⑭남양주 봉영사

봉영사 전경. 사진=김지영
봉영사 전경. 사진=김지영

◇찬란했던 왕실 원찰, 작고 소박하게 남아=봉영사는 경기도 남양주 천점산(해발 393m) 기슭에 자리하고 있다. ‘봉선사본말사지’(奉先寺本末寺誌, 1927)에 따르면, 봉영사는 599년(신라 진평왕 21)에 창건됐다고 전해지지만, 조선 중기까지의 기록에는 나타나지 않아 정확한 창건 시기는 불분명하다. 봉영사에 대한 구체적인 기록은 조선 영조 시기에 등장하는데, 1737년(영조 13)에 크게 중수됐으며, 1755년(영조 31)에 순강묘가 순강원으로 승격되면서 봉영사가 원찰로 지정됐다고 한다.

봉영사 옆에 위치한 순강원은 선조의 후궁이자 정원군(추존 원종)의 생모인 인빈 김씨(1555~1613)가 묻힌 곳이다. 정원군의 장남인 능양군(후일 인조)이 반정을 통해 왕위에 오르면서 인빈 김씨는 왕의 친할머니가 됐다. 김한우의 딸로 태어난 인빈 김씨는 1573년 선조의 후궁이 됐고, 4남 5녀를 낳은 후 1604년(선조 37)에 인빈으로 책봉됐다.

혜경선사공적비와 사적비, 부도가 절 마당 한켠에 자리한다. 사진=김지영
혜경선사공적비와 사적비, 부도가 절 마당 한켠에 자리한다. 사진=김지영

인빈은 1613년(광해군 5)에 59세의 나이로 사망했으며, 사후 142년이 지난 1755년(영조 31)에 사친(私親)의 격에 맞춰 사당 이름을 저경궁으로, 순강묘를 순강원으로 승격시켰다. 봉영사에는 인빈 김씨의 위패가 봉안됐으며, 매해 제를 올리는 등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조선은 유교적 가치관을 중시하며 불교를 억압했지만, 백성들은 여전히 불교를 통해 사후세계에 대한 불안을 달래고 현실의 고통을 해결하려 했다. 왕실 또한 사망한 왕이나 왕비를 위해 절에 가서 명복을 빌었고, 왕실의 안녕과 평안을 기원하기 위해 불교 사찰을 후원했다. 봉영사 역시 왕실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던 사찰이며 이를 통해 과거 위상을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순강원을 지나 나무가 울창한 광릉숲 생물보전구역 둘레길에 들어서면 머지 않아 봉영사가 나타난다. 왕실의 원찰로 번성했던 때와 달리 여러 차례의 사세 변화를 겪으며 현재는 작고 소박한 모습으로 남아 있다.
 

무량수전의 화려한 단청. 사진=김지영
무량수전의 화려한 단청. 사진=김지영

◇위풍당당 산신도 보존한 봉영사=고종 14년(1877년), 봉영사에 봉안된 인빈 김씨의 신실이 무너지자 고종의 숙부인 이상국이 왕실 재산을 이용해 절을 중수했다. 그러나 1920년 경신년 대홍수로 큰 피해를 입어 폐사 위기에 처했고 1924년 동희 스님이 범궁과 요사채를 재건했다. 이어 1942년 성호 스님이 다시 절을 중수했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인해 봉영사는 다시 폐허가 됐다. 1968년 혜경 스님이 봉영사의 법맥을 이어 절을 크게 중수했으며, 이를 기리기 위해 1982년 혜경선사공적비가 세워졌다.

무량수전 안에 모셔진 아미타불. 사진=김지영
무량수전 안에 모셔진 아미타불. 사진=김지영

오늘날 봉영사에는 무량수전, 관음전, 지장전, 산신각, 요사 등이 남아 있지만, 대부분 현대에 건립된 것이다. 무량수전은 1998년 철안 스님이 새로 세운 전각으로, 서방 극락세계를 주재하는 아미타불을 모시고 있다. 전각의 단청은 매우 화려하고 다채로우며, 정면 창호에는 흰 코끼리가 조각되어 이목을 끈다.

