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당시를 배경으로 이념보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코믹하고 따뜻하게 그려 당시 한국 영화 최다관객상을 수상한 배종 감독의 영화 '웰컴 투 동막골'에서 나온 유명한 장면, 인민군 장교 리수화(정재영)가 우연히 깊은 산속 평화로운 동막골에 들어가 적응하면서 촌장에게 "고함 한 번 지르지 않고 부락민들을 휘어잡을 수 있는 위대한 영도력의 비결이 뭐요?"라고 묻자, 촌장이 한 말이 있다. "뭐를 많이 멕여야지, 뭐..." 구성원의 삶을 안정적이고 평화롭게 만들어 주게 힘쓰는 게 리더의 가장 중요한 덕목임을 일깨워 주는 명대사가 아닐 수 없다. 탈영병 국군과 리더십 없는 인민군 장교가 서로를 죽이고 싶은 마음에서 벗어나 상대의 입장을 생각해 보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주어 결국 함께 힘을 모아 촌부락 사람들을 구해내는 영화의 마지막 장면이 주는 울림도 여전하다.
2024년으로 돌아와 보자. 이번 22대 총선과 관련해 지인들에게 기억나는 키워드를 물어보면 ‘디올’과 ‘채상병’건도 있지만 ‘대파’가 압도적이다. 그만큼 민심은 민생과 직결된다. 백번 양보해서 민생을 챙기는 장면을 구상한 이벤트라 할지라도 대통령이 실시간 대파 가격에 대해 잘 모를 수도 있고 민심과 동떨어진 생각을 가질 수도 있다. 그러나 그 장면을 기획한 참모들이라면 이 장면이 얼마나 반대급부의 부작용을 자아낼 수 있는지, 그래서 실생활에 맞게 기획한다면 다른 어떤 장면을 구상해야 했는지, 어떤 포인트에 방점을 두어 이야기를 해야 하는지 직언할 수 있어야 했다. 아쉽게도 이벤트는 철저히 민심의 조롱 속에 실패했고, 민의 분노를 가라앉히기는커녕 "대파 한 단 가격이 아니고 한 뿌리 가격을 말한 거"라며 기름을 끼얹는 총선 후보까지도 나와 부정적인 여론은 더욱 강화되었다.
여기까지만 보자면 대통령 주변 사람들 잘못처럼 보인다. 그러나 누가 뽑았으며 누가 공천했는가? 주변인들의 무능은 결국 인사의 무능이며 인사의 무능은 다시 리더의 무능으로 귀결될 수밖에 없다. 민생을 피부로 느끼고 올바른 정책을 구현할 수 있는 사람. 주변에 직언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현실. 이 모든 일은 결국 리더의 결정에서 시작하는 걸 모르는 이가 누가 있겠는가?
시민들이 깨어날수록 리더는 특정인의 자손이나 우연한 선택이 아닌 올바른 역사의식과 시대정신 속에서 선택받는다. 시민들의 욕구를 제대로 이해하고 해결해 주려는 공공서비스(Public Service) 마인드를 가지고 노력하는 이가 리더가 되는 세상이다. 인종차별을 극복하려고 노력했던 흑인 마틴 루터 킹이 백인들에게도 지지받았던 것이나 기후 위기 운동으로 주목받은 그레타 툰베리가 젊은 세대의 열광을 이끌어 낸 것 모두 동시대 시민들의 선택이다. 이제 리더는 국가의 최고 엘리트 기관에서 배출되고 책임자로 나서는 그런 세상에서 벗어나고 있다. 청년들은 여러 경로로 리더 자리로 올라가는 중이고 다양한 경험을 가지고 올바른 힘을 어떻게 사용할까, 고민하며 성장하고 있다. 일부 기성세대가 불편해 외면하는 대의를 거리낌 없이 꺼내 해결하자고 말하고 있다. 지배하며 복종하기를 바라는 도미넌트(Dominant) 리더십에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해 봉사하려는 정신을 가진 서번트 (Servant) 리더십으로의 이행은 세상 이치에 따른 자연스러운 흐름이다.
총선이 끝난 지 9일 만에 윤석열 대통령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화 통화를 하며 여야 협치의 ‘물꼬’가 트였다. 만약에 만나게 된다면 대통령이 취임한 2022년 5월 10일 이후 거의 2년 만에 처음으로 영수 회담이 성사되는 셈이다. 취임 후 협치는 실종되고 상대편을 없애야 할 정적으로 여기며 거부권의 무한 반복 정국이 되풀이된 근본 이유 중 하나가 윤 대통령과 야당 대표 간 소통이 전혀 없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압도적이다. 영수 회담의 영은 거느릴 ‘영(領)’자이고 수는 소매 ‘수(袖)’다. 소매는 남의 눈에 잘 띈다는 데서 비롯된 표현이다. 직책이 올라갈수록 주목받고 남의 눈에 더 잘 띄는 건 조직구조의 당연한 이치이다. 높은 자리에 있는 만큼 개인의 이해관계나 욕망보다는 많은 이들의 눈을 의식하고 공공의 선에 봉사한다는 자세가 아름다운 마무리가 될 것이 자명함을 수많은 역사가 증명하고 있다. 다수 국민의 선택을 받은 상대방을 정적으로 여겨 퇴치하겠다는 자세가 종식되고 협치의 시작이 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라보며, 오늘은 백악관 50년 경력 베테랑이 완성한 하버드 케네디스쿨 리더십 바이블로 최근 소개된 데이비드 거건 지음 ‘하버드 리더십 수업’을 마무리해야겠다.
김형태 성균관대학교 산학협력단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