⑫ 남양주 수진사
◇꿈속 부처님 말씀 따라 세운 절=경기도 남양주시 천마산 남쪽 기슭에 자리 잡은 수진사는 대한불교총화종에 속한 사찰로서 현 주지이신 남정 스님이 1984년에 세운 사찰이다. 이곳에서 지난 9월 28일에 ‘하늘과 땅을 잇는 산사음악회’가 열린다고 해 찾아가게 됐다.
수진사를 세운 남정 스님은 원래 강원도 설악산 한계사지에 자리 잡은 토굴에서 면벽수행을 하고 계셨는데, 1971년 어느 날 꿈에 부처님이 현현해서 어떤 아름다운 장소를 보여주며 "이곳을 찾아 절을 세우고 비로자나불을 모시도록 하라"고 당부하셨다고 한다. 꿈에서 깬 스님은 이것이 단순한 꿈이 아님을 알아차리고 꿈에 본 장소가 어디인지를 찾아내기 위해 수년에 걸쳐 전국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이윽고 현재의 수진사 자리가 꿈에 본 바로 그곳임을 찾아낸 것이다.
실제로 천마산은 역사적으로 영험한 산으로 간주돼 여러 종교의 기도처로 널리 알려져 왔는데, 불교도 마찬가지여서 지금도 수진사 외에 산의 북동쪽 기슭에는 고려시대 혜거국사가 창건했다고 하는 보광사 및 해인선원(옛 불광사), 남쪽에는 성현사, 서쪽에는 봉인사, 견성암 등의 사찰이 자리잡고 있다. 이를 통해 천마산이 불교에서도 성산으로 여겨져 왔음을 알 수 있다.
터를 찾아낸 스님은 강원도에서의 수행 생활을 뒤로하고 1978년에 이곳에 우선 작은 암자를 세웠으며, 이어 1982년 전통 건축인 다포계 팔작지붕 형식의 광명전을 건립한 데 이어 부속 전각을 하나하나 세워, 결국 1984년에 수진사를 공식 출범하게 됐다. 특히 1998년에 총화종의 총무원을 수진사에 둠으로써 지금처럼 큰 사찰로 발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총화종이라는 불교종단은 일반에게는 다소 생소할 수 있는데, 우리나라 불교 종단은 조계종, 천태종, 태고종 등을 포함해 모두 18개 종단이 있으며, 그중의 하나로서 1960년에 창종됐으니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수진사 남정 주지스님은 총화종의 13대 총무원장을 역임한 바 있다. 총화종은 현재 전국적으로 987곳의 사찰과 120만을 웃도는 신도를 두고 있으며, 총무원은 서울 창신동으로 옮겨갔지만, 수진사는 아직도 종단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현무암으로 세운 탑, 무슨 사연이 있을까=저녁에 음악회가 열리기 전 우선 수진사 경내를 돌아봤다. 수진사에는 일반적으로는 차를 타고 들어가기 때문에 사찰의 서쪽으로 진입하지만, 정식 출입문은 동쪽에 있는 종루다. 앞에는 돌로 조각한 금강역사가 지키고 있고, 종루 안에는 1989년에 신도들의 염원을 담아 조성한 범종이 걸려있다. 경내에 들어서면 새로 지은 건물들이 눈에 들어오는데, 우선 남쪽에는 종무소와 템플스테이 본부를 겸한 단층 한옥 건물이 보이며, 서쪽으로 보이는 4층 건물은 수진사에서 운영하는 요양원인 자비원, 동쪽으로 보이는 4층 건물은 관음전이다. 그리고 정면인 북쪽에는 높은 계단 위에 전통 건축 기법으로 지어진 대광명전이 자리 잡고 있다. 이 목조건축은 대목장 보유자인 최기영 장인이 지은 건물로 아마 후대에는 문화재로 지정될 가능성이 있는 미래 유산이기도 하다. 또한 부처님이 꿈에 당부한 대로 비로자나불이 모셔진 법당이다.
