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는 수원 권선동은 고려 말 한림학사 이고 형(테스 형을 패러디)이 굳건한 상징적 터주이시다. 그는 이집, 조견과 함께 고려의 삼학사였으나 고려가 망하자 벼슬을 내려놓고 수원에 내려와 후진과 백성에게 착하게 살라고 가르치며 교화하였다고 한다. 현재의 권선동 또한 그의 덕망을 기려 고종황제께서 권선이라 사명한데서 유래한다. 이고형의 집터는 현재 그가 심었다는 439살의 보호수 은행나무 한그루만 덩그러니 혼자 살고 있다. 이 나무는 내가 도보로 피트니스클럽에 가는 길목에 있는지라 불가피하게 하루도 그르지 않고 새벽 일찍 대면 참배하고 있다. 착하게 살아야함을 오래 오래 강조하고 싶어서일까. 힘들게 버텨온 이고형의 은행나무는 속에 공동(空洞) 현상이 발생하여 고사한 가지와 늘어뜨린 가지들을 모두 잘라내었다. 이로 인해 부패한 가지는 다시 외과수술을 한 탓에 외관상은 말린 문어다리를 거꾸로 세워놓은 듯 비틀어 졌지만 보약 먹은 노인처럼 기가 뻗쳐 보인다. 나는 이 거룩한 인고의 나무를 볼 때마다 언젠가 한번 그려 보고 싶어 늘 마음으로 스케치를 하곤 했다. 대형백화점이나 커다란 문화 공간은 없지만 우리 동네 권선동엔 도서관과 전시장을 거느린 경기평생교육학습관이 있다. 이곳이 친숙한 건 내가 대학원에 다닐 때 졸업 논문을 써야 했는데 교수님께서 주제에 맞는 열권의 책을 끝까지 다 읽고 나서 논문을 써야한다고 엄포를 놓으셨기 때문이다. 조금 불만스러웠지만 정년을 앞둔 교수님은 히스테릭한 노처녀인지라 동면을 앞둔 늦가을 독사처럼 표독하고 신경질적이어서 무섭기 짝이 없었다. 권유한 책은 대부분 철학서적으로 값도 비싸고 시중 서점에서 구하기도 어려웠는데 이 곳 도서관은 다행히 모두 구비되어있어 쉽게 대여해 볼 수 있었다. 특별한 서적은 지하 보존서고에 있었지만 대여는 안 되고 도서관에서 열람만 가능했다. 때문에 나는 이 도서관을 자주 들락거리며 독서실 한켠에서 칼 구스타프 융, 헤겔, 자크라캉, 비트겐슈타인, 질 들레즈, 프로이드, 하이데거, 파버비렌, 노자, 장자 등과 씨름하며 난해한 문장을 깨물어 뜯었다. 그때 도서관을 드나들며 입구에 있는 윤슬갤러리도 참새가 방앗간 방문하듯 자주 들여다보게 되었다. 갤러리나 미술관은 어떤류의 그림을 전시하느냐에 따른 저마다의 색채가 있다. 필자는 해움이라는 사립미술관을 운영하며 미술관의 색깔(정체성)을 만들기 위해 세심히 노력해 왔다. 어떤 사적인 인연들과 교섭하지 않음은 물론 개성 있고 독창적인 작가를 섭외했고 디스플레이와 조명도 중요시 했다. 좋은 그림이 느낌 좋은 분위기에 있을 때 비로소 작품은 빛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해움의 색채는 엄숙 했다. 그에 반해 갤러리 윤슬은 공공성과 대중성을 지닌 매우 친숙한 이웃집 같다. 학습관은 바깥마당도 넓고 따뜻하다. 근처엔 오래전에 조성된 공원과 소위 먹자골목이 자리하고 있어 먹거리, 볼거리, 쉼터 등 조화로운 균형감을 확보하고 있다. 하루빨리 코로나가 물러가고 모두가 즐겁게 독서하고 전시도 관람하는 풍경을 기대해 본다. 학창시절 책 향기를 장복했던 나의 후각엔 아직 달달한 문학의 향수가 재채기처럼 맺혀있다. 문득 이런 시가 떠오른다. -내 인생 단 한권의 책/속수무책/대체 무슨 대책을 세우며 사냐 묻는다면 /척하고 내밀어 펼쳐줄 책/ 썩어 허물어진 먹구름 삽화로 뒤덮여도/진흙 참호 속/묵주로 목을 맨 소년 병사의 기도문만 적혀있어도/단 한권의 책/속수무책을 나는 읽는다. -김경후, ‘속수무책’중에서

이해균 화가, 해움미술관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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