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북부의 중심도시 의정부시가 민선 8기 들어 시민이 정책의 주체가 되는 ‘참여 행정’의 모범을 만들어가고 있다. 그동안 주민 반발로 사업이 중단되거나 지지부진하던 현안들이 시민공론장 등 숙의민주주의 방식을 통해 새로운 해법을 찾고 있다. 행정이 결정하고 시민이 따르는 시대를 넘어, 시민이 주체가 되어 정책을 함께 설계하는 시대가 열리고 있는 것이다. 갈등을 봉합하고 공감대를 조성하며, 주민과 함께 도시를 바꾸는 방식이 지역 자치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 -편집자주
◇ 고산동 물류센터 백지화…주민위한 결단이 가능성을 현실로
의정부시의 ‘시민 중심 행정’을 상징하는 대표 사례가 고산동 물류센터 백지화다. 고산동 물류센터 건립은 한때 의정부시 최대 현안이었다. 아파트 단지가 밀집한 지역에 대규모 물류시설이 들어서면 교통 체증과 환경 문제가 가중될 것이란 우려가 컸다. 특히 200m 안에 초등학교가 있어 아이들의 등· 하교길 안전이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
김동근 시장은 취임 직후부터 주민안전을 우선하는 도시라는 원칙을 내세우면서 사업 전면 재검토를 지시했다. 법적 문제, 사업자 반발 등 현실적 난관이 적지 않았지만 행정은 일관된 입장을 견지했다. 전담 TF 운영을 통해 법적·경제적 영향 분석, 대체사업 검토 등이 진행됐고, 시는 시행사와 수차례 실무·정책 협의를 이어갔다.
결국 지난해 4월, 물류센터는 백지화되고 대신 LH가 공급하는 439세대 공공주택 사업으로 전환됐다. 이 공공주택은 무분별한 고밀도 개발이 아닌, 저층·저밀 설계로 쾌적한 정주환경을 제공하는 주거 모델로 추진된다. 이는 단순히 시설 용도만 바꾼 것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 가치를 지키는 정책적 선택이었다.
김 시장은 자신의 SNS를 통해 “공약을 할 때 많은 분이 불가능하다고 했지만 결국 해냈다”며 “시민과 함께해서 가능한 일이었다”고 소회를 밝혔다. 물류센터 갈등이 공공주택 공급으로 전환된 이번 사례는, 행정이 방향을 정하고 시민이 따르는 방식이 아닌 시민의 요구에 행정이 답하는 방식의 전환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시민 소통 모범사례 확산…예비군 훈련장·소각장·하수처리시설 해결
의정부시는 고산동 물류센터 외에도 수년째 지역갈등을 빚어온 대형 현안들을 연이어 공론화·합의 기반 방식으로 해결하고 있다. 예비군 훈련장 이전, 소각장 현대화, 하수처리장 개선 등은 모두 오랜 갈등 끝에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던 사안이었다.
먼저 호원동 예비군 훈련장은 사격 소음 등으로 주변 주민 민원이 끊이지 않았다. 특히 사격훈련이 진행될 때마다 주민 불만이 폭발했고, 이전 방안이 제시될 때마다 지역 간 이해관계가 충돌했다. 이에 시는 ‘예비군 훈련장 시민공론장’을 열고 시민참여단이 후보지를 직접 선정하도록 했다.
논의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됐으며, 참가 시민들은 후보지 조사·전문가 설명·숙의 토론을 반복했다. ‘주민들이 결정한 사항은 100% 수용하고 책임은 시장이 진다’는 김동근 시장의 시민공론장을 대하는 태도와 의지, 그리고 결과에 책임지는 결단이 뒷받침돼 가능한 일이었다.
최종적으로 자일동 곤제지구 일대가 이전지로 결정됐고, 시는 즉시 군과 협력해 추진 절차에 들어갔다. 이 사례는 최근 경기도 공공갈등관리 우수사례 경진대회 대상에 선정되며 군·민·관 갈등관리의 모범모델로 평가받기도 했다.
또 다른 갈등 현장이던 장암동 생활폐기물 소각장은 내구연한 초과와 처리용량 부족 문제에 직면해 있었지만, 이전을 둘러싸고 권역 간 갈등이 반복됐다. 의정부시는 이를 ‘시민공론장’에 부쳤고, 시민들은 토론과 전문가 검증을 통해 지하화, 신규부지 추진, 주민편익시설 연계라는 대안을 직접 도출했다.
이에 따라 자일동 환경자원센터에 하루 230t 규모 지하 소각시설이 추진되며, 자일동엔 주민편익시설(수영장·실내골프연습장 등)도 함께 조성될 예정이다. 이처럼 소각장 사업도 ‘시민이 주인인 행정’이라는 기조 아래 재설계됐다. 과거 탁상행정이나 일방추진 방식에서 탈피해, 숙의와 투표를 거쳐 나온 시민 의견을 정책 설계에 반영했다.
한편 1987년 건립된 장암공공하수처리시설은 악취와 환경기준 강화 등으로 개선이 시급했지만, 민간투자 방식 여부를 두고 갈등이 지속됐다. 김 시장은 취임 후 사업의 원점 재검토를 선언하고 시민공론장과 전문가 워킹그룹 등을 통해 ▶민간투자방식 혹은 재정사업 방식에 대한 논의 ▶현장견학 통한 시설 노후화 실태감사 ▶시민참여단 의견수렴 등의 절차를 거쳤다.
그 결과, 노후시설 개선이 시급하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재원 마련을 위해 최대한 많은 국도비를 확보하되 부족한 부분은 민간투자사업을 활용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로 결정, 사업 추진에 속도를 낼 수 있게 됐다. 이처럼 하수처리시설 현대화 역시 시민과 행정이 함께 길을 찾은 대표적 사례로 자리매김했다.
이들 3개 현안은 모두 격렬한 논쟁이 이어졌던 사안이지만, 일방추진을 멈추고 시민과 함께 해법을 찾으면서 갈등에서 협력으로 성격이 변화한 공통점이 있다. 의정부시의 변화는 단순히 현안 해결에 머물지 않는다. 공공갈등을 시민과 함께 풀어가며 정책 신뢰를 높인다는 점에서 지방자치 30년의 성과이자, 향후 30년 의정부 행정이 가야 할 방향을 제시한다. 갈등을 피하지 않고 공론장에서 결과를 얻는 과정 속에서 의정부의 미래는 시민과 함께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김동근 시장은 “시민이 도시의 주인이라는 당연한 원칙이 행정의 출발점이 돼야 한다”며 “어떤 문제라도 시민과 함께하면 해결할 수 있다. 앞으로도 시민과 소통하는 행정에 소홀함이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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