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로와 함께 일상을 살아온 지가 벌써 10여 년이 넘어서고 있다. 직장을 안산으로 옮기면서 출퇴근이 용이한 수원에서 거처를 찾던 중, 여기산에서 무리 지어 사는 백로들을 만났다. 하얀 깃털을 펼쳐 비상하는 그 아름다운 자태에 처음부터 마음을 빼앗겼다. 백로는 왜가릿과에 속하는 새 중 몸빛이 하얗고 날개가 크다. 예로부터 희고 깨끗하여 청렴한 선비를 상징해 왔다. 이왕이면 ‘이 하얀 선비들과 가까이 사는 것도 좋겠다’라는 생각으로 이들이 바로 보이는 아파트로 이사를 하였다. 이렇게 하여, 아침 일찍 백로가 잠에서 깨어 훨훨 날면 나도 함께 일어나고, 저녁 어둑해져 여기산을 넘어 다시 돌아오면 나도 함께 하루를 접곤 하였다.
길고도 추운 날들이 지나면, 여기산의 혼령들도 겨울잠에서 기지개를 켠다. 눈치 빠른 버드나무들은 봄의 물기를 머금기 시작하고, 나의 마음도 설레기 시작한다. 여기산으로 돌아올 그리운 이들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입춘 무렵이 되면, 지난가을 남쪽으로 날아갔던 백로들이 봄기운 가득 싣고 여기산으로 돌아온다. 이렇게 서로 만나, 우리는 몇 달을 보지 못한 서로의 목마름을 길 하나를 두고 뜨겁게 해갈한다.
돌아온 백로들은, 긴 여정을 쉬지도 못하고, 겨울 삭풍으로 부서진 둥지들을 새로히 고친다. 어미 백로들은 알을 낳아 품기 시작하고, 40여 일 지나면 어린 새끼들이 알에서 깨어난다. 여기산 숲은 하얀 목화밭으로 변한다. 이때부터 어미 백로들의 자식 사랑은 지극정성으로 시작된다. 끊임없이 서호천과 저수지를 들락거리며 먹이를 날라 어린 새끼들을 먹인다.
어미와 자식 간의 정은 사람이나 생물이나 같은 모양이다. 아낌없이 주는 사랑이 그렇다. 새끼 백로들은 젖도 떼지 않은 채 여기산 허리를 팔랑거리며 나르고, 숲속은 아기의 순한 내음으로 가득 찬다. 백로들의 살림살이는 막 먹이를 물고 온 어미 백로의 숨소리와 먹이를 찾는 새끼들의 울음으로 시끌벅적하게 익어간다.
이제는 모두 돌아가시고 뵐 수 없는 나의 부모님들도 그러하셨으리라. 부모님은 평생 농사일을 천직으로 아신 분들이다. 도시로 유학 보낸 아들을 위해 한여름 뙤약볕을 온몸으로 받아내며 사셨다. 그 깊은 사랑과 은혜가 여기산 풍경과 여울져 사무치게 그립다.
진용호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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