이 대광명전 앞에는 검은 돌로 세운 5층 탑이 보이는데, 이 돌은 제주도에서만 볼 수 있는 현무암이다. 일반적으로 현무암으로 만든 탑은 제주도 불탑사에 있는 보물로 지정된 5층 탑이 유일하다고 알려져 왔지만, 사실은 수진사에도 이렇게 현무암으로 만든 탑이 전하고 있다. 왜 이 탑이 뭍으로 오게 됐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아마도 많은 사연이 있을 것 같다. 제주도에 살던 어떤 스님이 뭍으로 오면서 가져오신 것일까? 특히 맨 아래 기단은 자연석을 무심히 받쳐놓은 것 같지만, 이 돌도 현무암이다. 원래부터 그랬는지, 아니면 기단부가 없어져서 이렇게 다른 돌로 받쳐놓지만 그래도 같은 현무암으로나마 깔맞춤을 한 것인지 여하간 보통의 정성이 아니다.
이러한 가람배치를 보면 수진사도 조선시대의 전통적인 배치형식인 4동중정형 배치를 따르고 있다. 4동중정형이란 4채의 건물이 동서남북으로 둘러싸고 가운데에 마당이 있는 배치구조를 말하는 것인데, 수진사의 중심 사역도 대광명전, 자비원, 관음전, 종루가 가운데 마당을 둘러싼 4동중정형 구조인 셈이다.
대웅전 뒤편으로는 수진사의 두 번째 법당인 대웅보전이 자리잡고 있다. 이 역시 목조건축으로 세워졌는데, 단청을 하지 않고 대신 목조건축의 은은함을 강조했다. 목조건축 법당으로서는 매우 큰 규모로 지어졌는데, 내부에 기둥이 하나도 없이 하나로 탁 트인 공간을 만들었다. 몇 년 전에 입적하신 지관 큰스님이 이 법당의 낙성식에 참석해 감명을 받아 현재 대웅보전에 걸린 편액을 써주셨다고 한다. 지관스님을 기억하는 분이라면 이 현판을 보고 감회가 새로우리라.
대웅보전 옆으로 난 잘 정비된 돌길을 따라 올라가면 산령각이 나오는데, 여기에는 아픈 사연이 있다. 2020년에 한 기독교 광신도가 이 산령각에 불을 질러 모두 타버린 사건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산령각에 모신 산신은 특히 천마산 산신이라 의미가 더 컸는데,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재는 다시금 복원해 이전의 모습을 되찾았다.
◇아름다운 풍경과 어우러지는 음악회=수진사의 가장 안쪽, 높은 언덕 위에는 연화장세계라고 이름붙여진 일종의 조각 공원이 자리 잡고 있다. 이곳에는 거대한 부처님 열반상을 중심으로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눠 표현한 팔상도 및 팔각9층석탑, 그리고 여러 나한상과 33분의 관음보살상이 모두 화강암으로 조성돼 있다. 우리나라 전통불교미술의 가장 큰 특징 중의 하나인 화강암 불상조각을 이곳에 총 망라해둔 것 같은 느낌이다. 수진사에 영원히 남겨질 불교유산을 만들겠다는 남정 스님의 집념이 느껴지는 공간이기도 하다.
이처럼 수진사는 천마산이라는 아름다운 자연환경을 배경으로 전통을 새롭게 해석한 사찰 건축을 가미한 독특한 공간을 활용해 매년 가을에 산사음악회를 개최하고 있다. 특히 전통음악과 현대음악을 아우르는 수준 높은 공연을 선보여 관객들의 높은 호응을 얻고 있는데, 전통음악으로는 국악, 판소리, 무용 외에 불교 전통음악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바라춤을 선보이기도 한다. 현대음악으로는 재즈 공연을 포함하며, 더불어 전통음악과 재즈를 결합하는 무대도 선보이고 있다.
수진사 산사음악회는 매년 하나의 컨셉을 가지고 열리는데, 올해로써 7회째를 맞는 산사음악회의 컨셉은 ‘하늘과 땅을 잇는 소리’였다. 공연은 오후 6시부터 시작됐는데, 그간 저녁에도 한참 더웠다가 드디어 선선한 바람이 불어와 야외에서 음악회를 듣기에 더없이 좋은 날씨였다. 그래서인지, 이날 음악회에도 300명이 넘는 관중들이 참석했다.
