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돈 가져간 삼촌을 처벌해 주세요. 함께 살고 있는 삼촌이 마음대로 내 돈을 가져갔어요. 너무 억울해서 삼촌을 수사기관에 고소해서 법대로 처벌해 달라고 요구했는데 삼촌을 처벌할 수 없다고 하니 세상에 이런 법이 어디 있어요?"
민원인은 1993년부터 20여 년간 돼지농장에서 일해왔다. 그러던 중 아버지가 사망하자 돼지농장을 떠나 삼촌과 동거하기 시작했다. 삼촌은 4년 동안 동거하면서 조카의 퇴직금, 상속재산 등 약 2억3천600만 원을 가져갔다. 지적장애까지 있는 민원인은 삼촌을 상대로 준사기, 횡령 혐의로 형사고소를 하였지만, 검찰은 민원인이 동거하지 않았던 기간에 가져간 1천400여만 원에 대해서만 피해를 인정했다. 나머지 금액에 대해서는 친족상도례상 ‘동거친족’으로 인정돼 공소를 제기할 수 없다고 결정했다. 이것은 형법 제328조 제1항에 직계혈족, 배우자, 동거친족, 동거가족 또는 그 배우자 사이의 재산범죄에 대해 형을 면제한다고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민원인은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을 제기하였다.
그 후 급기야 지난 6월 27일에 헌법재판소는 형법 제328조 제1항에 대하여 헌법재판관 전원일치 의견으로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려 민원인의 손을 들어 주었다. 즉, 헌법재판소는 ‘2025년 12월 31일 시한으로 국회가 개정할 때까지 이 조항 적용을 중지해야 한다’고 함으로써 위 결정일 곧바로 친족상도례 적용을 중단시켰다. 따라서 2025년 말까지 국회가 헌재결정 취지에 따라 개정 입법을 하지 않으면 2026년 1월 1일부터 위 조항은 폐지되는 것이다. 위 결정의 주요 이유 요지는 다음과 같다.
‘친족상도례 조항이 형면제 판결을 획일적으로 규정해 대부분 사안에서 기소가 이루어지지 않고 형사 피해자는 재판절차에 참여할 기회를 상실하고 있다. 이는 입법재량을 명백히 일탈해 현저히 불합리하거나 불공정한 것으로서 형사 피해자의 재판절차 진술권을 침해한다. 특히 가족과 친족사회 내에서 장애인·미성년자 등 취약한 지위에 있는 구성원에 대한 경제적 착취를 용인하는 결과를 초래할 염려가 있다.’
친족상도례는 연혁적으로 볼 때 ‘법은 가정의 문턱을 넘지 않는다’는 로마법 전통에서 유래되었다. 그 후 근대적 형법전에 친족상도례가 처음 도입된 것은 프랑스이고 이후 독일 등에서 도입했으며 일본을 거쳐 우리나라에는 위 형법조항이 1955년 형법 제정과 함께 도입되었다.
하지만 그동안 친족상도례가 적용되는 인적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것이 문제로 지적됐다. 즉 직계혈족이나 배우자는 실질적 유대나 동거 여부와 관계없이 적용되고, 8촌 이내의 혈족이나 4촌 이내 인척은 동거를 요건으로 적용되어 일률적으로 형을 면제할 경우 피해자의 권리를 일방적으로 희생시키는 것이 되었다. 또 그 적용대상 범위에 있어서도 강도죄와 손괴죄를 제외한 모든 재산범죄에 친족상도례가 적용되어 법의 적용 범위가 지나치게 넓은 것도 문제로 지적되었다.
더군다나 최근에 이르러 1인 가구가 늘어나고 부부 사이에도 돈 관리를 따로 하는 등 가족 양상이 바뀌고 국민 인식이 변화되어 친족상도례 폐지 문제가 수면 위로 부각되기에 이르렀다. 특히 근래에 어느 방송인의 친형이 62억 원을 횡령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위 조항은 세간의 관심을 끌었다. 그 방송인의 부친이 검찰 조사에서 실제로는 그 자금을 자신이 관리했고 횡령 주체도 아버지라는 취지로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대하여 직계혈족간 횡령은 처벌할 수 없도록 한 친족상도례 조항을 악용한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되었던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국회에서는 종전에 몇 차례에 걸쳐 위 형법조항에 대한 개정 시도가 있었으나 입법에 성공하지 못하였고, 2012년 헌법재판소는 같은 친족상도례 조항의 위헌여부에 대한 심리 후 5대 4로 합헌 결정을 내린 바 있었다. 그러다가 드디어 이번에 위와 같은 헌법불합치 결정에 이른 것이다.
한편 현재 친족상도례에 대한 해외의 입법례를 보면, 스위스는 친족간이라도 고소가 있으면 경제범죄에 대해 처벌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일본은 적용대상 법조가 절도 등으로 제한되며, 프랑스는 직계존비속과 동거 중인 배우자에 대해서만 형을 면제해 준다고 한다.
생각건대 종래의 친족상도례에 대한 이번 헌법재판소의 헌법불합치 결정은 현시대의 사회관념을 적절하게 반영한 것이라고 할 것이므로 만시지탄이지만 환영할 만하다. 아무쪼록 이번 결정이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고 구체적 정의실현을 강화할 수 있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한다.
위철환 전 대한변호사협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