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선을 간다.’
초등학교시절 즐겨 부르던 국군가사의 "전우"의 한 소절이다 놀이 문화가 별로 없었던 우리는 산과 들로 뛰어 다니며 목총을 만들어 전쟁놀이를 하며 장래 군인의 꿈을 키우곤 했다.
나는 소대장 경섭, 병설은 특공대원 서로가 최고의 전사인 냥 T.V 속 군인들을 흉내 내기도 했다.
그런데 아버지가 계시지 않는 딸 경미는 간호장교였다. 얼굴도 예뻤고 마음씨도 착해 지금 생각해도 딱 맞는 직업이었다.
우리는 그때까지만 해도 경미 어머니가 왜 혼자 사는지 몰랐다. 그 뒤 나는 해병대에 직업 군인으로 자원 입대하여 육해공을 누비며 군 생활을 하던 중 뜻하지 않는 사고로 3년 만에 전역을 하게 되었다.
전역 후 상이 군경회에 입사하여 근무하게 되었다. 근무하면서 알게 된 월남전쟁 무용담. 사연들을 듣다가 불현듯 어릴 적 경미가 생각났다.
혹시 수천 명의 전사자 가운데 경미 아빠도 그 중에 한 분일지 모른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상이군경회 선배님 미망인회 알아본 결과 월남전에서 전사 하셨다고 한다.
그제서야 슬픈 과거가 있는데도 불구하고 항상 밝은 모습의 경미 얼굴이 떠올랐다. 주소와 전화번호를 알아낸 후 만남을 약속했다.
몇십 년 만의 해후라 가슴이 두근거리고 설레었다.
약속된 장소에서 그동안 서로를 찾지 않았던 세월을 원망했고 왜 무관심했는지에 아쉬워 했다.
그리고 알게 된 사실, 어릴 적 놀이에서 간호장교였던 그녀가 간호장교로 전역했다는 사실에 놀라웠다. 궁금해서 물어보니 경미는 전쟁터에서 경미 아빠가 전사한 것을 애통하게 생각되어 한 분의 군인이라고 살리고 보살펴야겠다는 마음에 어려서부터 꿈꿔왔던 군인의 길을 무사히 마쳤다고 했다.
모처럼 해후한 우라는 어릴 적 이야기부터 결혼. 자식 얘기로 시간가는 줄 몰랐다. 헤어져 돌아온 길, 문득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매형 아들과 술 한잔 마실 때 눈물을 흘리며 내뱉던 조카의 말이 가슴속을 울린다.
"술주정 아빠여도 곁에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말에 가슴이 먹먹해졌다. 잠시, 6월 하늘을 바라보았다.
경미도 얼마나…….
푸르름이 더해가는 보훈의 달, 전쟁의 상처는 날려보내고 아픔을 삭이고 있는 보훈 가족의 하늘에 행복 가득한 창공이 펼쳐지길 바랄 뿐이다.
안병효 수필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