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는 기후변화에 대비한 쌀을 재배해야 합니다."
급격한 기후변화로 경기도 내에서도 기온 차로 인해 쌀 맛이 달라지고 있는 가운데, 연천 지역에 맞는 쌀 품종을 재배하는 농부가 있다. 바로 김탁순(55) 백학쌀닷컴 대표다.
경기도 최북단 연천은 일교차가 크고 땅이 비옥하다는 특성이 있어 ‘남토(土)북수(水)’라고도 불린다. 남쪽에 비옥한 땅, 북쪽에 맑은 물이라는 뜻이다. 또 공장지대도 없어 농사짓기에 최적이다.
김 대표는 27년간 연천에서 쌀 농업에 종사하며 경기도농업기술원에서 개발한 쌀 신품종들을 선도적으로 재배했다.
이후 김 대표가 처음 시도하고 재배해 유통한 쌀들은 연천 지역의 대표 쌀로 자리매김했고, 그 과정에서 국제 기준이 아닌 우리나라 그리고 우리 지역 기준에 적합한 쌀을 찾아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널리 알리게 되는 계기가 됐다.
◇연천 신토불이 쌀, 참드림=김 대표는 지난해 경기도농기원에서 주최한 경기미 품평회에서 참드림이란 품종을 재배해 출품했고, 도농기원은 도정률, 공정 순도, 미질 등을 심사해 김 대표의 쌀이 우수하다고 평가해 장려상으로 선정했다.
앞서 김 대표는 참드림 품종 이전에 고시히카리 등 일본산 쌀 품종을 재배하다가 약 10년 전에 도농기원 측에서 경기도만의 신품종 경기 5호가 나왔다며 심어보라는 건의를 받았다.
경기 5호를 재배하다 보니 해당 품종이 경기도 지역에 알맞다고 판단, 재배를 확대했고 경기 5호는 참드림이라는 새로운 이름을 갖게 됐다.
이후 참드림은 연천 지역 공공비축미로 지정됐고, 연천 지역에서 대부분 심는 쌀 품종이 됐다.
김 대표는 "연천은 북위 38도선이 지나가는 곳이다. 이는 밤낮의 일교차가 크고 겨울이 빨리 온다"며 "때문에 연천 지역은 중만생종(생육기간이 길어 수확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작물)을 심어야 잘 자란다"고 판단했다.
이어 "이제는 기후변화로 인해 쌀 품종도 지역에 맞게 찾아가야 하며 지역 기후에 맞춰 최적의 맛과 영양을 갖는 쌀을 좋은 쌀의 기준으로 잡아야 한다" 강조했다.
◇맛, 영양 다 잡은 나락유통=지난 2017년 김 대표는 참드림 품종으로 나락 자체를 유통하는 협약을 경기도농기원과 맺었다. 기존 쌀은 100% 도정을 해서 유통을 하는 반면 나락 유통은 쌀눈이 그대로 있는 나락째로 유통한다.
김 대표는 "쌀을 건강하게 먹으려면 나락 형태의 쌀을 가정에서 도정기로 직접 도정해 쌀눈이 있는 채로 먹어야 다양한 영양 성분을 함께 섭취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쌀눈과 쌀겨층이 제거된 쌀을 완전미(백미)라고 하는데, 백미에서 완전미율이 높고 단백질 함량이 낮으면 국제 품질 기준으로 ‘쌀이 좋다’고 말한다.
하지만 쌀의 영양 성분은 쌀눈에 60% 이상이 있다. 미네랄, 비타민 등은 쌀눈에 있고, 섬유질은 쌀겨에 있다. 실제 완전미에 남아있는 영양소는 5%뿐이라는 것이다.
국제 기준에서는 쌀눈이나 쌀겨 등이 얼마나 제거됐고, 외관상 보기에 백미에 얼마나 가깝냐에 따라 높은 품질 등급을 받는다.
이는 유통과정에서 영양성분이 많은 쌀눈과 쌀겨 등은 쉽게 상하거나 오염될 가능성이 높고, 미관상 깔끔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것이 김 대표의 설명이다.
