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정기적으로 두 달에 한 번씩 병원에 간다. 10년 전 초대받지 않은 손님처럼 찾아온 큰병을 대수술을 하여 관리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매번 채혈을 해서 그 검사 결과에 따라 약을 처방 받고 주사를 맞는다. 두 달에 한 번은 주사를 꼭 맞아야 하고, 약도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어야 한다. 나의 큰 수술을 담당했던 주치의 선생님을 지금까지 믿고 의지하면서 진료를 받으며 살아가고 있다. 두 달에 한 번 병원에 가서 의사선생님의 짧은 진료를 받고 온다. 얼굴 한 번 보고 "좋아지셨습니다" "잘 하고 계시네요" 그 말 한마디에 마음이 편해져 돌아온다.
생각보다 많은 환자들이 나처럼 이렇게 병원과 의사의 말에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다. 병의 경중과 상관없이 각자의 소중한 몸을 돌보기 위해 전문의들을 찾아 그들의 말을 듣고, 그 말에 의지해 살아갈 힘을 낸다. 우리 사회의 의료 인력은 단순히 병을 고치고 말고의 기술적인 문제가 아니다. 발전한 의학기술과 진보된 지식을 기반으로 알 수 없는 불안감을 달래고 궁극적으로 삶의 희망을 안겨주는 역할을 한다.
이런 와중에 정부의 의대생 증원을 반대하는 의사들이 무기한 휴진과 파업에 들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연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들이 무기한 휴진에 돌입한다는 것이다. 다행히 병원 현장에선 전면 휴진으로까진 이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하지만 여전히 ‘무기한 휴진’이라는 불씨가 살아있다. 5대 대형병원 중 서울대의대 교수들은 휴진을 철회했고, 성균관대의대와 가톨릭대의대 교수들은 무기한 휴진을 예고했다가 유예한 바 있다. 울산대의대 교수 비대위는 7월4일부터 휴진에 돌입하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참으로 생각하기도 싫은 안타깝고 슬픈 소식이다.
대형병원에 갈 때마다 제시간에 진료나 주사를 맞은 적이 별로 없다. 미리 예약하고 가도 30분이고 1시간 이상을 기다리기도 한다. 대학병원에 진료 한 번 받으려면 짧게는 한두 달에서 길게는 칠팔 개월 전 예약은 필수고, 입원하려 해도 늘 병실이 부족하기 일쑤다.
이런 일은 결국 수요보다 공급이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병원을 찾는 사람은 많은데 전문의는 부족한 것이 하나의 원인일 것이다. 수요-공급의 불균형은 부족한 어느 한쪽을 채우면 자연스럽게 해결된다.
물론 단순히 숫자 계산으로만 이뤄질 수 없는 일이란 건 알고 있다. 결국은 모든 것이 ‘운영의 묘’다. 의료인력 풀 안에서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의사는 주로 큰 병이나 중증 환자를 다스리는 쪽으로, 경험이 부족한 의사는 작은 병원부터 시작해 의술을 쌓아가게 하면 될 것이다. 무엇이든 기능적으로 부족한 부분이 있다면 마땅한 제도를 만들어 보완해 나가면 된다. 잊지 말아야 할 기본적인 원칙은 우리 사회가 필요로 하는 의료인력의 수는 많은데 실제 현장에 있는 의료인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는 현실이다.
환자인 필자 눈에는 의대생 증원을 둘러싼 지금의 정부와 의사들의 갈등과 싸움은 그저 밥그릇 싸움으로만 보인다. 평행선을 달리며 누가 힘이 더 센지 힘겨루기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의사들의 주장을 이해하지 못해서가 아니다. 나와 같은 환자의 입장에선 병원을 찾고, 진료를 받고, 검사를 하는 것이 생과 사, 하루하루의 일상이 달린 절대적인 문제이기 때문이다.
며칠 후면 두 달 만에 외래진료를 가는 날이다. 이런 흉흉한 시국에, 내가 아프고 싶어 아픈 것도 아닌데 병원을 찾아야 하는 내 자신을 자책하였다. 몸 아픈 게 꼭 죄인이 된 느낌이다. 의술은 인술(仁術)이라고 했다. 이것은 사람을 살리는 어진 기술이라는 존경의 의미를 담은 말이라고 한다. 의사(醫師)의 한자도 스승 ‘사’를 쓴다. 박사·율사가 선비 사(士)자를 쓰는 것과는 다르다. 부디 의사들이 단순히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는 틀에서 벗어나 인술을 베푸는 우리 사회의 큰 스승의 자리로 돌아오길 바란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