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들녘의 11월이 밀레의 만종처럼 겸허하다. 11이라는 숫자 자체가 낙엽지고 더 이상 벗을게 없는 나목 같고, 마주 서서 기도하는 너와 나의 초상 같다. 가을의 끝자락이자 차가운 겨울 동굴로 들어가는 입구, 올해도 수많은 사연을 묻고 사라질 것이다.
한해를 동거한 세월이 아쉽지만 무상한 시간을 보상해 줄 법도 신도 없다. 세월은 일방통행으로 질주할 뿐 절대로 후퇴하지 않고 미련이나 정 따위의 군더더기를 동반하지 않는다. 그를 지배하거나 끌고 간다는 억지는 반어적 호기일 뿐 스스로 이끌려 간다.
이유 없는 세월은 원인도 결과도 물을 수 없으니 그를 따라 망각하며 살 수밖에 없다. 용기와 지혜는 셀프다. 알아서 매 순간 닥치는 현실을 살펴야 한다. 오늘도 시들은 국화처럼 눈을 부스스 비비며 저절로 온 아침과 마주한다.
11월, 회색빛 늦가을은 어디론가 떠나고 싶다. 나는 저벅저벅 노랗게 익은 은행잎을 밟으며 오래된 가로수 옆 지하실로 내려갔다. 오복서점이라는 매우 민화적 이름이다. 시골집 아랫목의 청국장 뜨는 냄새나 실경에 매달린 메주냄새 같은 퀴퀴한 분위기이지만 실은 누렇게 변색된 늙은 책이 주는 향수일 것이다. 아주 오래된 화집과 시집, 소설집 속에 잘 하면 진귀한 보석을 발견할 수도 있다. 경기도미술관의 한 큐레이터가 이곳에서 볼만한 고서 한권을 건졌다고 자랑하던 일이 생각난다, 2000원 짜리 라벨이 붙은 시집한권을 찾아냈다. 내용이 도발적인 메타포다. -살아서 팔딱이던 말들/ 살아서 고프던 몸짓/ 모두 잃고 나는 씹었네/ 입 안 가득 고여 오는/ 마지막 섹스의 추억. -앙상한 만추의 결부처럼 섹시하게 버무린 언어가 맛깔스럽다, 군침 도는 굴비의 비늘 속 은밀한 살을 헤치는 은유의 미학을 본다.
따뜻한 햅쌀밥에 고등어조림으로 생일상을 차려주시던 어릴 적 어머니가 생각난다. 푹 익은 대추차가 생각나 길 건너 카페로 걸음을 옮겼다. 풀잎처럼 씨거운 날은 누구라도 불러내어 이곳으로 갔다. 시인과 농부, 외로움에 지치면 찾는 찻집이다. 40년 전 삶터를 수원으로 옮겨와 처음 발견한 이 카페는 가을에 더욱 운치가 있다. 무르익은 낙엽 냄새가 풍기고 오래된 LP 판에서 번지는 고전음악이 가슴에 스민다. 나는 슈만의 클라라를 짝사랑하다가 간 브람스의 음악을 듣고 싶다고 말했다. 조용한 피아노 소리와 바이올린 소리가 그윽이 눈을 감긴다. 음악을 송출해준 마담은 무르익은 대추차를 가득 담아왔고 곁들여 밀레와 고흐가 먹던 장면의 감자와 수정과를 질그릇에 담아왔다.
주인 마담은 다정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미소를 엷게 짓는다. 메디슨 카운티의 다리의 메릴 스트립처럼 비비꼬인 분위기는 아니지만 데이트 상대가 그리운 장소다. 나는 다시 길 건너 예술인들이 주로 들락거리는 주점 크로키로 갔다. 후배 화가가 개인전을 한다며 그림으로 벽을 채워놓았다. 이곳의 주인장도 서양화를 전공한 미대출신 후배이다. 흐릿한 불빛 아래서 나는 그동안 수많은 막걸리 잔을 비워냈다. 코다리찜과 가오리찜은 이 카페의 오래된 인기 메뉴다. 가끔 국악인이 괴성을 지르기도 하고 시인이 시 낭송을 하기도 한다. 수원의 마음 때 묻은 곳을 모두 거친 만추의 밤, 지난 시간을 조용히 전송하며 거리로 나선다.
이런 시에 가슴을 모으며. -가을에는/기도하게하소서/낙엽들이 지는 때를 기다려 내게 주신/겸허한 모국어로 나를 채우소서/가을에는/사랑하게 하소서/오직 한 사람을 택하게 하소서/가장 아름다운 열매를 위하여 이 비옥한/시간을 가꾸게 하소서. -김현승 ‘가을의 기도’ 중에서
이해균 해움미술관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