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의는 끝났다. 칠판의 학습내용을 지우듯 한 해를 지운다. 정들만 하면 이별이라는 말처럼 좋았던 모든 곳과 사람들과도 송년의 석별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기대로 한 해를 맞이할 것이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만남과 이별을 겪었는가. 벌거숭이로 태어나 가장 먼저 만난 어머니, 그리고 가족 이래로 초등학교를 입학하여 코흘리개로 만난 선생님과 동무들, 그렇게 6년간 정든 눈빛들과도 빛나는 졸업장을 받아들고 ‘잘 있거라 아우들아 정든 교실아 선생님 저희들은 물러갑니다.’ 라고 울먹이며 교정을 떠났던 기억을 간직하고 있을 것이다.
다시 질풍노도의 시기 중학생이 되어 어엿이 만난 친구와 선생님들, 그들과도 3년을 채우고 작별을 해야 했다. 가장 큰 스승이었던 미술 선생님이 전근 가시던 날, 몰래 눈물 흘렸던 기억이 잊히지 않는다. 이어 찾아온 훌쩍 큰 키에 성숙한 모습으로 만난 고등학교 시절도 수많은 추억을 뒤로하고 헤어져야했다. 이때의 찬구들은 사회로 직행하여 취직한 직업인이 되기도 했고 대학에 입학하기도 하여 차츰 소식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이후 남자들은 군대라는 새로운 인생수업에서 낯선 청춘들과 3년여를 함께 해야 했다. 이 시절부터는 본인이 직접 인간관계를 경작해야 하는 전환기가 되는 것이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군대에서 국가관이 뚜렷해지고 제대를 하면 새로운 인생관으로 사회를 스스로 개척하며 살아야한다. 이성 친구를 만나 결혼을 하고 수많은 관계의 고리 속에 뭉클한 만남과 뼈아픈 헤어짐을 반복하며 살아가는 것이다.
올 한 해도 많은 사람을 만나고 또 헤어졌다. 슬프지만 예의를 갖춰 헤어지는 사람의 뒷모습은 아름답다. 설령 이 세상 마지막 인사가 될지라도 ‘기회가 되면 다시 만나요,’ 라는 위로의 인사는 서로의 감정을 애틋하게 하는 교양 이전의 상식일 것이다. 글과 그림에 잔가지를 치고 기우며 억압된 예술의 상혼을 구원하려 했던 한 해는 펼치지도 못한 채 내렸고 언택트 시대의 정신적 고립은 파열과 분열만이 가중된 한 해였다.
끝이 없는 시작 속에서 세계를 오르던 젊은 날처럼 자전거 라이딩을 하게 된 건 새로운 시작이다. 낯선 멤버들과 미사리일대의 자전거 길을 달리던 늦가을 길은 너무나도 아름다웠다. 주머니에 한 손을 찌르고 30리길을 자전거로 통학하던 학창 시절의 추억 너머, 새로운 사람들과 새로운 스포츠로 만난 앞날이 은은히 궁금하다. 20년 넘게 다닌 수영은 문을 닫아 그만두게 되었다. 함께 운동하던 사람들과도 뿔뿔이 헤어져 아쉬움이 크다.
만남과 헤어짐의 반복, 하느님과 하느님 말씀 이외에 영원한건 하나도 없음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교회엔 사과 데이가 있다. 담임 목사께서 만드신 참 아름다운 행사다. 유대인이 1월1일과 9일 히브리어로 샤나토바(Shana tova)라는 새해인사를 하는데서 착안한 것이라고 한다. 사과에 꿀을 찍어먹으며‘샤나토파, 샤나메투카(달콤한 한 해가 되세요)라며 덕담을 주고받는 의미라고 한다.
우리 교회에선 12월 25일부터31일, 1주일간 사과를 나누어주는데 이 사과는 한 해 동안 함께해온 이웃들에게 ‘그동안 저로 인해 받은 상처나 괴로운 일이 있었다면 다 잊어버리십시오, 사과합니다.’ 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포장 비닐에 새겨진 ‘사과는 과거를 풀고 용서는 미래를 연다.’ 라는 문구처럼, 올 한 해를 함께 했던 모든 분께 흰 눈 덮인 먼 옛날의 광야를 건너 버들개지 움트는 새봄 오듯 기도한다. 새해엔 더욱 건강하고 달콤한 한 해가 되소서.
이해균 해움미술관장, 수원민미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