기간 명동상점가가 걸치고 있는 행정동 중 한 곳인 약사명동의 서비스업 사업장 수는 272곳에서 259곳으로 13곳 줄었고, 도소매업도 525곳에서 494곳으로 31곳 줄었다. 반면 남춘천역이 속한 퇴계동은 서비스업이 2017년 866곳에서 2022년 1천327곳으로 461곳 늘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도소매업도 같은 기간 516곳에서 836곳으로 320곳 늘었다.
비수도권 최초 광역전철망인 동해선이 연결된 부산-울산은 대표 역이자 기종착역인 부전역과 태화강역 인근에서 모두 유의미한 상권 증가를 확인했다. 특히 부전역 인근 부전시장은 상인들도 매출 증가를 확실히 체감했다.
부전역이 속한 부산진구 부전1동의 서비스업 사업장 수를 보면, 2017년 1천177곳에서 2022년 1천382곳으로 5년간 205곳 늘었다. 도소매업 또한 2017년 2천257곳에서 2020년 2천577명으로 300곳 이상 늘었다. 이후 코로나19 유행 시기인 이후 줄어드는 경향을 보였음에도 2022년 2천348곳으로 2017년 대비 91곳 늘었다. 태화강역이 위치한 울산 남구 삼산동은 같은 기간 서비스업 2천440곳에서 2천848곳으로 408곳 늘었고 도소매업 2천962곳에서 3천559곳으로 597곳 늘었다.
통계청 사업체 데이터를 보면 경기도 내 주요 지역에서 전철망이 확장된 후, 역세권의 사업체 수가 전반적으로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분석한 데이터는 ▶수원·용인·안산에 2020년 개통한 수인분당선 ▶파주·양평에 2014·2017년 개통한 경의중앙선 ▶이천·여주에 2016년 개통 경강선 ▶용인에 2013년 개통한 에버라인·2016년 개통한 신분당선 ▶안산에 2018년 개통한 서해선 ▶하남에 2020년 개통한 5호선 역세권의 정보다.
그 결과 각 지역 역세권에서는 전철역이 들어선 후 대체로 사업체가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적으로 하남에서는 사업체 수가 84% 증가, 이어 수원 46%, 안산 36%, 용인 28%, 파주 17%, 이천 15%, 여주 6%, 양평 5%가 증가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전철망 확장이 역 주변 지역 경제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보여준다.
물론 서울로의 집중 현상도 확인된다. 2019년 경기 지역 주민들의 역외소비율이 54.2%에 이르고, 그 중 84.4%가 서울에서 발생했다는 데이터는 서울이 여전히 주요 소비 중심지임을 나타낸다. 하지만 올해 1월 기준 수도권 통신사 이동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경기도내 지역간 이동 비중이 경기도 전체 이동의 86.4%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에서 광역교통망이 단순히 서울 집중화를 가속화하는 것만은 아님을 알 수 있다.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교수는 "광역교통망이 생기면 당연히 사업체라든지 인구라든지 서울로만 집중되는 것이 아니라, 양방향적인 증가가 나타날 수 있다"며 "서울로 통근하는 사람들이 교통망 주변으로 몰리면 역세권은 성장하고, 반대로 서울에서 경기 역세권으로 오는 사업체도 있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 지역 균형발전 도모하려면
실제로 드러나는 빨대효과가 크지 않다고 해서 광역교통망 확충이 그 자체로 지역균형발전에 도움이 된다고 말할 수는 없다. 조재욱 경남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2023년 발표한 논문에서 "교통망 확충이 중소지역의 지방 상권을 위축시킨다는 빨대효과는 우려할 수준은 아닌 것으로 대개 거론되지만, 다른 한편으로 역세권 상권 외에는 지역개발 효과에 별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게 중론"이라고 진단했다.
광역교통망이 균형발전으로 가는 길이 될지는 ‘어떻게 놓느냐’에 달렸다. 전문가들은 ‘다핵화’와 ‘그물망’을 강조한다.
김진유 교수는 "우리나라의 광역교통망은 업무 중심지에서 뻗어나가는 방사형 구조로 교통량이 한 곳에 몰리는 현상이 있다. 서울 삼성역이나 강남역 같은 곳은 고용 중심지로서의 메리트가 계속 높아질 것이다"라면서 "경기도나 인천 내에도 광역교통망이 그물망처럼 교차되는 지점이 여럿 있고, 그 역세권에 고용 중심지를 개발해야 서울 중심성을 완화할 수 있다"라고 말했다.
조응래 전 경기연구원 부원장은 "수도권광역전철 3호선·경의중앙선·서해선이 교차하는 고양시 대곡역 같은 곳들이 중심이 돼야 한다"며 "사람들이 그런 쪽으로 출퇴근하는 형태가 돼야지, 서울 가는 길을 빠르게 하는 식의 정책으로는 지역의 미래를 밝힐 수 없다고 본다"고 진단했다.
해외 사례도 살펴봤다. 지역균형발전의 선진사례로 이야기 되는 독일을 취재한 결과, '수도권 집중'등의 현상을 만들지 않고 국가가 발전하는 데 다핵적 도시개발 정책과, 밀도가 높은 그물망형 광역교통망이 역할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수도 베를린의 인구 밀도가 낮고, 경제 중심지가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 등 다른 지역에 형성돼 있는 독일의 광역교통망은 일극화된 중심지역으로 경제력과 인구가 모이게 하는 것보다 지역간 고른 이동을 할 수 있게 하는 수단이 되고 있었다.
[검증결과]
국내외 현장 취재와 데이터 분석 등을 통해 살펴본 결과 광역교통망이 늘어나면 중심도시 외의 지역도 발전이 촉진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도권의 경우 2020년 수인분당선 기흥역 개통 이후 전철역과 인접한 용인시 기흥구 구갈동에 사업체 수가 124% 증가한 것으로 확인됐다. 경춘선 복선화로 수도권광역전철권에 편입 춘천 역시 인구와 사업체 수가 전반적으로 증가했다. 비수도권인 부산과 울산도 마찬가지 였다. 동해선으로 연결된 부산-울산은 대표 역이자 기종착역인 부전역과 태화강역 인근에서 모두 유의미한 상권 확대가 목격됐다.
이 같은 상황을 종합하면 광역교통망 확대가 지역소멸을 가속화한다고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광역교통망이 지역균형발전에 순기능으로 작용하려면 중심도시에서 뻗어나가는 방사형 구조가 아닌 거점도시를 잇는 그물망 형태로 갖춰져야 하고 이에 따른 정책적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전문가들 역시 이를 지적하고 있고 팩트인사이드 팀도 균형발전 정도가 높은 독일 취재를 통해 다핵화와 그물망형 교통망의 중요성을 확인했다. 따라서 중부일보는 ‘광역교통망 확대가 지역소멸을 앞당기나’라는 검증문을 ‘대체로 사실 아님’으로 판단한다.
강찬구기자
[근거자료]
경기데이터드림 시군구간 성별/연령별 이동목적/수단 OD 데이터
<논문·연구보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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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광역적 공간전략의 정치경제: 메가시티 구상의 의의와 과제를 중심으로
동해선 광역전철 개통의 지역 영향 분석 연구
<전문가 인터뷰>
김진유 경기대학교 도시교통공학과 교수
조응래 전 경기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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