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의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세상 사람들에게는 없는, 우리들만의 병인, 화병이라는 게 있었다. 주위의 영향으로부터 받은 엉어리져 풀지 못한 마음의 상처가 쌓여 생긴 것이다. 우리들 부모 세대에는 무조건 참고 인내하는게 미덕인 시대였다. 지금은 아니다. 작은 불편이나 사소한 것에도 분노를 표출하고 사는 시대이다. 그러니 당연히 화병이 생길 일이 없고, 화병이 있을 수 없다.

그러면 우리들의 삶의 질이 예전에 비해 좋아졌는가. 행복의 수치가 예전에 비해 많이 올랐는가. 모르긴 해도 절대로 아니다. 삶의 질이 더 떨어졌지, 조금이라도 나아진 게 없다. 예의범절을 눈곱만큼이라도 찾아보려야 찾을 수 없는 세상이 돼 버렸다. 도덕과 윤리가 땅에 떨어져 뒹굴어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는 시대이다.

이런 현상은 교육부재에서 비롯된 것이다. 가정이나 학교에서 윤리와 도덕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직 공부만 잘 해서 돈만 잘 벌면 된다는 것만 가르친 결과이다. 혼자 잘나서 혼자 일 등을 하는 것보단 같이 화합해서 다함께 더불어 사는 법을 가르쳐야 한다. 겸손과 양보의 미덕을 깨달아 실천할 수 있게 부모들이 일깨워 줘야 한다. 그래야 품위있는 선진 국민으로 살아갈 수 있고 행복한 삶을 영위할 수 있다.

남들이 보기엔 나 같은 사람은 아무런 근심 걱정이 없을 것 같다고 얘기한다. 출가해서 혼자 산속에서 살아가는데 무슨 걱정이 있을 거냐고 물어 온다. 부처님 말씀에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사바세계가 고통의 세계라고 하셨다. 가만히 되씹어 보면 살아간다는 자체가 고행인 것이다. 그래서 나도 근심 걱정이 있고 불만이 있고, 때로는 화가 막 불쑥 올라 오기도 한다. 화가 막 나고 성질이 막 나면 그러면 스님은 어떻게 하나요? 하고 묻는다. 묻는 사람이나 경우에 따라 나의 대답은 달라지겠지만 대체로 화를 안 내고 안으로 삼키는 것이다. 화를 화로 표출하지 않는다. 그냥 화를 안 내면 되지하고 답한다.

누군가를 괴롭히고 힘들게 하는 사람은 분명 못난 사람일 것이다. 잘난 사람은 절대적으로 누군가를 힘들게 하지 않는다. 오히려 실수하고 잘못하는 사람을 타이르거나 좋은 말로 위로하고 용기를 북돋아 줄 것이다.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과 다투거나 싸우기라도 한다면 나도 그와 똑같은 못난 사람이 될까 봐 웬만하면 참고 피하고 만다. 운전할 때도 마찬가지다. 웬만하면 내가 양보해서 방어운전을 한다. 옆에 탄 사람이 클랙슨이라도 누르던지 잘못을 지적하라고 하지만 난 그냥 지나가는 편이다. 이렇게 살아도 살아 가는데 아무런 불평불만이나 어려움이 없다.

나는 예전부터 나쁜 소리는 귀로만 듣고 좋은 소리는 가슴으로 듣는다. 나도 화가 나 누군가에 욕을 할 때도 입으로만 한다. 그리고 누군가에게서 나쁜 소리를 들을 때도 가슴이 아닌 귀로만 들으려고 노력하고 듣는다.

갓 출가한 햇중때 은사 스님께 꾸지람도 많이 듣고 욕도 많이도 들었다. 단체로 듣기고 했고 가끔은 혼자 들을 때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도 이상한 것은 그렇게 욕을 먹었어도 하나도 기분이 나쁘거나 마음이 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마음이 편안해져서 나왔다. 사중의 다른 사람들이 말하기를 다른 스님들은 큰스님께 욕을 먹고 나오면 얼굴이 분노로 죽을상이 돼 나오는데 나는 그저 편안한 모습으로 나오는 게 보기 좋았다고 했다. 그때 큰스님의 질타나 꾸지람도 좋은 법문으로 여겨 들었을지도 모른다. 지난 추석날 은사 스님께 문안을 다녀왔다. 예전의 서슬 퍼런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평온한 노스님이 되셔서 나를 맞아 주셨다. 잘잘못을 따져 꾸짖고 나무라시던 예전의 모습이 그립기도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누군가가 나를 꾸짖고 나무라는 것은 관심이 있고 애정이 있다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이제는 그런 잔소리라도 해 줄 사람이 없다는 게 슬픔으로 다가온다.

요즘 세상은 잘못하는 아이들을 보고도 훈육하는 선생님이 없고 어른이 없단다. 예전의 아이들은 선생님이나 어른들이 꾸짖거나 훈육을 하면 고개를 숙이고 고분고분 잘 들었다. 특히 학교에서 선생님에게 꾸지람을 들었거나 매를 맞았어도 절대로 부모에게 말하지 못했다. 얘기하면 오히려 부모에게 더 혼이 날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지금은 선생님들이 아이들을 바로 쳐다보지도 못한단다. 벌을 준다거나 매를 댄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할 일이 됐다. 길가에서 아이들이 나쁜 짓을 해도 못 본 척 지나가는 게 옳은 처신의 행동이란다. 요즘 사람들은 누구에게라도 잔소리나 꾸지람 듣기를 절대적으로 싫어하고 들으면 바로 화산이 폭발하듯 화를 표출한다. 잔소리한다고 부모를 죽인 패륜 뉴스를 종종 볼 수 있다.

지금의 사람들은 타인에게 조금이라도 싫어하는 말이나 기분 상하는 소리를 듣기를 아주 싫어한다. 아니 들을 줄을 모른다.

조금이라도 들을 마음의 여유가 없다. 우연히 눈길을 마주친 것도 기분 나쁘다고 시비하고 폭행을 해서 때려죽이는 세상이 됐다.

학생인권 운운하며 잘못된 가치관을 가르치고 심어준 결과이다.

사랑과 자비심으로 가득 찬 따뜻한 가슴의 소유자는 온화한 얼굴을 가질 것이며, 불평불만과 증오로 가득한 가슴의 소유자는 얼굴이 분명 악마의 얼굴일 것이다. 사랑과 대자비심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현종 강릉 현덕사 주지 스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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