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종말을 그렸던 재난영화 제목이 떠오르는 기괴스러움이 이제야, 세밑인 12월에 완성되는 숫자의 느낌이다. 그 어느 해보다 희망과 계획이 컸던 경자년 이었기에 새해 초부터 들이닥친 충격은 이러다 말겠지,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금방 극복하고 다시 제자리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고 당연하게 여기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던 것이 여전히 극복하지 못하는 어려운 상황으로 2020년이 저물어 간다. 나아지기는커녕 신규 확진자는 점점 더 늘어가고, 길게 이어지는 비상상황에 무감각해지고 풀려버리는 긴장감을 탓하기에는 짙게 내려앉은 이 회색빛 오늘을 어찌해야 하는지 정말 답답하고 어렵다.

혹시 이런 상황에 대한 경험자가 있을까 주변을 알아봐도 모두가 처음으로 겪는 새로운 시간이라는 것을 서로 확인하는 과정이 있을 뿐이다. 누군들 이런 시간을 상상이나 했겠으며 겪어봤겠는가…. 80년을 넘게 산 부모님들도, 이제 막 사회에 발을 내딛는 청년도, 대입수능을 치른 고3들도 어제 축복을 받으며 태어난 갓난아이도 똑같이 처음 겪는 상황이니 경험과 대처방법을 알려줄 선배도 어른도 경험자도 없는 세상이 오늘인 것이다.

마스크를 하라니 긴 줄을 서서 구입도 했고, 나중엔 신분증을 가지고 약국에 가 할당된 개수의 마스크를 구입했으며 혹시 더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없을까 하여 여기저기 수소문을 하고 기웃거리기도 했다. 서로의 간격을 넓히라 해서 두 팔 벌리고 또 그만큼 더 벌려서 걸어 다니고, 부처님과의 간격도 멀찌감치 떨어져 불공을 올리고, 절에 들어가며 온도를 체크하고 개인 신상카드를 기록하고 목사님의 설교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도 학교 마당에 주차시킨 차안에서 라디오를 통해 했다. 새 옷과 가방, 신발을 준비해서 학교에 처음 들어가는 꿈에 젖어있던 녀석들에게는 하루만, 한 달만, 여름에는 학교에 갈 수 있다는 희망고문으로 2020이 끝나가고 있다.

서슴없이 종말이 왔다는 부정적인 말을 하는 이도 있으며 아직은 시작도 안 했다는 비관자의 이야기도 들린다. 또 이런 상황이 기회가 되어 더 커지고 더 많이 벌고, 더 따뜻한 시간을 차지하는 사람들도 분명히 있으니 모두에게 지옥 같은 시간은 아닌 것이다. 비대면 이라는 듣도 보도 못했던 한자단어를 모든 사람이 사용하는 시대에 아직 그 흐름을 따라가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사람도 분명히 있으니 그것도 공평한 세상일까 라는 의문이 든다. QR코드를 형성하지 못하는 노인들의 당황스러운 표정을 만나는 것은 그리 어렵지 않다. 차량을 운전 할 때 지나는 길의 모든 자치단체에서 보내주는 안전문자는 뜨겁게 사랑하는 연인들의 대화보다 많이 쌓인다. 그래도 다행인 것은 오늘은 지하철에서 마스크를 착용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치고받는 싸움을 볼 수 없었다는 것이다.

누구랄 것 없이 모두가 함께 겪는다는 이유로 아무렇지 않을 수 없으며 위안을 얻지도 못하는 것을 공평이라는 단어로 얼버무리기에는 쏟아 부은 시간과 비용과 아픔이 너무 큰 12월에 다시 엄습해온 대 유행에 대한 전조들이 이곳저곳에서 공포감을 더 해주는 것이 강 건너 불구경일 수는 없는 것이다. 내일을 위해 지금 준비해야 한다는 극히 당연한 이론적인 미사여구로 위로와 희망을 건네기에는 많이 지치고 어려운 시간을 지나고 있음을 서로가 다독여주는 것 뿐 아니라 살아가고 있고 견뎌내고 있음에 대한 자부심과 개인의 정체성에 대한 무한 칭찬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기인 것 같다. ‘오늘, 우리는 이 곳에 있다’ 훗날, 이 말이 우리에게 자부심과 승자의 경험으로 남아 경험담을 이야기 할 수 있기를 꿈꾸는 2020년 세밑이다.

유현덕 한국캘리그래피 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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