김 대표는 "통상적으로 쌀을 탄수화물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백미만을 지칭하기 때문이다"며 "사실 쌀에는 쌀겨, 쌀눈도 있으며 여기에는 단백질과 섬유질이 풍부하다. 쌀의 영양 성분을 80~90%를 다 먹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우리나라는 연간 40만t(톤) 정도 쌀 수입을 하는데, 현미도 수입산이라 ‘못 믿겠다’는 소비자들이 있다. 하지만 벼 원물 그대로를 보여줄 수 있는 나락은 종자 그 자체이기 때문에 수입이 안 된다. 결국 믿고 먹을 국산이라는 얘기"라고 부연했다.
◇떠오르는 신품종, 연진=인기가 많은 품종인 참드림에도 문제가 있었다. 쌀겨 안에 껍질이 까져야 현미가 나오는데, 안쪽 껍질이 잘 안 까진다는 것이었다. 또 기후변화로 인해 재배해도 밥맛이 예전 같지 않았다.
이에 김 대표는 경기도농기원에 연천 지역 변화한 기후에 맞고 나락도정(나락째로 껍질을 벗기는 도정법)이 잘 되는 품종을 만들어달라고 요청했다.
그 결과 도정이 잘 되는 품종 중 하나인 경기 13호 품종은 단맛도 좋으면서 멥쌀하고 찹쌀의 중간 찰기를 가지고 있어 밥맛이 좋았다. 경기 13호는 여리향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이후 여리향에 대한 나락 유통 판매량이 늘어나면서 김 대표는 또 다른 품종을 찾았다.
그 결과 맵쌀과 찹쌀 사이 찰기를 가졌지만 향이 거의 없는 경기 15호 품종을 재배했고, 경기 15호는 도정도 잘 되고 맛도 좋았다.
이후 경기 15호는 연진이라는 이름으로 연천 지역 특화 품종으로 지정됐다.
김 대표는 "해당 쌀은 연천군으로부터 물결 연에 보배 진을 써서 연진이라는 이름을 받게 됐다. 연천이 물이 좋기로 유명했기 때문이다"고 말했다.
연진은 연천 지역 공공비축미로도 지정됐다. 본래는 참드림이었지만 기후변화로 인해 맛이 떨어져 연진으로 교체된 것이다.
공공비축미란 정부에서 농협을 통해 유사시나 천재지변 등에 대비해 해마다 국민이 먹을 식량을 보관해 놓는 것을 말한다.
특히 한 지역의 모든 공공비축미를 바꾼다는 것은 큰 의의가 있다.
농가들이 재배 후에 남는 쌀을 농협에 우선 판매하고 공공비축미로도 판매하는데, 결국 농협 측에서 사고 싶은 쌀이 되려면 소비자들이 만족하는 쌀이어야 한다.
결국 공공비축미는 생산자의 판매와 직결되기 때문에 숱한 평가와 심사를 거치는 등 까다로운 절차를 통과해야 선정될 수 있다.
김 대표는 "참드림, 연진, 여리향 등 품종을 개발하지 않았더라면 아직도 연천은 쌀 품종으로 헤매고 있었을 것"이라며 "나는 경기도민이기 때문에 경기미를 재배하고 팔며, 경기도농기원에서 개발한 품종을 보급해야 한다는 사명감이 있다. 또한 경기미가 가장 다른 쌀에 비해 맛이 좋고 재배 또한 경기 지역에 적합하다"고 말했다.
이어 "농촌진흥청에서 나온 품종은 전국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경기도 각 지역에서 재배해도 모두 맛이 다르지만 경기도농기원에서 개발한 품종은 경기 지역의 세세한 기후나 재배 환경을 감안하고 만든 것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맛이 좋다"고 부연했다.
향후 계획에 대해 김 대표는 "소비자들은 점점 더 쌀에 대한 맛을 중요시하는 시대가 올 것"이라며 "완전미만 고집하는 국제기준이 아닌 맛과 영양 중심을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 앞으로도 품질과 맛 중심의 지역 특화 쌀 재배를 위해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보현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