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은 밥심’이라는 말로 대표되던 우리 국민의 ‘쌀 사랑’이 점차 식어가고 있다.
통계청의 2023년 양곡소비량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6.4kg이며, 지난해(56.7kg)보다 0.3kg 감소했다. 이를 하루 평균으로 나누면 154g으로 1인당 하루에 밥 한 공기(약 200g)의 쌀도 먹지 않는 셈이다.
그러나 여전히 쌀은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작물이자 식량 중 하나이며, 그만큼 많은 농가에서는 우리 국민들이 마음을 되돌릴 맛 좋은 쌀을 만들어 내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김포시에서 20여 년째 친환경 농법으로 쌀 농사를 이어가고 있는 이경재(65) 한국쌀전업농경기도연합회장도 그중 한 명이다.
중부일보는 이 회장을 만나 공무원이었던 그가 농업인이 되기까지의 이야기와 농업인으로서의 철학 및 그만의 농사 비결에 대해 들어봤다.
◇공무원에서 농업인으로, 친환경 농업 반해 쌀 농사 시작=쌀 농사를 시작하기 전 이 회장은 중앙전파관리소에서 근무하는 공무원이었다. 12년간 공직 생활을 하던 그는 1998년 당시 친환경 농업이 미래 농업으로 주목받는다는 소식을 듣고 농업에 흥미를 느끼게 됐다. 그의 나이 39살이던 해였다.
그에게 농사는 낯선 영역이 아니었다. 어렸을 때부터 농업에 종사했던 부모님 덕분에 공직 생활을 마치고 곧바로 농부라는 새로운 일에 뛰어들 수 있었다.
이 회장은 "당시 김포에서 친환경 단지를 만든다는 얘기를 듣고 동네 주민 7명이 모여 친환경 농사를 시작했다"며 "일반 농사법으로 짓는 쌀은 물론 수입쌀과 비교했을 때 맛과 품질, 판매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있을 거라 판단해 도전했다"고 과거를 회상했다.
약 5만2천㎡ 규모로 시작한 그의 논은 재배 면적이 꾸준히 늘어 올해 약 13만㎡ 규모에 달한다.
◇나와 가족이 먹는 생각으로, 욕심 없이 정진하는 일이 농사의 비결=이 회장의 거주지이기도 한 김포는 한강과 서해를 낀 반도성 기후로 가을철 낮과 밤의 일교차가 크고, 벼가 익는 시기에 온도가 적당해 쌀알의 질이 좋다는 특징이 있다. 이곳에서 이 회장은 유기질 비료를 비롯한 친환경 자재를 사용하고, 제초제와 농약 대신 우렁이를 사용하는 친환경 농법을 고집하고 있다.
하지만 친환경 농법은 일반 농법보다 사용하는 자재 비용이 많이 들고 효율이 낮다는 단점이 있다.
이 회장은 "일반 비료는 한 포대(20kg)에 약 660㎡까지 사용할 수 있지만, 유기질 비료는 약 250㎡ 규모로밖에 사용할 수 없다"며 "가격도 1.5배 정도 비싸 쓰면 쓸수록 비용 지출이 커진다"고 설명했다.
게다가 주기적인 물관리와 시기별 병해충 방지 등 논 상태를 자주 확인해야 할 정도로 세심한 관리가 필요해 친환경 농사를 시작하고 1년 만에 그만두는 이웃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회장은 ‘나와 가족이 먹는 음식’이기 때문에 힘들고 비용이 많이 들어도 친환경 농법을 고집한다.
그는 "먹거리만큼은 안전해야 한다"며 "나와 우리 가족이 먹는다는 생각이 없었다면 애초에 친환경 농사 자체를 시도조차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농사 5년차 때 주변에서 ‘농약 주고 비료 뿌리면서 편하게 해도 되는데 굳이 일을 힘들게 하냐’는 소리도 들었지만, 그럴수록 나 자신만큼은 건강한 쌀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덧붙였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이 회장의 논은 주변에서도 친환경 농법의 대표 논으로 알려질 정도로 유명세를 타고 있다. 특히 지역 학교 급식에 납품되는 등 친환경성과 품질 면에서 우수성을 인정받기도 했다. 이 회장은 그런 자신의 친환경 고집이 곧 자신의 자부심이라고 했다.
이런 노력이 더해지며, 이 회장은 국립농산물품질관리원에서 유기농 인증은 물론, 경기도 우수식품(G마크) 인증을 받으며 품질도 인정받았다. 지난해에는 ‘경기도 참드림 경기미 품평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았다.
수십 년간 쌀을 재배해 온 전문가로서 농사를 대하는 철학을 묻자 그는 ‘농사에는 장사가 없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욕심부리지 않고 거름 살포와 알 솎아내기 등 모든 과정에서 내가 계획한 양만큼 진행하고 수확하는 일이 품질과 직결된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해 농사를 망치면 그 농사는 뒤로 3년 퇴보한다"며 "욕심내지 않고 기초부터 차근차근 단계를 밟는 등 정직하게 기본을 지키는 일이 쌀 농사에서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쌀에 대한 인식 바뀌는 현실 아쉬워, 쌀에서 으뜸가는 사람이 목표=그는 쌀의 인식이 예전과 달라진 모습을 아쉬워했다. 특히 탄수화물로 인해 살이 찐다는 오해와 식습관 변화로 밀과 같은 대체품 소비가 늘어난 점을 꼽았다.
그는 "지난해 기준 3대 육류(닭, 돼지, 소) 소비량 추정치가 60.6kg으로, 쌀보다 4.2kg이나 많아진 시대"라며 "쌀이 건강에 해롭다는 오해가 있는데, 오히려 과학적으로 많은 영양학적 가치가 있을뿐더러 혈당을 급격히 높이지 않는 등 다른 탄수화물보다 건강한 작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맛 좋은 쌀을 만든다는 자부심으로 일하는 만큼, 사람들이 쌀에 대해 언제든 건강하게 먹을 수 있는 주식’이란 인식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부연했다.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이 회장은 논의 규모를 넓혀 더 많은 쌀을 생산하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그는 "쌀 농사를 짓는 일이 천직"이라며 "힘닿을 수 있을 만큼 재배 규모를 넓혀 더 많이 일하고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이 회장은 "30년 가까이 쌀 농사에 전념한 탓인지 이제는 몸이 힘든 것보다 일하면서 얻는 기쁨이 크다"며 "지금도 재밌게 일하고 있는 만큼, 쌀로는 으뜸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열심히 살아갈 계획"이라는 각오를 전했다.
이성관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