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복지가 사회적 이슈이자 문화로 자리 잡고 있다. 경찰이 접수한 동물보호법 위반 사건은 2010년 69건에 불과했지만 2022년에는 1천237건으로 급격하게 늘어나는 등 동물복지에 대한 인식 변화가 사회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지난달 17일 대법원 양형위원회는 현행 동물보호법의 동물 학대 금지와 관련한 ‘3년 이하 징역 또는 3천만 원 이하 벌금’ 규정을 ▶동물을 죽이거나 죽음에 이르게 하는 행위 ▶동물에게 고통을 주거나 상해를 입히는 행위 두 가지로 구분해 양형 기준을 신설한다고 밝히며 더욱 촘촘한 동물복지 제도를 구축하고 있다.
국내 반려동물 양육 인구 또한 1천300만 명을 넘어섰다. 국민의 약 25%가 반려동물을 가족의 구성원으로 받아들이며 펫 문화와 산업 그리고 동물복지 인식 또한 급격하게 성장 중이다.
과거에는 애견인들과 동물보호단체를 중심으로 동물복지 활동이 이뤄졌지만, 이제는 정부와 지자체, 기업들까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고 있다.
이러한 사회적 기대와 변화에 발맞추기 위해 한국마사회(이하 마사회)는 말을 비롯한 ‘동물복지’를 새로운 미래 100년의 핵심 과제로 선정했다.
◇경주마 복지 확대를 위한 민관 협력 및 논의 구체화
한국마사회는 경마 시행체이자 농식품부와 함께 말의 생산과 유통, 활용 등 말과 관련된 산업의 성장을 추진하는 국내 유일의 말산업 전담 기관으로 각종 반려동물에 대한 복지를 전 사회적으로 확대해 나가고 있다.
지난 2월 23일 과천 서울경마공원에서 열린 ‘말 복지 증진 추진 협의체(이하 협의체)’ 첫 회의에서는 말 복지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민관 협의가 마침내 본격화됐다.
정부와 마사회, 동물보호단체·학계·법조계·승마시설 업체·지자체로 구성된 협의체는 그간 말 복지와 관련, 증가한 사회적 요구에 비해 대응이 미흡했다고 자평하면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대책을 마련할 것을 다짐했다.
이 자리에서는 ▶말 생애주기 복지강화 ▶말 복지 사각지대 예방지원 ▶말복지 인식개선 등 ‘2024년 말복지 3대 운영방향’과 함께 운영 방안별 핵심 사업이 발표됐다.
각 운영 방안을 살펴보면 말 생애주기 복지강화 부문에서는 망아지 각인순치 지원, 경주마 재활 지원 확대, 퇴역경주마 승용전환 및 승마대회 신설 사업이 추진된다. 말 복지 사각지대 예방지원 부문에서는 말 복지 교육 및 홍보, 말 복지 컨설팅, 모니터링을 통해 말 복지 사각지대를 발굴하고 개선 방안을 마련할 계획이다. 말 복지 인식 개선 부문에서는 말 복지 전문인력양성, 말 복지 연구개발, 말 복지 국제협력 사업 등을 통해 말 복지 수준 향상을 도모할 방침이다.
◇퇴역 경주마, 승용마로 재훈련 통해 제2의 삶 제공
마사회가 가장 먼저 주목한 분야는 퇴역 경주마의 복지 증진이다. 경주로를 질주하며 연간 약 1천만 명의 관람객에게 짜릿함을 선사했던 경주마가 은퇴 후 승용마로서 제2의 마생(馬生)을 누릴 수 있도록, 한국마사회는 퇴역 경주마의 승용 전환 사업을 추진 중이다.
퇴역 경주마는 순치 교육을 통해 질주 본능을 억제하는 방법을 배우고, 안전하게 기승자와 호흡을 맞추는 승용마로 거듭난다. 안전한 승용마로 변신에 성공한 경주마들은 더 이상 경주로가 아닌 승마장에서 사람들과 호흡하며 여생을 보내게 된다.
전문 승용마로 새롭게 재능을 발견한 퇴역경주마들이 활약할 무대도 마련됐다.