관음전 신중도. 사진=김지영
관음전 신중도. 사진=김지영

관음전에는 ‘觀音殿’ 대신 ‘천점산봉영사(泉岾山奉永寺)’라는 편액이 붙어 있으며, 안에는 정병을 든 관음보살상이 유리벽 안에 봉안돼 있다. 후불벽에는 불화 대신 경판이 걸려 있다. 왼편의 신중도는 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57호로, 풍성한 모란꽃 가지를 들고 있는 제석천과 아무것도 들지 않은 채 합장한 범천이 표현되어 있다.

묵서를 통해 이 신중도는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전반까지 이 지역에서 활동했던 화승 두흠(斗欽)이 그렸다는 것이 밝혀졌다. 관음전은 대들보 상량문으로 미루어 2012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봉영사 산신각. 사진=김지영
봉영사 산신각. 사진=김지영
산신각의 산신도. 사진=김지영
산신각의 산신도. 사진=김지영

관음전과 마주하고 있는 지장전에는 지장보살상과 함께 열 명의 시왕상이 봉안되어 있다. 지장보살상 뒤에 지장시왕도가 걸려 있다.

관음전 옆으로 난 길을 따라가면 한 칸 규모의 아담한 산신각을 만날 수 있다. 소박한 외형과 달리 산신도(경기도 유형문화재 제258호)는 화면 가득하게 풍채 좋은 산신이 그려져 위풍당당한 기세를 풍긴다. 화기를 보면 ‘대한광무(大韓光武)’라는 대한제국의 연호를 썼고, 광무 7년(1903년)에 제작됐음을 알 수 있다. 지금껏 알려진 산신도 가운데 가장 규모가 크고 시기가 명확해 보존가치가 높다. 서울 동대문구 연화사에 가면 유사한 화풍의 또 다른 산신도를 볼 수 있다고 한다.
 

약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 하심. 사진=김지영
약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카페 하심. 사진=김지영

◇약수로 내린 특별한 커피 한잔으로 순강원 숲에서 힐링=봉영사는 지역 주민들에게 더욱 친숙한 사찰이다. 광릉원 둘레길이 지나가고 순강원 주변 숲이 잘 보존되어 있어 힐링 숲체험 명소이다. 봉영사가 위치한 천점산(泉岾山)이란 이름이 ‘샘’에서 유래했듯이 이곳 약수는 특별하다. 샘은 원래 사찰 경내에 있었는데, 사람들이 물을 긷기 위해 빈번하게 드나들자 절 입구에 새로운 샘을 파주었다 한다. 샘 앞에 잠시 서 있으면 물을 길어가는 사람들이 끊임없이 오가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맛 좋은 물 때문인지 봉영사는 조선시대 때부터 두부로 유명했다고 한다. 또한 이 약수는 차(茶)의 향미를 더욱 풍부하게 하여 차 애호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찻물로 칭송받기도 했다.

한 모금 천천히 음미하니, 샘물에서 종종 느껴지던 비릿함이나 거친 느낌이 전혀 없이 물이 부드럽게 혀끝을 감싼다. 물을 삼킨 뒤에는 입안 가득 기분 좋은 달큰함이 맴돈다. 물에도 향과 질감, 그리고 맛이 있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아직 푸르름이 가시지 않은 봉영사 풍경. 사진=김지영
아직 푸르름이 가시지 않은 봉영사 풍경. 사진=김지영

샘 옆에 하심(下心)이라는 카페가 있다. 하심은 ‘자기를 낮추고 남을 높인다’는 뜻을 가진 불교 용어이다. 얼마 전 봉영사 주지로 새로 부임한 혜교 스님의 뜻으로 새단장을 거쳐 문을 열었다. 이 곳에선 약수로 내린 드립커피를 맛볼 수 있다. 그 맛이 약수처럼 부드럽고 온화하여 봉영사의 이색명소가 될 것 같다.

봉영사와 천점산의 단풍은 아직 초가을의 붉은빛만 조금 스며 있는 상태로 지금도 충분히 아름답지만, 담담하고 고요한 봉영사에 형형색색 단청을 더하듯 화려한 단풍이 더해질 날도 무척 기다려진다.

김지영 헤리티지포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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