남정 주지 스님의 인사말로 시작된 음악회는 1부에서는 초등학생으로 구성된 사물놀이팀 ‘소리누리’의 상모돌리기 공연과 수진사 합창단이 그간 갈고닦은 실력을 뽐냈다. 소리누리는 초등학생들임에도 그 실력이 예사롭지 않아 놀랐다.
2부에서는 국악관현악단 ‘율려’의 공연이 이어졌는데, 박혜영의 판소리, 조선시대 시조를 가사로 곡을 붙인 국악관현악곡을 위한 ‘별한’을 부른 원혜정, 고윤선의 경기민요, 장윤희의 해금 연주, 윤상미의 흥보가 중 박타는 대목이 차례로 이어졌으며 사물놀이 협주곡 ‘신모듬’으로 공연이 마무리됐다.
매년 산사음악회를 기획해 온 수진사 자비원의 전한욱 원장은 이러한 음악회를 통해 지역 주민들과 소통하고 요양원에 있는 어르신들에게 즐거움의 시간을 선사하고자 했다며, 특히 이 모두가 수진사를 중심으로 서로 연결돼 있다는 메시지를 담았다고 그 의의를 설명했다.
앞으로도 매년 계속 이어질 것이라고 하니 이번 공연을 보지 못한 중부일보 독자 제위께서도 내년 가을 수진사를 한번 방문해보시기를 추천 드린다. 산사음악회의 하이라이트는 유튜브에 영상으로 업로드되기도 한다. 이날 공연은 아직 업로드되지 않았지만, 작년까지의 내용 일부는 유튜브에서도 찾아보실 수 있다.
올해는 특히 국악 중심이었는데, 가을 저녁에 울려 퍼지는 우리 가락이 때로는 흥겹기도, 때로는 절절하기도 해 국악을 듣는 재미가 이런 것이구나 싶었다. 특히 국악은 관객들의 동참을 적극적으로 끌어내기 위해 노력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하늘과 땅을 잇는 것이 결국 사람들의 마음을 잇는 것임을 깨닫게 되기도 했던 밤이었다. 옆자리의 처음 보는 사람들도 함께 공연을 보며 추임새를 넣고 웃다 보면 마치 오래된 지인이 곁에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으니 더욱 그랬다.
◇경기도 유형문화유산과 함께하는 체험=수진사는 이 외에도 다양한 체험행사를 진행하고 있다. 수진사가 소장하고 있는 불교 경전인 ‘조상경’과 ‘현수제승법수’는 경기도 유형문화유산으로 지정돼 있는데, 이 중에서 조상경을 활용한 체험프로그램이 매월 1, 3주 화요일과 2, 4주 토요일에 전승관 프로그램실에서 열린다고 한다. ‘조상경’은 불교에서 불상을 조성하는 것의 중요성을 설명한 경전으로, 이를 바탕으로 불상 만들기 체험을 진행하는데, 이 프로그램은 한국의 전통문화유산을 활용한 다양한 컨텐츠를 전문적으로 개발하는 (사)한국전통미술융합진흥원에 의뢰해 만든 것이다. 방향제나 향초로 불상을 만들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참여가 가능하다고 한다.
또한 천마산의 자연환경을 즐기기 위해서는 환경탐방 프로그램을 추천드린다. 9월부터 11월까지 매주 1, 3주 토요일에 진행되는 이 프로그램에서는 천마산 일대를 함께 걸으며 자연을 느끼고 즐기면서 생태환경에 대해 배워보는 프로그램이다.
아울러 수진사에는 바라춤 전승자인 비구니 스님이 계시는데, 7월에서 11월까지 매주 목요일에는 이 스님으로부터 바라춤을 배우고 함께 다도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준비돼 있다.
수진사를 둘러보며 지역사회에서 사찰이 지니는 의미를 다시 한번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불교를 통한 중생 구제를 기본 바탕으로 요양원을 통한 노인복지, 전통문화의 전승과 보존, 힐링이 되는 공간,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문화공간 등등은 사실 역사적으로 불교사찰이 늘 해왔던 일이다. 속세와 격리돼 청정한 수행을 하는 공간이면서도 중생과 연결돼 있어야 하는 사찰이 어떻게 그 균형을 이루어야 하는지를 수진사는 잘 보여주고 있었다.
주수완 우석대학교 경영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