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나이퍼(sniper, 저격수).
좀 으스스하게는 ‘보이지 않는 공포’라 불리고, 좀 낭만적으로는 ‘기다림의 미학을 아는 자’라 불린다. 그만큼 저격(snipe)의 의미는 양면적 이다.
투사(投射) 무기는 발명 이후부터 끊임없이 진화했다.
돌, 화살, 탄환을 보다 더 빠르게, 보다 더 멀리, 보다 더 정확히 날려 보내려 했다. 더불어 저격의 정교함도 진화했다. 이러한 진화가 전장의 전세를 좌우했기 때문이다.
중국 고대 격언에는 ‘한 명을 죽이면 천명이 공포에 떤다.’라는 말이 있다.
또한, 프랑스 계몽주의 작가 볼테르는 '신은 병력이 많은 군대의 편을 들지 않는다. 사격 솜씨가 좋은 군대의 편을 들어 준다.’ 말했다.
실제로 일반 전투원들이 적 한 명을 사살하는 데 1차 세계대전 때 7천 발, 2차 세계대전 때는 2만5천 발, 베트남전쟁에서는 5만 발의 총알이 소요됐다. 하지만 베트남전에서 저격수가 적 한 명을 저격하는 데 사용한 총알은 1.7발에 불과했다.
‘보이지 않는 유령’이라는 별명을 가진 ‘원샷원킬(one shot one kill)’의 저격수는 한 발의 총알로 적을 무력화하고, 적에게 공포를 안겨주며, 적진을 혼란스럽게 할 수 있다.
저격수는 효율적이다. 단순히 적의 병력 숫자를 줄이는 게 목적이 아니다.
저격수가 쏘는 한 발의 총탄은 한 명의 적을 무력화하는 수준을 넘어 질적으로 그 몇 배의 전술적 효과를 거둘 수 있다.
저격수는 고도의 심리전도 수행한다. 은폐·엄폐의 위치에서 은밀하게 날아오는 필살의 총탄은 적에게 위협과 공포를 심어주고 행동을 제약하는 등 심리적으로 대단한 압박을 줄 수밖에 없다.
저격수는 과학기술의 산물이다. 현재 저격수가 사용하는 총기는 정확성과 살상력, 내구력이 뛰어난 망원조준경 및 레이저 거리 측정기 등 다양한 첨단 군사과학 기술이 접목된다.
그래서 저격수는 많은 소설, 영화, 게임 등으로 다뤄질 만큼 일반 대중들에게 흥미롭다.
우리나라 영화 ‘암살’의 전지현, 드라마 ‘미스터선샤인’의 김태리가 주목받고, 미국 영화 ‘스나이퍼’ 시리즈 등 많은 저격수 등장 영화가 흥행을 이어가는 것은 저격수가 매력적이기 때문이다.
사전적으로 저격수는 "일반 보병보다 표적에서 훨씬 멀리 떨어진 곳에서 저격 소총 등 총기로 적을 정밀 조준해 무력화하도록 훈련을 받은 전문화한 요원"을 일컫는다.
그러나 진정한 저격수에게 요구되는 기술은 다양하며 훈련의 강도는 높다.
위장술, 이동, 관측, 독도법, 통신, 정보수집, 정밀 사격은 필수이며 외부지원 없이도 살아남기 위한 상호 연계된 다양한 기술을 배워야 한다.
아무나 저격수가 되지는 못한다. 미국의 경우 통상 교육과정에서 지원자의 약 1/3이 탈락한다고 한다.
"내가 방아쇠를 당겨야 했을까? 단지 적이라는 이유로 한 인간의 생명을 빼앗아야 했을까? 이것은 내가 내 마음속에 평생 지닐 수밖에 없는 광경이다."
일반적으로 저격수는 이러한 내적 갈등에 직면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신들로 인해 아군 병사들이 묘지에 묻힌 것이 아니라 무사히 생존했다는 안도감으로 임무에 대한 소명의식과 양심을 조화시키며 극복한다.
이번 글제를 떠올린 것은 트럼프 전 미 대통령 피격 당시 미 비밀경호국(SS)의 스나이퍼가 단 한 발로 총격범 토머스 매슈 크룩스를 사살했으며, 이 스나이퍼는 장거리 명중률이 높아 비밀경호국에서는 전설로 여겨지는 인물이라고 소개한 보도 때문이다.
오래전 미 비밀경호국(U.S. Secret Service)과 몇 차례 업무협의를 했던 기억이 떠올랐기도 했지만, ‘00가 XX를 저격했다.’며 싸질러 놓고, 짓까부는 우리 정치 · 사회 분야에서 벌어지는 난사(亂射) 현상이 짜증 났기 때문이기도 하다.
정치권에서 벌어지는 막말, 무식, 무책임, 무소명(無召命) 등은 이제 그러려니 하지만, 언론의 정파적 편 가르기 그리고 각종 SNS 등에서 난무하는 익명의 난자(亂刺)에 질려버렸다.
정확성도 정교함도 그렇다고 품위도 없이 아무거나 맞으면 된다는 식의 산탄(散彈) 발사나 자동기관총의 무차별 사격은 정작 탄착점을 잃고 애꿎은 사람들의 평상을 훼손시키고 있다.
사실과 진실 그리고 책임과 양심에 따른 만인을 위한 ‘원샷원킬(one shot one kill)’은 난망인가?
정상환 한경국립대 객원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