마사회는 퇴역경주마들의 성공적인 승용조련을 응원하고, 그 성과를 확인하기 위해 지난달 구미시 승마장에서 제1회 퇴역 경주마 승마대회를 개최했다. 대회에 출전한 퇴역 경주마 ‘감곡선샤인’은 경주마 시절 19전 1승의 아쉬운 능력을 보였던 말이었지만 승마대회에서는 완전히 다른 모습을 선보였다.
‘감곡선샤인’은 마장마술 종목들에 출전해 2관왕을 차지하며 달라진 역량을 과시했다. 또 다른 퇴역마 ‘디케이미르’ 역시 경주마 시절 한 번도 순위권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지만, 이번 대회 마장마술 D클래스에서는 2등을 달성해내며 감동을 전했다.
◇명예 경주마 휴양 목장, 수술 및 재활치료에 각인순치 등 말 생애 전반 ‘복지’ 제공
경주마 시절 많은 이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던 명마들을 위한, 보다 특별한 복지 사업도 운영 중이다.
경기도 안성에 있는 안성팜랜드는 경주로를 떠난 명마들이 여유로운 노후를 보내는 ‘명예경주마 휴양목장’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는 깨지지 않는 2천m 기록의 주인공 ‘청담도끼’, 불굴의 아이콘이자 동물명의 기부문화를 이끌었던 ‘백광’, 대통령배 최초 3연패에 빛나는 ‘당대불패’를 만나볼 수 있다.
안성팜랜드에 이어 지난 5월, 제주에 있는 이시돌목장에도 명예 경주마 휴양 목장이 추가로 조성되며 앞으로 더 많은 명마가 팬들 곁에서 여생을 누릴 수 있게 됐다. 이 밖에도 마사회는 부상으로 은퇴의 갈림길에 선 경주마에게 수술과 재활치료를 지원하며 재기를 돕는 ‘재활지원 프로그램’, 망아지를 대상으로 사람과 조화로운 관계 형성을 돕는 ‘각인순치사업’ 등 말 복지 증진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들을 위한 재원 마련은 경마시행체인 마사회와 경마의 주축에 있는 서울과 부경 마주협회가 공동으로 조성하는 ‘더러브렛 복지기금’을 통해 이뤄진다. 양 기관은 매년 각 10억 원씩, 5년간 총 100억 원의 기금을 조성해 다양한 복지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마사회는 또한 사람과 말의 행복한 동행을 위해 말을 중심으로 다양한 동물복지 사업도 추진 중이다.
동물복지 인식이 국내에 보편화되기 이전인 2014년, 마사회 수의사들은 일찍이 자체적으로 말보건복지위원회를 구성해 ‘말 복지 6대 기본원칙’을 제정하며 말 복지 사업을 위한 초석을 다졌다.
2019년에는 실제 현장에서 말 복지가 실현될 수 있도록 구체적인 ‘말 복지 가이드라인’을 발표하고 홍보에 나섰다. 2022년 4월에는 전담 조직인 ‘말복지센터’를 신설하며 말 복지 비전과 전략과제, 중장기 로드맵을 수립하는 등 말의 탄생부터 마지막 순간까지 빈틈없는 복지를 위한 전략을 하나씩 실현해 나가고 있다.
◇말 복지 넘어 반려동물까지...보편적 ‘동물복지’ 관심
지난달 경기도 직영 동물보호센터인 반려마루는 경기도와 대한적십자사, 한국마사회 세 기관이 모여 동물복지 증진을 위한 업무협약식을 체결했다. 업무협약을 바탕으로 세 기관은 경기도 내 유기 동물 입양 및 취약계층의 반려동물 양육 지원을 위해 힘을 모으기로 했다.
이들 기관은 유기 동물 입양 가족에게 이동 가방, 배변패드 등 입양 초기에 필요한 물품으로 구성된 꾸러미 550세트를 선물한다. 반려동물을 키우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는 돌봄 취약 가구에는 샴푸, 연고, 크림 등 반려동물의 건강을 챙길 수 있는 물품으로 구성된 꾸러미 400세트를 전달할 예정이다.
정기환 한국마사회 회장은 "말의 생애주기에 따른 복지 사업을 더욱 촘촘하게 기획해 사각지대 없는 말 복지를 실현하고, 말과 사람이 조화롭게 어울릴 수 있는 환경과 문화를 만들어 가겠다"고 말했다.
정현·하재홍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