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시에 관한 프로그램을 시청하다 한강 작가의 ‘괜찮아’라는 시를 들은 적이 있다. 아기를 처음 키워보는 초보 엄마가 겪는 육아의 어려움을 소재로 한 시였다. 초보 엄마는 아기가 밤마다 울어 어찌할 바를 몰랐다. 아기를 달래보지만 아기는 울음을 그치지 않고 계속 울었다. 그래서 지친 엄마도 함께 눈물을 흘리던 어느 날, 스스로에게 ‘괜찮아’라는 말을 하게 되었고, 그날 이후 놀랍게도 아이가 울음을 멈추었다. 그러면서 힘들 때 스스로에게 ‘왜 그래’가 아닌 ‘괜찮아’라고 하며 자신을 달래는 지혜를 배웠다고 하였다.
한강 작가가 노벨 문학상을 받고 난 후 작가의 책을 구할 수 없을 정도로 인기가 높아졌다고 한다. 한 작가의 무엇이 전 세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던 것일까? 스웨덴 한림원은 한 작가에 대해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소개하였다. 한 작가의 작품은 구체적인 역사와 삶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데, 우리가 일상에서 경험하는 인간의 폭력성과 그로 인한 상처, 인간 삶의 연약함을 다루는 것에 머물지 않고, 그것을 넘어 참된 인간다움을 찾았던 것이 보편적 가치로 인정받은 것이 아닐까 한다.
한 작가가 다룬 주제는 요즘 신학계가 주목하는 주제이기도 하다. 카스퍼 추기경은 ‘자비’라는 저서에서 ‘동정(compassion)’으로 이해되는 자비 개념을 발전시켰는데, 동서양의 철학사와 종교사에서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동정이야말로 오늘날 전쟁, 기아, 전염병 등으로 깊은 상처를 입은 인류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자 가치라는 주장이었다. 프란치스코 교황도 동정과 자비를 실천하는 교회를 강조하며, 특히 상처 입고 고통 받는 이를 향해 다가가 이웃이 되어주며 고통과 상처를 함께 나눌 수 있는 교회가 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동정과 공감, 연민의 마음을 통해 볼 때 예수님의 모습이 새롭게 다가온다. 산상수훈에서 예수님은 가난한 이, 슬퍼하는 이, 온유한 이,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이, 자비로운 이, 마음이 깨끗한 이, 평화를 이루는 이,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이에게 하늘 나라를 약속하시는데, 이는 그분이 얼마나 이러한 사람들, 상처 입고 소외되고 고통 중에 있는 이들에게 관심을 기울이셨는지 나타내준다.
‘주님의 기도’ 후반부에 나오는 내용도 인간의 연약함에 대한 깊은 인식을 담고 있다. 인간은 육을 지닌 존재이기에 먹지 않으면 살 수 없는 연약한 존재다. 아이는 부모가 먹여주어야 살고, 성인이 되어서는 먹을 것을 얻기 위해 일을 해야 한다. 그렇기에 주님의 기도에서 하느님께 일용할 양식을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또한 인간은 서로 죄를 지으며 상처를 주고받으며 사는 연약한 존재다. 상처는 쉽게 낫지 않으며, 흉터는 평생에 걸쳐 남는다.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길은 용서뿐이지만, 인간의 용서는 불안정하기에, 하느님께 용서해 주시기를, 그리하여 다시 시작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시기를 청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인간은 유혹에 빠지기 쉽고 악과 결탁하여 죄에 기울기 쉬운 연약한 존재다. 인간 스스로는 거기서 빠져나올 수 없기에, 하느님께 보호하심과 보살피심을 청하는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자랑할 것이 있다면 자신의 약점을 자랑하겠다고 하였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이에게 똑같은 은총을 베푸시지만, 자신을 약한 사람으로 인정하고 수용하는 사람에게 더 큰 힘을 발휘하신다는 체험 때문이었다.
우리가 사는 이 시대는 서로의 연약함에 대해 깊이 공감하고, 폭력으로 인한 상처를 위로해주고 보듬어 안아주는 사람과 사회를 필요로 한다. 한 작가의 말대로 ‘괜찮아’라고 말하며 서로의 연약함을 인정하고 서로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줄 수 있다면, 버림받고 소외되고 상처 입고 고통 중에 있는 이를 찾아가 따뜻한 이웃이 되어 그와 함께 머물러줄 수 있다면, 우리 사회는 더 인간다운 사회로 변해가지 않을까. 오늘의 종교인들이 세를 부풀리기보다, 밖으로 나가 세상 사람들의 상처를 보듬어 안아주고 삶을 나누며 그들에게 ‘착한 사마리아인’이 되어준다면, 세상은 더 아름답게 변해가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