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대를 한 마디로 표현하라면 ‘위로를 바라는 시대’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국내외 정세가 불안정하고, 코로나 이후 경제 회복이 쉽지 않아 위기의식이 고조되는 와중에 비상 계엄으로 인해 우리 사회가 바람 앞의 등불처럼 크게 흔들리고 있다. 여러 이유로 상처 입고 지친 영혼으로 살아 왔는데, 이런 일까지 겹치니 불안감은 극에 달하고, 미래는 더욱 불확실해 보이기까지 하는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위로가 필요한 때가 아닐까 한다.
최근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한강 작가의 소설과 시가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는 것도 같은 이유에서일 것이다. 그의 글에는 트라우마, 상처, 인간 삶의 연약함으로 점철된 우리의 일상 경험이 담겨 있다. 그의 작품이 전 세계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이유는 글을 통해 우리의 그러한 마음을 파고들어 위로하고 공감하며 다시 일어서도록 힘을 주기 때문일 것이다. 공교롭게도 한강 작가가 다룬 계엄 이야기가 2024년 말에 재현됐다는 것이 큰 충격으로 다가온다.
한강 작가의 시 중 ‘괜찮아’를 통해 많은 사람이 위로를 받았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상처 입고 힘겹게 사는 우리에게 많은 것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나의 마음을 헤아리고 나의 어려움을 공감해주며 다만 옆에서 있어 주는 현존, 그리고 신뢰를 갖고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 ‘괜찮아’면 충분하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필요 없다. 그 말 하나로 우리는 충분히 일어설 수 있다.
성경에는 불의와 폭력, 그로 인한 인간의 상처와 트라우마에 대한 경험이 담겨 있다. 노예살이 하는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 병고와 죄악으로 고통 받는 사람들의 부르짖음… 하느님께서는 그 소리를 외면하지 않고 응답하시며 인간을 돌보시는 분으로 묘사된다.
지금과 같이 심하게 흔들리는 우리 국민도, 애국가 가사에 나오는 것처럼 우리 민족을 ‘보우’해 주시기를 바라며 함께 마음을 모아 하늘에 올려야 할 때가 아닐까 한다. 여기서 어떤 종교에 속하느냐 혹은 종교인인가 무신론자인가 하는 구분은 불필요하다. 우리는 모두 간절함을 안고 보다 나은 내일, 보다 정의롭고 사람답게 사는 시대를 한 마음으로 희망한다면, 분명 하느님께서 우리의 울부짖음을 귀여겨 들으시고 위로해 주실 것이다.
그렇기에 아무리 주위에서 분노하고 불안해 하더라도, 너무 심하게 흔들리지는 말자. 우리 민족은 이보다 더 큰 위기와 시련도 극복해 왔다. 그리고 그러한 시련들을 거치며 다른 나라에서 보기 힘든 풀뿌리 민주주의를 이루었고, 종교의 자유도 누리고 있다. 큰 안목으로 보자면 이번 사태 또한 민주주의가 더욱 발전하며, 젊은 세대가 정치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세대 간 소통이 더 원활하게 이루어지도록 하는 긍정적인 기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한다. 그러나 그것이 자동적으로 오는 것은 아니기에, 이러한 일을 분노와 악의로 진영 논리로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거나 서로에 대한 증오심을 증폭시키는 흐름보다는, 감정을 가라앉히고 냉철한 이성으로 현실을 파악하고, 가장 확실하고 발전적인 결과를 위해 모두가 한 마음으로 노력해야 할 것이다.
가톨릭교회에는 25년마다 ‘희년’을 지내는 전통이 있는데, 2025년은 2000년 대희년 이후 25년 만에 맞는 희년이다. 희년 제도는 유다교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는데, 50년마다 희년이 돌아오면 모든 부채를 감면 받고, 노예는 자유인이 되었다. 이 전통을 이어받은 가톨릭교회는 희년을 맞이하여 참회의 의미로 성지를 순례하고 죄를 용서 받는 예식에 참여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25년 희년 주제를 ‘희망의 순례자들’로 선정하였다. 그 이유는 코로나를 비롯한 전쟁, 폭력, 자연재해, 경제 위기 등으로 상처를 입은 인류에게 교회가 ‘희망의 증인’이 되어 어두운 시대에 희망의 불꽃을 밝혀주기를 바라는 의도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 지는 숙제로 남아 있다.
한국 사회는 어느 때보다 희망의 증인을 필요로 하는 때다. 이번 사태가 가톨릭교회만이 아닌 종교인들이 한 마음으로 우리나라의 현재와 미래를 위해 기도하고 사회와 협력하여 한국사회가 더욱 발전할 수 있도록 투신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원해 본다.
한민택 수원가톨릭대 교수


