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 11월 22일 경제사회노동위원회(위원장 문성현)는 ‘공공기관위원회’를 출범시키고, 공공기관의 ‘노동이사제’와 ‘임금(보수)체계 개편’을 위한 본격적인 논의를 시작하였다. 대통령 직속 기관으로 운영되는 경사노위는 1998년 김대중 정부에서 노사정위원회로 출발하여 지금까지 발전하여 오고 있는 기구이다. 문재인 정부에서는 업종별 위원회를 운영하여 해운, 금융, 보건의료 등 각종 업종에서 제기되는 공통 현안의 해결방안을 마련하는 새로운 접근을 하고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공공기관 관련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공공기관위원회’를 구성하고, 공공기관 관련 노동계 3인, 기획재정부·행정안전부·노동부의 정부 각 3명, 공익위원 3명과 위원장으로 구성된 10인은 1년간 공공기관의 새로운 지평을 열기 위한 합의 도출을 위해 노력하였다. 공공기관이 우리나라 노사관계와 노동시장에서 선도적 역할을 해왔다는 점에서 공공기관위원회 출범에 대한 관심과 기대가 컸었다.

마침내 지난 25일 합의문을 발표하는 성과가 있었다. 크게 2가지 유형으로 나누어 협상이 이루어졌다. 첫째는 참여형 공공기관 운영방안 마련과 관련하여 ①노동이사제 추진, ②윤리경영 강화, ③경영투명성 강화 등이 합의되었다. 노동이사제의 유형에 관해서는 쟁점이 있고 국회가 입법을 해야 하지만, 공식적인 논제로 제안했다는 의미가 있다. 둘째, 지속가능한 공공기관 임금제도 마련과 관련하여 ① 직무 가치를 반영한 임금(보수)체계 개편 ②임금피크제 제도 개선 등이 합의되었다. 보수 체계의 구체적인 양태를 결정하지는 않았지만. 호봉제 중심의 보수 체계를 개편하고 직무급 도입의 단초를 마련했다는 의미가 있다.

이번의 사회적 대타협은 향후 한국의 공공기관 운영과 관련하여 큰 변곡점이 되기를 기대하고 있다. 2007년 노무현 정부에서 공기업에 대한 대대적인 개혁이 진행되었다. 공기업이라는 개념 대신에 공공기관이라는 개념을 도입하면서 포괄 범위를 확대하였다. 그리고 인사, 조직, 재정 관리 그리고 성과 평가는 개별 부처의 통제 하에 두는 것이 아니라, 국가적 관점에서 총괄 관리하는 기능을 도입하였다. 이에 ‘공공기관 운영에 관한 법률’을 제정하면서 ‘사전 자율, 사후 평가’의 패러다임을 도입하였다. 그러나 당시 개혁은 2005년 OECD가 각국의 공기업 운영과 관련한 가이드 라인을 발표했고 한국은 이에 선도적으로 따라가는 개혁이었다. 이에 세련된 제도를 도입했지만, 우리의 현실에 맞지 않아 ‘이론 따로, 제도 따로, 현실 따로’라는 비판이 있었다. 당시의 많은 제도는 전문가의 분석과 정부의 결단에 의해 하향적으로 도입되었다. 공공기관의 현실은 개혁의 대상이었지 고려의 대상이 되지 못했다. 빠르게 도입하는 장점은 있었지만, 집행의 과정에서 반발이 있었고 이러한 현실의 저항 속에서 순수했던 이론은 변형되고 왜곡되어 운영될 수밖에 없었다.

현대 행정에서는 일방적 집행을 의미하는 정부(government)의 개념을 넘어서 거버넌스(governance)가 강조되고 있다. 협동하여 함께 통치한다는 의미에서 협치(協治)라고 번역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거버넌스는 결과의 개념이라기보다는 과정의 개념이다. 같이 논의하고 협의하는 과정 자체가 중요한 가치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의 대타협은 거버넌스의 새로운 유형을 제시하는 의미가 있다.

중앙정부가 관리하는 공공기관은 340개, 지방정부가 관리하는 지방공기업은 405개, 지방정부의 출자출연기관은 742개이다. 이들 기관은 국민의 일상생활에 밀접한 관계를 가진 공공 서비스를 전달하고 있으며, 정부와 시민이 만나는 최일선에서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다. 그런 관점에서 이들 기관의 개혁은 일회성의 행사가 아니라 제도화된 일상이어야 한다. 지시나 명령에 의한 하향식 방식의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는 상향식 방식이 되어야 하는 이유이다.

이번에 노·정은 한 번의 협상으로 끝내지 않고 ’21년 4월 2기 공공기관위원회 출범을 목표로 연구회의 운영을 통해 의제 설정 과정을 진행키로 하였다고 한다. 노정 대화의 새로운 지평으로 자리 매김 되기를 기대하며 이번의 공공기관위원회에 의한 사회적 대타협이 ‘신뢰에 기반 한 협력 방식’의 새로운 개혁의 출발점이 되기를 기대한다.

이원희 한국행정학회 회장, 한경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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